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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 11기, 큰딸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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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전 11기, 큰딸

김형숙

 


 3월 14일은 큰딸의 생일이다. 10년 만에 미역국을 끓여 얼렸다가 큰딸의 생일에 맞춰 택배를 보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20대를, 큰딸은 생일 미역국을 거부한 채 자신과의 싸움을 해 왔다. 큰딸의 첫 취업 시험은 2014년 4월 19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보는 시험이라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육지로 시험을 보러 가야 하기 때문에 항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을 때쯤, 나라를 뒤흔들었던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대형 선박 사고를 당한 것이다. 무사히 돌아온 아버지를 마주했지만 살아왔다는 안도감 대신 처참히 무너져 버린 아버지 모습에 시험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시험을 봐야 한다는 가족들에 떠밀려 첫 시험을 보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 병실에서 합격자 발표를 확인했지만 역시나 딸의 수험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첫 시험이고 상황도 상황인지라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준비를 했지만, 딸아이 앞에 놓인 처참한 상황들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 우리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2015년 3월 20일, 다시 시험을 2주 정도 앞두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방에서 쉬고 있어야 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는 아버지 휴대전화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채 말이다. 불길한 예감에 화장실 문을 열어 보니 아버지는 손목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급히 엄마에게 연락을 하고 119를 불렀다. 큰딸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엄마를 따라 응급실로 같이 가고 싶었는데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올 동생이 화장실의 처참한 상황을 볼까 봐 혼자 남아서 뒤처리를 다 했던 것이다. 그 뒤로 큰딸은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했고 집에 혼자만 남아 있어도 늘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자신이 응급구조사임에도 아버지를 빨리 처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늘 괴로워했다. 그러니 두 번째 시험 또한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1년에 반 이상을 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생활은 쉽지가 않았다. 나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둘째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아버지의 간호는 오롯이 큰딸의 몫이 되었다. 몸이 아픈 것이라면 간병인이라도 쓰겠지만 마음의 중병이 생긴 아버지를 케어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해 성년의 날에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내려간 아버지가 병원 화장실에서 또 손목에 자해를 해서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나중에 보니 팔에다가 성년이 된 둘째 딸과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팔에다가 ‘죄인’이라는 글자를 새긴 것이었다. 또 세상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기가 일쑤였으니 큰딸은 점점 지쳐 가고 마음이 곪아 가고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막막한 현실에 큰딸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2016년에는 119 소방 상황실에 계약직으로 합격을 했다. 경력도 쌓고 경험도 쌓을 겸 어렵게 들어간 자리이기에 기대가 정말 컸고 본인의 의지도 강해 보였다. 무엇보다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대인관계도 좋고 무엇이든 한번 배우면 잘 익히기에 가족들 누구 한 명 큰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첫날 출근을 해서 교육을 받고 둘째 날 실전으로 첫 신고 전화를 받았는데 큰딸은 심장이 두근거리며 얼어 버렸다. 신고 전화가 가족이 자해를 했다는 전화였는데 그 순간 아버지 자해를 보고 119에 전화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렵게 얻은 자리이기에 어떻게든 이겨 내려 했지만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좀처럼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일주일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20대 초반에 시작했던 취업 준비는 이제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기피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잃어 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를 해 주면서도 위축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열 번의 시험을 치른 것 같다. 누군가는 이제 다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본인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부모가 먼저 포기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가면 결승 테이프를 끊을 것 같은데, 큰딸은 늘 결승선을 앞에 두고 다시 출발선에 돌아와 서 있어야 했다. 그것도 열 번씩이나 말이다.

 

그림_ 박소영(베짱이도서관 관장)

 

 이제 딸의 나이 앞에 ‘3’이라는 숫자를 보게 되었다. 시험을 앞둔 큰딸에게 가족들은 늘 그런 응원을 보냈다. 너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너의 지난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딸의 인터뷰 기사를 본 아버지도 자신의 아픔만 생각하느라고 가족이 겪는 고통을 돌아보지 못했다며, 이제 가족 걱정은 그만하고 자신의 길을 가라며 등 떠밀어 주었다. 그런 힘이었을까? 아니면 신이 큰딸에게 이미 좋은 길을 예비해 두었으면서도 더 감격하고 더 감사하라고 그랬는지, 먼 길을 돌고 돌아 결승선 테이프를 끊게 해 주었다. 그 결승선은 딸아이가 선택한 색깔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서프라이즈한 결승선이었던 것이다. 그날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한 말은 그것이었다.

 “엄마, 나는 그냥 이제 직장 생활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어. 비록 작더라도 온전히 내 월급이라는 것을 받아서 월세도 내고 적금도 들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사며 살고 싶어.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원한 삶이었는지 몰라.”

 

 딸은 여름이 되면 해수욕장에서 민간 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신의 용돈을 쓰기도 했다. 어느새 그 일도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돼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갑자기 취직이 결정되면서 마음이 바빠진 것은 나와 남편이다. 같이 상경해서 딸이 살 원룸을 알아보기도 했고 챙겨 보낼 것들로 분주해졌다. 그래도 누구 하나 힘들다 어렵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에게 취직하면 집에 있는 유일한 자가용을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차량을 배에 싣고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밤새 운전을 해서 딸이 머물 여주 숙소에 도착했다. 2022년 7월 15일 첫 출근을 다녀와서 신나게 떠들던 큰딸의 쫑알거리는 모습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딸이 그렇게 수다스러운 아이였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얼른 주말이 지나서 출근하고 싶다고, 너무 기대되고 즐겁다면서 말이다. 원룸에 혼자 두고 어떻게 돌아오나 걱정했던 것은 다 쓸데없는 기우였을 뿐이었다.

 

 시험 없이 10년 만에 맞는 생일에 남편은 큰딸에게 가서 미역국을 끓여 주고 오는 것으로 그동안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다고 했는데 고가의 항공료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그동안 10년 치 못 먹은 양만큼 미역국을 끓여 택배로 보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딸이 제일 좋아하는 킹크랩까지 삶아서 살을 다 발라 보낸 것이다. 딸아이의 반응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기에 생략하려고 한다.

 

 올봄은 10년 만에 큰딸의 시험이 없이 보냈다. 대신 둘째 딸이 시험을 보았다. 둘째 딸은 왜 언니가 시험 안 보는 것만 중요하고 자신이 시험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냐며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불만의 소리가 우리 귓가에 전해질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한다. 자신의 자녀들은 두세 번 떨어져도 기운이 다 빠져 포기하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텨 왔냐고 말이다. 정답은 그 아이의 엄마인 나도 모르겠다. 그냥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가족들이 믿어 주고 지지해 주니 됐다는 상투적인 말을 해 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0전 11기!! 열 번을 넘어져도 굳건히 열한 번째 일어선 내 큰딸이 산 증인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 아이의 선한 끝이 이렇게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선한 영향력이 또 다른 꿈을 꾸는 많은 이들에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접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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