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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좆같이?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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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변산일기

 

뭐 좆같이?

안건모/ 변산공동체 일꾼

 

유압 도끼날이 또 떨어졌다. 실린더와 도끼날을 용접한 부분이 떨어졌는데 벌써 세 번째다. 떨어진 부분을 사진 찍어 유압 도끼를 만든 공업사 사장한테 문자를 보냈다. 대꾸가 없다. 아마 더 고치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더 고치러 오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이번에 네 번째 떨어졌는데 다시 때워 봤자 그 사람 실력으로 될 것 같지가 않다.

 

지난해에 망가진 유압 도끼를 고철로 팔고 난 뒤 장작을 쪼갤 수가 없었다. 옛날엔 다 도끼로 쪼갰는데 이젠 팔꿈치가 아파서 도끼질을 할 수가 없다. 도끼질을 할 때마다 팔꿈치 안팎이 250볼트 전기에 짜릿! 하고 감전되는 듯하니 힘을 줄 수가 없다. 병원에서는 병명이 ‘테니스 엘보’, ‘골프 엘보’란다. 테니스, 골프는 생전 한 번 친 적이 없는데 너무 억울하다. 무거운 예초기로 풀을 베다가 걸린 병이다.

 

그래서 올해 공동체 돈으로 자동 도끼를 하나 샀다. 정기 씨가 인터넷에서 샀는데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였다. 유압 도끼가 아니라 체인으로 된 도끼였는데 손잡이를 당기면 날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와 장작을 쪼개는 구조였다. 그런데 장작이 짧아야 한다. 조금 길면 그 기계에 들어가지 않아 별로 쓸모가 없었다. 게다가 금방 고장이 났다. 정기 씨가 그 회사에 문의를 했더니, 뭐 콘덴서를 바꾸라나 모터를 바꾸라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처방만 해 줬다. 

 

변산공동체의 아침. 사진_ 안건모

 

그래서 유압 도끼 같은 걸 사려고 검색해 봤더니 값이 너무 비쌌다. 300만 원쯤은 줘야 조금 쓸 만했다. 춘호가 지서리에 있는 공업사에서 그런 도끼를 만든다고 해서 같이 갔다. 말이 ‘공업사’이지 사장 혼자서 자동차, 트랙터 바퀴 펑크도 때우고 여러 가지 용접도 하는 곳이었다. 사장은 유압 도끼를 150만 원에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전에 있던 유압 도끼에서 빼놓은 모터를 쓰는 조건이었다. ‘좋아. 내 돈 들여서라도 하나 장만하겠어.’ 하고 만들어 달라고 했다.

 

며칠 뒤 유압 도끼를 다 만들었다고 해서 공업사에 가서 가져왔다. 장작을 쪼개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섯 개 정도 쪼갰는데 도끼날이 휘었다. “뭐야, 이렇게 약해?” 공업사 사장한테 전화를 했다. 가져오란다. 트랙터에 싣고 공업사로 갔다. 사장이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더니 고쳐 주겠다고 했다.

 

며칠 뒤에 공업사로 갔다. 그럴듯하게 고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공업사 사장이 5만 원 더 내라고 한다. 뭐? 처음엔 약간 어이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준 것 같으니 그깟 5만 원이 뭐가 아까울까. 5만 원을 입금하고 유압 도끼를 가져왔다. 그리고 며칠 뒤 장작을 쪼개기 시작했다. 장작을 한 10개 정도 쪼개는데 실린더와 도끼날 용접이 돼 있는 부분이 떨어지고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두꺼운 철판이 휘었다. 다시 전화를 했다. 공업사 사장이 금방 왔다.

 

공업사 사장이 보더니 큰소리를 친다. “아니, 어떻게 썼길래 이 모양이요?” 어이가 없다. 내가 잘못 써서 그렇다는 말인가? 참았다. 참으면 잘 고쳐 주겠지 하고 참았다. “아니, 이게 이렇게 떨어지고 밑에 철판까지 떨어져요? 어떻게 쓴 거요?” 화가 났지만 참으면서 함부로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업사 사장은 한참 구시렁거리더니 자기 공업사로 가지고 오란다. 화가 나는 걸 참고 다음 날 유압 도끼를 차에 싣고 공업사에 갖다줬다.

