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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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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감옥에서 온 편지(7)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가난의 도시》 저자

 


지난 1월 8일 오전 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고통스럽고 정말 힘든 날이었습니다. ‘기동순찰대’에게 짐승처럼 끌려간 날이었습니다. 이유는 교도관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겁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기동순찰대가 순찰 도중 같은 방 어르신을 향해 고압적인 큰 소리로 옷 똑바로 입으라 지시했고, 평소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이분의 움직임이 굼뜬 사이 교도관에 의해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소리 지르지 마.”라고 했고, 옥신각신 말싸움 끝에 수갑이 채워져 끌려갔습니다.

 

상황은 악화되어 계속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기동순찰대 한 명이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캠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전원을 끈 상태로 보입니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손목에 상처가 보이지 않도록 수건으로 두른 뒤 수갑을 채워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목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그의 욕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최인기 씨가 작은책에 보낸 편지.

 

 

지난해 2월 구속된 날 공황장애를 호소했을 때 똑같은 방법으로 욕을 하고 폭력을 썼던 자입니다. 이번에도 “이 X새끼야, XX놈아, 범죄자 주제에 죽고 싶냐, 손목을 부러뜨려, X놈!”이라며 욕을 해 댔습니다. 제발 욕 좀 하지 말라고 하자 수갑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손목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쇠사슬을 허리에 묶어 굴비처럼 들어 올리자 내 발이 허공에 뜬 채 발버둥을 쳤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풀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오래전 자전거를 타다가 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커다란 고통을 느꼈지만 아주 찰나의 짧은 순간이었으나, 이번에는 반복적으로 손목과 허리에 고통이 가해지고 통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뒤범벅되어 이게 웬 망신인가 했습니다. 건장한 대여섯 명의 사내에 둘러싸여 반복적·지속적으로 고문을 당한 셈입니다.

 

이번에도 ‘안정실’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진 방입니다. 찬 바닥에 변기와 둥그런 세숫대야가 설치되어 있고 바깥에서 햇빛만 들어올 수 있는 창이 나 있습니다. 교도관끼리 “이 짓 하는 거 참 힘들다. 오늘은 조용히 나가나 했는데….” 농담처럼 들리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다시 수갑과 검은색 압박 쇠를 두르고 한참을 조이더니 쇠사슬을 몸에 감고 또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 고문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고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수갑과 쇠사슬을 풀어 줬습니다. 사방이 막히고 푸른색으로 칠해진 방에서 식사도 거른 채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의무과에서 의료 장비를 들고 와 체크하고 갔습니다. 차가운 방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 날도 같은 방법으로 폭력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신상 정보를 모두 파악하여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인상 좋게 생긴 교도관이 웃는 표정으로 고생했다며 이 정도인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달랬습니다.

 

짐을 챙기러 방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손목 상처를 보여 줬습니다. 증거로 남겨 놓기 위해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손목의 상처를 보여 줬습니다. 1년 가까이 화장실에서 키우던 ‘스킨답서스’도 압수당해 사라졌습니다. 모두 규정 위반이랍니다.

 

일반 시민들은 9척 담장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니, 알 수 없습니다. 세상과 격리된 이곳의 사연은 그저 전과자 사이에서나 전해질 뿐입니다. 자신들이 당해도 바깥세상에서 이런 일을 함부로 떠들지 못합니다. 편견과 낙인 때문에 고스란히 떠안고 생활할 뿐이거나, 더욱이 누구도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징벌방은 16동 중간에 있습니다. 온통 작은 독방으로 이어진 방에 한 명 또는 두 명씩 들어가 수용되어 있습니다. 한겨울 이불은 모포 두 장 그리고 필기구 한 자루, 양치 및 세면도구, 식기가 전부입니다. TV 시청과 신문 구매가 불허됩니다. 식사량도 제한됩니다. 방문을 여니 낙서로 둘러쳐져 있고 화장실은 곰팡이가 뒤덮고 있습니다. 신문지 세로 네 장 크기에 두 팔을 벌리면 가로가 손끝에 닿습니다. 변기는 악취가 풍기고 누렇게 변색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쓰다 버린 칫솔로 청소를 했습니다. 손이 퉁퉁 부어 아팠지만 변이 묻어 노랗게 된 변기통에 손을 넣어 박박 문질러 지웠습니다. 비참한 기분이 밀려들었습니다.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방문이 덜컹 열리면서 중년의 교도관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을 과거 운동권이었다고 떠벌리며 여·야 정치권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댑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알 만한 사람들입니다. 한참 떠들더니 그는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지한 얼굴로 창틀에 매달리거나 자해하지 말라며 CCTV로 다 보고 있다고 ‘경고’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조사를 받았습니다. 젊은 조사관은 점심 식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끝내자고 운을 떼면서 왜 교도관에게 대들고 지시 사항에 불응했냐며 따졌습니다. 나는 그런 사실 없다 말하고 나이 드신 노인에게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기에 옆에서 항의한 게 다라고 했습니다. 곧 조사관은 증거 자료로 동영상을 보여 줬습니다. 항의하는 모습 외엔 특별 사항은 없었습니다. 대신 기동순찰대의 폭력과 욕설도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조사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묻기에 손목의 상처를 보여 주고 기동순찰대의 욕설과 폭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근무하는 기동순찰대를 비롯해 여러 교도관의 고충에 대해서 잘 알지만 아직도 이들처럼 수용인에게 “마구잡이로 욕하고 수갑을 채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자 조사관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그는 “교정 시설의 특성상 규율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특히 얼마 전 탈옥했던 김길수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해져 더욱 그런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교도관이란 직업도 사명감 없이 일할 수 없는 것 같다”고 하며 올바른 목적과 정의를 위한 사람일수록 정도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전했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긴 복도를 지나 내 방에 도착했습니다. 조사를 받느라 점심을 굶었습니다. 방문을 여니 감옥의 습한 냄새가 훅 하고 밀려왔습니다. 잠시 후 사동에서 일하는 ‘소지’가 사발면을 뜨거운 물과 함께 넣어 줬습니다. 허겁지겁 늦은 식사를 하였습니다. 따뜻한 오후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봤습니다. 한참을 긴 호흡을 하며 우두커니 서서 햇볕의 따사로움을 즐겼습니다.

 

 

*편집자 주 : 최인기 님은 4월 11일 오전 5시 형을 다 마치고 출소하였습니다. 최인기 님의 출소 환영식에 저희 작은책도 참석해 맞이했습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전국철거민연합 등 우리 사회의 많은 가난한 이들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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