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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글에도 숙성이 필요하다

백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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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다 보면 순간순간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남고,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영감을 얻을 때가 있다. 나는 비록 그것이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소중히 여겨 기억한 켠에 보관해 놓는다. 그러고 시간이 나면 기억을 살려 글로 옮겨본다. 구성은 미리 구상하는 게 아니라 영감을 토대로 쓰면서 구상한다. 대충 뼈대를 먼저 세운 뒤 글 뼈대에 살을 붙이며 써 내려가다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생기면 다듬기도 한다.

그렇게 쓴 글을 보며 '이만하면 되었다',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만족감을 느낀다. 근데 웬걸. 하룻밤 자고 나서 글을 보니 엉망이다. 서론과 결론이 이어지지도 않고, 문장이 매끄럽지도 않다. 그러면 다시 고치고 살을 덧댄다. 그런 일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이번에도 '이만하면 됐다'싶을 때 컴퓨터를 끈다. 그전의 과정을 거쳤기에 혹시 몰라 게재 않고 저장해두는 것이다. 다음날. 글을 다시 보며 '괜찮네'한다. 안심하고 올리면 그제야 허점들을 발견한다. 내가 섣불렀던 탓일까. 글은 또다시 수정에 수정을 거친다. 그러고 다시 읽어보면 만족스럽다.

글은 마치 숙성시켜야 하는 음식과도 같다. 타이핑은 우리가 하지만 글은 시간이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글은 완성도가 높아진다. 당장에는 완벽해 보이는 글도 시간이 지나면 허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글도 숙성이 필요한 거다.

숙성은 사람의 품을 들여 더하고 닦아내고 덧대고 빼는 시간들이 쌓여 완성된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글에는 숙성이 필요하다. 글쓴이들은 클래스가 나뉠지 몰라도 글에는 클래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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