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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워요, 아버지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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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워요, 아버지

김경민

 


가진 모든 것을 태운 날이었다. 나는 사실 다 태우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도 추억하고 추모할 물품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은 사람이 떠나는데 이승에 물건이 많으면 훠이 떠나지 못한다고, 자꾸 미련만 남아 구천을 떠돌게 된다고, 다 태워야 한다고 했다. 법적으로 어른이지만 아직 ‘어린’ 어른이어서 내 의사에는 힘이 없었고 그 말을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태우는 물품 중에는 비닐에 싸인 새 작업복, 내가 사 드린 새 지갑 등이 있었다. 아버지의 소박한 품성은 물건 몇 가지로도 금세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어차피 이리 갈걸, 왜 그렇게 아끼고만 사셨데….’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마음의 위치를 알려 주듯이 아려 왔다. 앞으로도 종종 이곳이 아리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10월의 화창한 어느 날 이 세상 소풍을 마무리하셨다.

 

아버지는 회사 작업복을 입고 운동화와 안전화를 번갈아 신으며 노동을 하는 현장 노동자였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산업단지에서 베어링을 만드는 공장을 기반으로 터전을 잡으셨다. IMF 이후에 일본의 투자 자본에 공장이 넘어갔지만 아버지는 해고당하지 않았다. 공장은 점점 몸집을 불려 갔다. 사원 가족들 운동장으로 사용하던 곳에까지 모두 생산 건물을 세웠다. 무한 생산을 원하듯 24시간, 365일 공장이 돌아갔다. 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를 하셨다. 거기에 6·2근무제(6일 일하고 2일 쉬기)를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환한 얼굴로 퇴근했다. 그런 아버지의 앞모습만 보며 자라 왔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가정 조사가 있었다. 아버지 생년월일, 학력,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권침해가 분명했지만 그때는 통용되는 때였다. 그 가정 조사 종이를 가져가면 아버지가 참 미안한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그때는 친구들이 ‘우리 아빠는 의사야, 우리 아빠는 변호사야.’ 하면서 나에게도 아버지가 뭐 하시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항상 ‘우리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이야.’라고 대답했다. 늘 우리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만 대답했다. 어쩌면 영혼 없이 전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부끄러워하면서.

 

난 아버지를 몹시 좋아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처음 사랑한 사람이자 제일 많이 사랑한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파란색 깃이 달린 옷이 아니라 하얀 옷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는 운동화가 아니라 구두를 신으셨으면, 공휴일에는 특근을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나랑 놀아 줬으면 했다. 공휴일 아침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눈뜨자마자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는 했다. 열 살이 되기 전 해,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가 왜 집에 계시지 않는 거냐고 엄마에게 물었을 때, 엄마가 ‘아빠 돈 벌러 가셨어.’라고 하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억울한 느낌이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여섯 살 때 할머니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제공_ 김경민

 

아버지가 하는 노동이 어떤 것인지 온전하게 이해했을 때는 아버지가 내 옆에 계시지 않았다. 막상 내가 ‘어리지 않은’ 어른이 되어 공장에서 일을 해 보니 비로소 아버지가 이해되었다. 아버지가 만드는 베어링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어떤 기계들이 필요했는지, 그걸 만들어 내는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뒤늦게야 알았다. 왜 아버지는 공휴일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잔업을 매일 밥 먹듯이 하시는지, 얼굴이 퉁퉁 붓고 두통약을 늘 구비하셨지, 철야 근무가 끝나면 라면을 꼭 드셨는지도. 많은 것은 이해되었는데 아버지가 옆에 없다. 그게 10월이 되면 너무 시리게 느껴진다.

 

아버지를 회사원이라고 불러서 죄송하다. 아버지는 노동자였는데, 자랑스럽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왜 이렇게 철이 늦게 들었을까. 마음을 안아 드리는 말 한마디 듣고 가셨으면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졌을까. 미안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노동이 하얀 옷을 입고 하는 노동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의 노동이 내가 사는 사회의 근간이 된다고, 아버지의 노동으로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묵묵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드리고 싶다. 재주가 없다며 머쓱하게 웃으셨지만 아버지의 최대 무기인 ‘성실함’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버지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활짝 웃을 때 티 없이 맑은 웃음이 터지는지, 지금이라도 직접 알려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절삭유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그 체취를 아버지 냄새로 알고 살았다. 그 체취가 뼈저리게 그립다. 아버지가 노동하러 가느라 잠시 내려 둔 이름 세 글자를 현관문 앞에서 다시 달고 오시면 더 기쁘게 아버지를 맞이하지 못해 죄송하다. 지독한 사춘기가 지났는데, 아버지가 옆에 없어 내 마음을 다 읽어 드리지 못해서 속이 많이 상한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리움은 절대 작아지지 않는다는 걸 꼭 이렇게 아프게 알게 된다. 후회하는 동물일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는데 너무 허망하게 아프다. 가슴을 쳐도 크기가 줄지 않으니 삼키고 자꾸 삼키면서 앞으로 내 남은 생을 보내게 되겠지. 동료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누구보다 친절했던 분.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 배울 수 있었던 많은 교훈과 지혜들이 앞으로의 내 삶의 원천이자 기준점이 되겠지.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일하다 쉬는 시간에 자판기에서 한 잔씩 뽑아 마셨다고 알려 준 ‘설탕 커피’ 한 잔 사 드리고 싶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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