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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 활동기 - 학창시절과 입문기

백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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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말하면 대다수가 의아해할 것 같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물론 그 청년은 나다. 내가 청년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대략적인 학창 시절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학창 시절의 나는 ‘혁명’이나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 시기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던 시기였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질풍노도의 시기였기에, 사회와 정치권에 불만이 많았다. 학창 시절부터 ‘싹수가 노랬던 ‘ 것 일까. 이미 이 시기부터 정의당에 입당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모친과 함께 살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던지라 애초에 좋은 대학은 포기해버렸다.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전학을 자주 다녔고, 전학 다니던 학교에서 싸움박질을 자주 했다. 게임을 좋아했고, 운동을 좋아했다. 20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문대에 입학했다. 전문 부사관을 지망하는 학과에 진학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장래 직업으로 직업군인을 희망했었다. 그중에서도 장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의 방황을 거치니 그 꿈은 자연스레 무산되어 버렸다. 그래도 부사관은 할 수 있을 듯싶어, 그렇게 부사관 과를 지원했다. 학과의 정확한 명칭은 ‘국방전자통신과’였다. 이과 계열의 기술직 부사관을 양성하는 학과였다. 그 학과는 문과 체질이던 나와는 맞지 않아 1년 정도 다니다 자퇴서를 제출하고 나와 버렸다. 2019년, 인척의 권유로 다른 지역에 있는 전문대에 입학했다. 학과는 방사선과였다. 정의당에 입당했을 때가 이 시기였다.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생활비만 간신히 벌던 시기였는데, 정의당에 입당서를 제출할 생각은 어떻게 한 건지 지금에 와서도 의문이다. 그 학과 역시 이과 계열의 방사선사를 배출하던 곳이라 나와 맞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자퇴했지만, 나름 경험한 것도 많았다. 



그다음 해인 2020년. 이 때는 4.15 총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정의당에 입당한 것도 잊어버린 채 지내다가 정의당 소속으로 포항시 북구에 출마하길 희망하는 박창호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가 아마 후보 선출을 위해서 경선 중일 때였지 싶다. 박창호 위원장은 당원들에게 선거 유세차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활동 의지가 충만했던 나는 ‘선거 앞두고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하고 대꾸했다. 그 전화 한 통이 인연이 되어, 2020년 4.15 총선에서 선대본 홍보팀장으로 선거를 도왔다. 물론 후보는 박창호 위원장이었다.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유세하 기도 하고, 후보를 따라나서 시장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주 업무는 '웹자보 제작'이었다. 한 달간 대략의 선거운동이 끝나고 TV를 통해 후보의 낙선을 확인했다. 예견되어 있던 낙선이었지만 씁쓸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박창호 후보는 비록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포항을 중심으로 ‘정의당 소속의 진보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굳혀진 듯했다. 나는 그 선거 이후로 당원으로서 당 활동에 참여해왔다.  


그 이후 오래전부터 정의당에서 청년 정치 활동을 이어오던 선배들은 청년정의당 창당 논의를 이어갔다. 취지는 ’ 기성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청년들의 독립된 청년 정치 플랫폼 건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정의당 창당 논의가 2020년에는 강민진 대표를 지도부로 한 창당준비위원회를 거치고 있었다. 2021년,창당을 앞두고 당내 당직 선거가 열렸다. 당직 선거는 청년정의당의 대표와 광역시도당 위원장들을 선출하는 선거였다. 이 선거가 끝나면 선출된 당직자들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조직을 꾸려 나갈 예정이었다. 나는 그 선거에서 청년정의당 경북도당 위원장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에 출마해본 경험이 전무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서툴렀다. 후보등록부터, 출마의 변 작성까지 실무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선거를 치러 낼 수 있었다. 나는 그 선거에서 그렇게 당선되었다. 

   


그 선거에서는 강민진 대표도 재출마했는데, 그는 선거에서 자신의 당선을 거의 확정시켜 놓고 나를 만나러 내려오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일면식이 없던 사이이다 보니 인사차 내려오는 듯했다. 예비 대표를 포항 앞바다로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 정치인을 만날 일이 없어 긴장하던 찰나 연식이 오래된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서더니 그가 차에서 내렸다. 머리카락을 참하게 뒤로 묶은 채 검은 양복을 입은 여성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대면하는 순간부터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대면 대면하던 와중 시답잖은 말들이 오갔다. 한참 뒤에서야 그와 함께 왔던 사무처장이 주차를 끝마치고 우리 게 왔다. 그러고는 미리 봐 뒀던 초밥집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강 후보는 채식주의자인 듯했다. 한우초밥은 내게 주고 생선초밥만 골라 먹던 그의 식성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정의당 활동가들 사이에서 비건이니, 채식이니 하는 문화가 유행한다는 것만 대충 알고 있었지 실제로 그들의 문화를 접하니 생경했다.


 밥을 살 돈이 없던 나는 그렇게 점심밥을 얻어먹고 커피를 사겠다며 해변가의 카페로 그들을 안내했다. 카페의 커피값이 원체 비싸, 부담스러웠지만, 멀리서 온 손님이니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와 테이블에 앉았다.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던지라 심히 난감했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강 후보는 내게 ”앞으로의 활동에서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냐 “고 물었다. 나는 ”바라는 것은 딱히 없습니다 “라고 답했다. 카페 흡연구역으로 가 담배를 태우려 양해를 구했더니 자신도 담배를 태운다며 함께 가쟀다. 후보와 사무처장,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초면인 세 명이서 담배를 태우니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문득 앞으로의 활동에서 이러한 어색함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 후보는 커피도 남겨둔 채 일정이 있다며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 후보는 그다음 날 당선되었다.

                    

그날 강민진 대표의 첫인상은’ 표준적인 여성 정치인’이었다.마치 유년시절 부터 정치를 준비해온 사람인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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