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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 활동기 - 창당대회

백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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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현 위원장을 만나자마자 창당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당원 20명 이상이 참석해야지 창당대회가 성사되기 때문에 경북에 있는 당원들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드리고 참여를 독려했다. 그중에서 적극적인 참여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추려 단톡방을 만들었다. 한 분 한 분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문자를 드리며 창당대회 참석여부를 확인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당원들께 전화나 문자를 드리며 박대를 받은 적도 많고 욕을 먹기도 하는 일이 많았다. 사실 경북에 있는 당원들은 활동 참여도가 무척 낮았다. 경북의 당원들은 중앙당의 정치행보에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생업으로 분주해 당에 후원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단톡방에 당원 24명을 모았다. 단톡방에서의 대화가 활발하진 않았지만, 그만큼의 사람을 모은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라며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다음은 내규 안을 준비하고 운영위원이 될 사람들을 미리 선발해놓아야 했다. 거기에 더해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준비해야만 했다. 처음 접하는 당무에 순간순간이 부담스러웠다. 알지도 못하는 당무에 대해 중앙당 관계자의 조력을 받아가며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내규 안은 다행히 창당준비위원회를 거치며 준비된 내규 안이 남아있었다. 그 내규 안을 전임 위원장에게 인수인계받아 현실정에 맞게 살짝 수정했다. 당원들 사이에서 수정한 내규 안에 대해 약간의 반발이 있었지만 다행히 순간의 순발력으로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었다. 운영위원이 될 사람들 역시 창당준비위원회 때부터 이어져온 운영위원들이 있었기에 그들로 대체하려 했다. 그 사람들은 한지역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경북 전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로 인해 훗날 협력이 어려웠다. 이것이 뒷날 화근이 되었다면 화근이 되었으리라. 사실 운영위원들이라 하면 자주 만나고 자주 협력할 수 있는 조건이 갗춰졌어야 한다. 그래야지 불화가 잦아들고 사업의 추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건이 대구, 부산, 인천, 대전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갗춰지기 수월했지만 경북과 같이 땅 덩어리가 큰 광역단체에선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광역단체에선 위원장이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운영위원들을 선발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거기에 대한 변명을 더하자면 당원들의 참여의지가 낮았기에 나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운영위원들을 구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운영위원들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에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사업계획과 예산안 작성이었다. 이건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몰라서 임아현 위원장의 도움을 받았다. 말이 도움을 받은 것이지 임아현 위원장이 작성한 서류를 경북도당에 맞게 수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창당대회 날짜가 가까워 올 때마다 당원들께 참석을 독려했다.

   

창당대회 당일, 22명의 당원이 온라인으로 모였다. 창당대회는 오프라인으로도 할 수 있고 온라인으로도 성사될 수 있었다. 경북이 워낙 넓기에 우리는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식순은 먼저 인원 보고를 드린 다음에 귀빈 인사를 부탁했다. 그 자리에 강민진 대표가 참석해있었기 때문에 그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된 운영위원들의 인준을 받은 다음, 미리 작성해놓은 사업계획서와 예산안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간단한 창당 선언을 마친다음 폐회했다. 창당대회를 마치고 나니 아무도 없는 집안에 공허함만이 느껴졌다. 공허함을 뒤로하고 참석해준 당원들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렸다.      

너무도 분주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공당의 당직자로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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