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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9) 그림을 그리고 싶어던 아이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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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에 소질이 좀 있었다. 내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다. 내가 한 찰흙작품을 선생님들이 와서 보고 갔다.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인데, 내가 좀 아니, 아주 잘 만들었다. 나는 미술이 좋았다. 그림을 그리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물감을 구하기에도 집이 너무 가난했다. 어릴 때, 문구점에서 조심스럽게 물감을 고르던 나를 기억한다. 정말 맘껏 물감을 쓰고 싶었지만, 난 물감에 물을 많이 넣고 연하게 색칠을 했다. 물감을 아껴야지.

초등학교 5학년, 동아일보에서 주체하는 미술대회에 신청을 하고는, 회비 500원이 없어서 나가지 못했다. 얼마 후, 다른 반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나는 신청만하고 나가지 않은 미술대회로, 혼나는 줄 알고 겁을 먹었다. 그 선생님은 미술대회에 아이들을 인솔했는데, 아이들 보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추천하라고 했단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이 대외에서 상을 받으면, 선생님 승진 점수가 올라갔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특별반을 만들어 가르쳤다. 그 추천받고 선별된 아이들이 전교 5, 내가 그 중 하나였다. 하교 후 특별 미술 수업을 했다. 나는 2번 참가하고 그만뒀다. 아무도 나처럼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없었다. 모두 제대로 된 화구세트를 들고 다녔다. 그만 두는 나를 선생님은 잡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감기로 아파서, 미술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미술 선생님이 특별히 집에서 그림을 그려오라며 나를 배려해줬다. 나는 아픈 몸으로 누웠다 앉길 반복하면서, 풍경화를 그렸다. 그때 그 느낌, 나는 그림을 그리며 희열을 경험했다. 내가 집에서 그린 그림이 특별상으로 교내에 전시됐다. 많은 그림 중 내 그림은 확실히 달랐다. 제일 잘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내 그림이 유일하게 어른의 손길이 가지 않은 그림이었다. , 다른 아이들은 학원을 다녀서 만들어진 그림이었다. 나는 내가 미술에는 특별한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랑하는 김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난 문학부에도 선택을 받았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감상문을 적어내면 됐다. 그런데 내겐 책을 살 돈이 없었다. 당시에는 도서관도 거의 없었고, 멀리 시내에 나가야 됐다. 아버지에게 책을 사보게 돈을 달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쓰는 책은 아니라고? 그냥 소설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그럼 문학부에 들어가지 마. 그냥 학교공부나 열심히 해라.”아버지의 말에 난 그냥 문학부를 포기했다.

나중에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별을 보고 허망했다. 책에 나오는 거구나. 단편이구나!(단편인 줄 알았으면, 서점에서 눈치껏 서서 봤을 거다.) 물론, 지금 같으면 문학부 선생님에게 사정을 말하고, 책을 빌려 봤겠지. 그때 내가 다닌 중학교의 문학부 애들이 좀 잘난 체를 하고 뭉쳐 다녔다. 나도 문학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내가 안 갔거든! 저소득층 여학생의 신발창 생리대 뉴스를 많이들 알거다. 학교 보건실에는 학생 용 생리대가 많다. 비상용이지만, 그걸 받아 쓸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가난한 친구는 보건선생님에게 생리대 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가난한 친구는 내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숨어서 혼자 참는다. 그 또래는 가난이 드러나는 것이 제일 부끄럽거든. 뭐 숨겨도 들어나지만.

요즘도 그렇지만, 예체능 교육에는 돈이 많이 든다. 나는 어려서 꿈을 포기했다. 나는 호구지책으로 돈을 번 다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인생에는 때가 있다는 걸, 적기 있는 것을 몰랐다. 커서 돈을 벌어 스스로에게 화구세트를 선물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물감을 아끼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처럼 그림을 집중해서 그릴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 원하는 물감과 종이를 맘껏 내게 사 줄 수 있는데, 이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재능이 사라진 내가 너무 불쌍했다. 나는 손이 잘려나간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를 연민하며 오랫동안 슬퍼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나는 내 재능을 키워 화가가 될 수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서른 쯤, 이응로 화백의 그림을 보고 전기를 봤다. 이응로 화백은 계곡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돌 위에 계곡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한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 가난이 문제가 아니었구나!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고, 이응로 화백 같은 분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구나.’ 오랫동안 내 가슴을 무겁게 내려 눌렸던, 그림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 지금까지 나를 연민했던 것이 거짓임을 알았다. 나는 가난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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