 

이틀 뒤 다 고쳤다고 전화가 왔다. 공업사로 갔다. 그럴듯하게 고쳤다. 밑에 철판도 덧대고 튼튼하게 만든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차에 싣고 가려고 하는데 “25만 원 더 줘야 돼요.” 한다.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자기가 잘못 만들어 놓고 25만 원을 더 내라고? 살짝 화가 났지만 또 한 번 참았다. “25만 원은 너무 비싼 거 아니요?” 했더니, 그 사람이 잠깐 생각하더니 “15만 원 더 주세요. 이 철판도 사 온 거요.” 하고 말했다. 그래 이 사람이 그걸 만들어서 얼마나 남겠나, 노동시간도 많이 걸렸을 테니 그 정도는 줘야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입금하겠다고 하고, 유압 도끼를 가지고 왔다. 올라와서 장작을 몇 개 쪼개 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또 떨어질 것 같았다. 그날 15만 원을 입금하지 않았다. 밤에 사장한테서 문자가 왔다. 그 사람이 돈을 입금해 달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해 준다고 답장을 했다. 내일 아침에 몇 번 시험해 보고 괜찮으면 입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장작 하나를 집어넣고 스위치를 내렸다. 윙! 하고 도끼날이 내려가다가 장작을 쪼개고 올라오는데, 엥? 도끼날은 안 올라오고 실린더만 올라온다. 또 그 부분이 떨어진 거다. 화가 났다. 당장 전화할까 하다가 참았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전화하자. 다시 고쳐 주겠지. 돈 입금 안 하길 다행이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떨어진 그 부분을 사진 찍어 공업사 사장한테 보냈다. ‘또 떨어졌네요.’ 문자를 보내고 춘호네 밭에서 우엉 캐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공업사 사장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사장이 화를 버럭 내면서 말한다.

“아니, 어떻게 그 부분이 또 떨어져요?”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참으면서 한마디 했다. “글쎄요, 용접한 부분이 너무 약해서 그런지 자꾸 떨어지네요.”

“아니, 그럼 내가 용접을 좆같이 했다는 거요?”

그 순간 열이 확 솟았다. 스스로 살기가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우엉 작업이고 뭐고, 우엉 자르던 칼을 가지고 바로 내려갈까 할 정도로 화가 치솟았다. 오래전 버스를 운전할 때 회사 어용 기사들하고 싸울 때 소주병을 깨서 팔에다 그으며 휘둘렀던 때처럼 분노가 일었다. 속사포처럼 쏘아 댔다. 

 

“뭐? 좆같이? 이런 씨발, 말을 좆같이 하네. 어따 대고 좆같이 했다는 말을 해? 내가 언제 용접을 좆같이 했다고 했어?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나한테 좆같은 말을 하는 거야? 용접한 부분이 약해서 떨어진 게 아니냐고 했는데, 뭐 좆같이 했다고? 어디서 말을 좆같이 하고 있어!”

아, 싸울 때 나이를 들이대면 정말 웃기는 건데 갑자기 나이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거야. 내가 많이 약해졌구나. 옛날 같으면 ‘야, 이 씨발놈아, 너 거기서 기달려. 바로 내려갈게.’ 하고 내려갔을 텐데 말이다. 그 사장이 한마디만 더 했더라면 정말 춘호네 우엉 작업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장이 갑자기 공손해졌다.

“오늘 올라가면 공동체에 계시는 거요?”

“아니, 오늘 없어요.”

 

다음 날 그 사장이 산소 용접기가 실려 있는 차를 몰고 공동체로 올라왔다. 한 번만 더 구시렁거리면 유압 도끼고 뭐고 그냥 보내 버릴까 마음먹었는데 어쩐 일인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다시 한참 동안 용접을 한다. 그런데 공동체에 살고 있는 스위스인 도미닉이 그 사람이 용접하는 걸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옆에 있던 세영 씨한테 독일어로 말했다. 세영 씨가 나를 보면서 “또 떨어질 것 같대요.” 하고 통역을 해 줬다. 용접한 부분이 또 떨어지면 자기가 해 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도미닉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사람이 열심히 용접을 하고 있지만 믿지는 않았다. 또 떨어질 걸 알면서도 저렇게 열심히 때우는 걸 보면서 한편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용접이 끝났다. 사장이 장비를 챙기며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입금은 왜 안 해 주는 거요?” 엊그제 얘기한 15만 원을 달라는 말이었다. 에고, 어이없었지만 한편으로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사실 이름만 ‘공업사’지 혼자 일해서 먹고사는 자영업, 노동자 아닌가. 노동의 대가는 당연히 받아야지. 그날 밤에 15만 원을 입금했다.

 

재래식 탈곡기로 이삭을 털고 있는 변산공동체 식구들. 가운데가 안건모 변산공동체 대표. 사진 제공_ 변산공동체

 

다음 날 그 유압 도끼로 장작을 쪼갰다. 한 시간 정도 했나? 얼마 안 가 용접한 부분이 덜렁거리더니 다시 떨어졌다. 사진을 찍어서 그 사람한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없다. 15만 원 안 보냈으면 답장이 왔을까? 다시 고치러 왔을까? 와도 고치지는 못할 것 같아 전화는 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도미닉에게 맡겨 봐야겠다.

 

덧붙임. 그 도끼날은 금방 또 떨어졌다. 며칠 뒤 도미닉이 도끼날을 새로 만들고 실린더에 용접을 하지 않고 파이프에 끼워 나사로 고정해 놓았다. 기가 막힌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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