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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하루

백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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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연초를 태웠다. 잠에서 깨어났다 하면 자동이다. 중독은 끊어내기가 힘들다. 문제는 그 이후다. 심심하다 싶으면 연초를 입에 무니 입에 달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첫사랑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도 끊어내지 못한 연초다. 이걸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구제불능이라는 말이 여기에 들어맞으리라. 그래서 담배를 태울 때면 그녀의 잔소리, 그녀의 목소리, 그때의 그 상황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며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힌다.'사랑의 감정으로서나 잠자리를 가질 때나 배우자로서나' 그런 여인은 다시 찾아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잠시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한 감정들을 담배연기로 뱉어내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비루하고 지루한 일상들이다.

오늘은 학점은행제 수업의 출석 인정 마지막 날이다. 하루에 한 과목씩 들으면 일주일 이내로 충분히 들을 수 있지만 귀찮고 바쁘단 핑계로 미루어 왔다. 미루고 미루다 매주 차 마지막 날인 수요일에 와서야 수업을 틀어 놓는다. 대개는 수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다. 집중해서 들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고 수업을 틀어놓고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대개 그래 왔다.

오후 2시경 어제 엄마가 끓여 놓고 나간 돼지찌개와 쌀밥을 그릇에 퍼담아 상을 차렸다. 허물없이 지내는 엄마가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그저 이렇게 잠옷 하나 걸치고 엄마가 차려준 집밥 한 그릇 먹을 때가 편하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집이라도 편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고 아무리 아름다운 애인이라도 둘 사이의 관계가 편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듯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언어로 편하게 이야기하고 지낼 수 있는 사람과 환경인 듯하다.

그렇게 한 그릇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고 집으로 왔다. 지방간이란다. 설탕과 밀가루를 피하고 운동을 해야 한단다. 하긴 그 배에 지방간 정도면 무난한 정도다. 다행스러운 마음에 웃고 넘겼다. 의사에게 비타민 D가 부족하단 말을 들었는지 계란 노른자를 먹겠 다며 오자마자 계란을 삶는다. 나는 내가 매일 사 오는 우유나 마시라고 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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