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투고

오빠가 죽었다.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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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아주 힘겹게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간호사에게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 산호호흡기는 뭐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이 건 연명치료와 상관없단다. 다만 오빠를 마지막까지 편하게 하는 조치라고 한다. 이 게 편하다면, 호흡기 없는 상태는 얼마나 더 불편하다는 건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다 잠든 것처럼 편한 호흡도 있지만, 대부분 거칠고 아주 힘든 호흡이다. 오빠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만약 이 상태의 오빠를 내가 일주일 넘게 돌보게 되면,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새벽 2시가 넘었다. 오빠의 바이탈 사인이 급격히 나빠진다. 간호사가 나에게 마지막까지 청신경은 살아있다며, 오빠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라고 한다. 나는 이미 할 말을 다 했다.

오빠의 뇌까지 암세포가 침범하고, 이처럼 고열로 의식이 없는데, 살아 있는 청신경이 어떤 의미가 있나? 내 말을 듣고 생각하며,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오빠에게 있단 말인가?’

오빠를 찬찬히 바라봤다. 살은 다 빠지고 뼈만 남은 몸, 호흡기 속 벌린 입안은 암흑이다. 뭉크의 절규. 오빠는 뭉크의 그림처럼 손을 머리에 가져가지 못할 뿐, 지금 계속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이불 밖으로 나온 오빠의 발, 나는 길게 자라난 오빠의 발톱이 눈에 거슬렸다. 오빠가 있던 병실 사물함에서 손톱깎이를 찾다가, 오빠 자리서 잠든 간병인을 깨웠다. 미안했지만 할 수 없다. 1주일 전만 해도 꽉 차 있던 병실에 지금은 단 한 사람의 환자만 있다.

단국대 병원에서 나는 오빠의 손톱을 깎아줬다. 새언니나 간병인들이 왜 그렇게 방치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호스피스 병원에서 임종 전 오빠의 발톱을 깎는다. 오빠 시신을 해부할 학생들이 오빠를 노숙자로 볼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보이는 건 너무 싫었다. 무좀으로 두꺼워진 발톱까지, 조심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정성을 쏟아 깎았다. 이런 내 모습을 봐서 그랬는지, 간호사가 오빠를 닦일 수건을 줬다. 나는 얼굴부터 팔과 다리를 깨끗이 닦았다.

오빠야, 이제 가자. 그냥 가자. 엄마 보지 말고 가자. 내가 오늘 첫 비행기타고 오는 시간 보다는 빨리 가자. 딱 이만큼만 아프고 가자. 애들이고 새언니고 그냥 다 두고 가라. 오빠야, 이제 가자. ? 가자.” 나는 앙상한 오빠의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간병인들이 일어나 움직이고, 간호사는 잠깐 아래층에 내려갔다 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545, 오빠 호흡이 바꿨다. 눈을 번쩍 뜨고, 이를 앙 물고, 괴로워한다. 몸을 흔든다. 눈이 뒤집힌다. 흰자위만 남은 눈, 힘줘 치아를 간다. 주먹을 꽉 쥐고 온몸을 떤다.

도와주세요. 우리 오빠를 어떻게 해.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내 소리에 놀란 간병인들이 달려와 간호사를 찾는다. 나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주먹을 쥐고 소리를 쳤다.

어떻게 해요. 어떻게, 오빠가 너무 힘들어요. 오빠를 좀 도와주세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뒤늦게 온 간호사가 말했다.

555, 오빠는 숨을 쉬지 않았다. 간호사는 오빠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직 의사를 찾으러 갔다. 오빠와 나만 남았다. 오빠의 손을 잡고,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빠가, 오빠가. 흑흑흑전화기 넘어 어머니의 울음이 들린다. 아버지의 울음도, 우리는 전화기를 두고 같이 울었다.

제가 오빠를, 끝까지 오빠와 같이 있었어요. 오빠 편하게 갔어요. 정말 편하게 갔어요.”

나처럼 밤을 새웠을 어머니에게, 오빠의 임종을 제일 먼저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오빠의 마지막 모습은 나만 기억할 것이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러 왔다. 2020926615.

간호사가 호흡기와 오빠의 몸에 붙은 줄들을 떼어냈다. 간병인들이 벌린 입을 모우고, 머리에 붕대를 감겼다. 그리고 벌린 팔을 가슴에 모았다. 오빠는 이제야 진정한 안식에 든 모습이다.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다. 나는 순간 오빠가 죽지 않고, 숨을 쉬고 자고 있다는 게 아닌지 의심을 했다. 오빠는 죽었다. 오빠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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