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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대화

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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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대화> 임지수

 행복한 기억을 추억하거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할 때, 우리는 대부분 푸른 하늘, 반짝이는 조명, 웃음 짓는 사람들처럼 시각적 요소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시각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북촌에 위치한 <어둠 속의 대화>전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어둠 속의 대화>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시각을 차단한 채, 총 7개의 테마를 체험하는 능동적 참여 프로그램이다. 전시의 모든 과정은 100분간 전문 로드 마스터의 인솔하에 이루어진다. 안전한 장소라는 건 알고 있지만 처음 암흑을 마주했을 때는 생소한 감각에 겁부터 났다. 적응하는 시간을 갖고 로드 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지팡이와 벽에 의지하며 차츰 나아가다 보니 점점 주변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정확하게 어떤 곳을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바다 건너 무인도에 여행도 가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평상에 누워 쉬기도 했다.

 가장 신기했던 구간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부분이었다. 분명 실내였고 기계에 앉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뱃고동 소리와 파도 소리, 기분 탓인지 바다의 짠 내음도 나는 것 같았고 거기에 물까지 튀기니 마음속으로 바다가 그려졌다. 생생한 바다를 그리면서도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감각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문득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갈 때 배를 탔었던 기억이 났다. 땅끝마을에서 노화도까지 수십대의 자동차를 실어가는 커다란 여객선이었다. 그때부터 멀미가 심했던 나는 바다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구석에서 눈을 꼭 감고 웅크려 있었다. 지금은 외할머니께서도 도시로 이사를 오셔서 여객선을 탈 일이 없기에 ‘멀미가 나도 좀 참고 바다 구경 좀 해볼걸.’ 하고 마음속에 아쉬움이 있었다. 가족들과 추억을 이야기할 때 나만 공감을 못 하고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게 소외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암흑속에서 익숙한 감각을 느끼자 ‘나에게도 여객선에서의 추억이 있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두 눈은 꼭 감고 있었지만 시끄러운 뱃고동 소리 사이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고,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 속에서 바다의 짠 내음도 느꼈다. 피부로 느껴지는 바닷바람도 날카롭지만 기분 좋게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일상생활에서 나는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다음으로는 청각에 의지한다. 여러 미디어 매체에서 시청각 콘텐츠를 다루고 있기에 쉽게 소비하고, 드라마,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하면서 시청각 자료들을 기억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평소 다른 전시회장에서도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남기는 것에 집중하곤 했는데 이번 전시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온전히 내 감각만으로 느끼려다 보니 그동안의 어떤 전시보다도 몰입할 수 있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까지 오감을 다 써가면서 진행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생생한 감각으로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도 당연한 일상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게 긍정적인 충격으로 남았고, 지금까지 시각으로만 남겨두었던 추억들을 다른 감각으로 기억해보려 한다.

010-3375-8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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