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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길 위에 선 사람들 / 문종택, 김환태 감독의 <바람의 세월>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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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가요

독립영화 이야기_ 문종택, 김환태 감독의 <바람의 세월>

 


여전히 길 위에 선 사람들

류미례/ 푸른영상 독립영화 감독


4월입니다. 10년 전 4월에는 전 국민이 그 비극의 순간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0년의 세월을 담은 <바람의 세월>이 관객들을 찾아왔습니다.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아버지 문종택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문종택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딸을 잃은 아버지입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문종택 감독은 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후부터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고 유튜브 채널 ‘416TV’를 운영하며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이하 가협)의 거의 모든 일정을 카메라로 기록해 왔습니다.

 

지난 10년간 문종택 감독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세월호와 관련한 다양한 현장들을 카메라를 들고 지켜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5000여 개의 영상들이 2024년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로 재탄생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내가 본 세상을 관객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감독의 염원으로 만들어집니다. 10년 동안 세월호 관련 영상들은 쉼 없이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 많은 영상 중에서도 올해 만나게 될 <바람의 세월>이 특별한 이유는 그 ‘나’가, 감독이, 피해 당사자의 유가족이라는 사실이겠지요.

 

영화는 경쾌하게 시작합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등굣길을 교복 입은 학생들이 경쾌하게 걷고 있습니다. 

“눈 감으면 더욱 생생해지는 기억. 다녀오겠다는 아이의 뒷모습을 조금 더 오래 봐 둘 걸 그랬습니다.”

담담한 문종택 감독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참사 전에는 평범했을 등굣길을, 그 아침을,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바라보고 있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세월을 훌쩍 넘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던 2016년 12월 9일로 갑니다. 마침내 진상규명이 될 거라는 안도감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희망으로 울고 웃는 부모들의 모습에 보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벅차오르지만 “이 기쁨이 한순간의 신기루가 될 줄을” 그땐 미처 몰랐다는 감독의 목소리에 지금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영화는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 10년의 세월을 되짚습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데리러 갔던 길, 하지만 체육관에 도착해서 맞닥뜨린 진실에 부모들은 무너지고 맙니다.

 

여객선 침몰 소식에 놀랐다가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하고 다시 새로운 소식에 놀라며 그저 승객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던 며칠을 함께 돌아보다 보면, 참사 초기 우리가 얼마나 국가를 믿었는지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하나 처참하게 깨져 갑니다. 아이를 데리러 갈 생각으로 진도에 내려갔다가 아이들이 여전히 바다에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잠수사 500여 명을 투입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알아차리던 시간. 언론들은 그 거짓말을 그대로 내보내고 그러다 결국 현장에서 탈출한 사람들 외에는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하게 되자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립니다.

 

국가와 언론과 시스템을 믿었던 가족들은 기대와 희망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 가며 싸움을 시작합니다. KBS에 항의 방문을 하고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시민들의 어깨를 지붕 삼아 버텼습니다. 기대를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떨쳐 일어났던 것은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민 아빠가 단식했을 때 시민들 또한 동조 단식을 하며 46일을 함께했고 유민 아빠가 병원으로 실려간 후에는 대신 그 자리를 채우며 함께했습니다.

 

시민들의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던 날어떤 부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준 건가”

 

<바람의 세월>에는 비옷을 입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촬영을 멈추지 않는 문종택 감독님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그 ‘바람’의 세월이 얼마나 많은 굴곡과 사연들로 채워져 있는지를 꼼꼼하게 보여 줍니다. ‘진상규명’의 바람을 가지고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문종택 감독 덕분에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았거나 단신으로 스쳐 지나갔던 사건들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고스란히 보여집니다.

 

단식과 도보 행진과 삼보일배와 6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서명과…. 다 열거하기도 힘든 노력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는 듯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 이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학교와 재학생 부모들은 공간이 부족하다며 교실을 빼라 하더니 나중에는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제적 처리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바뀌면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유민 아빠와 함께 단식을 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가족들을 청와대에 초대하기에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생명 안전 공원’ 조성은 여전히 뒷전이고 안산의 합동분향소, 광화문 분향소, 노란 리본 공작소, 광화문 기억관 등이 차례차례 철거됩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꽃과 방명록 등은 비닐 봉투에 담겨 바닥을 뒹굴고 그 장면을 본 부모들은 아이들의 자리가 자꾸만 사라져 간다고 눈물짓습니다.

 

흩날리는 노란 리본들 너머로 한 시민이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안전사회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부모의 마음, 부모들의 존재는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지성 아빠, 문종택 감독의 모습이 스쳐 가듯 보입니다. 학생들의 물품들이 치워지는 순간, 딸의 자리에 앉아서 소리도 없이 오열하는 모습. 탄핵 소식에 기뻐하며 행진을 하던 부모가 미소와 함께 던지던 말 “지성 아빠도 수고했어요”, 그리고 중간중간 같은 유가족의 입장에서 다른 부모의 이름을 부르는 문종택 감독의 목소리…. 광주의 부모들이 세월호 부모들을 위로했듯이 세월호 부모들은 이태원 참사의 부모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거리를 걷습니다.

“국가폭력과 참사. 이름만 다른 비극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됩니다. 겉모습만 다를 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진실을 서둘러 덮으려는 모습이 참 닮았습니다.”
 

대통령이 바뀐 후에도 세월호를 지우려는 노력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집을 단장하며 가야할 길을 모색합니다.

 

10년의 세월동안 문종택 감독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바람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답답해 보이겠지만 어떤 방향이든 방향을 찾고 계속할 거라고. 그리고 함께 걸어온 다른 유가족들이 고맙다고. 여전히 길 위에 있는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주세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위한 바람을 가지고 10년을 달려온 아버지의 이야기 <바람의 세월>을 극장에서 만나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문의: 시네마달 02-337-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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