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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청소년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권리를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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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거리 청소년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권리를

허미라/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조합원

 


저는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라 직업이 자주 바뀐다’는 자조적인 말을 합니다. 2004년 말부터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에서 7년여 일하면서 빈곤과 차별, 폭력 피해로 점철되어 온 수많은 여성들의 생애를 보았습니다. 이후 개인사로 긴 휴지기를 보내고 사회복지시설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게 되면서 ‘사회복지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2020년 초반 사회복지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부터입니다. 저는 차별의 자리에서 차별을 만든 공식을 풀어 가며 일하고 싶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은 저에게 노동을 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1년 계약으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일터를 이동해야 하는 노동 현실에 저항해야 했습니다. 지금 저는 비정규직 해고자이고, 사회복지시설 상시 업무 비정규직 해고 철회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2023년 5월 26일 서울YMCA 건물 앞에서 해고 철회와 계약연장을 위한 면담을 요구하며 17회차 금요집중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2023년 1월 1일 저를 해고한 사용자는 서울YMCA입니다. 2004년 야간거리이동상담이라는 자원 활동에서 서울YMCA와의 첫 인연이 있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밤거리에 차려 놓은 부스에서 청소년 커플에게 사발면을 제공하며 성평등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 거리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2022년 서울YMCA가 운영하는 용산일시청소년쉼터에서 야간생활지도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채용 공고를 보고 오래전에 자원 활동을 했던 서울YMCA에 대한 호감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11일에는 서울YMCA에서 청소년쉼터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념행사에 쉼터 실무자로서 참석하고 싶었지만 전날인 11월 10일 쉼터 소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기념행사에 해고 통보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후 계약만료일인 12월 31일을 앞두고 서울YMCA에 계약 연장을 위한 면담을 요구하며 일인시위와 금요 집중 선전전을 이어 갔습니다.

 

2023년 5월 26일 허미라 씨가 서울YMCA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서울YMCA는 서울시의 위·수탁으로 용산일시청소년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노동조합과의 면담에서 서울YMCA 자신이 실질적 사용자이고 문제 해결 주체임을 부정하였고, 서울YMCA 앞에서 수개월간 시위를 했던 저를 외면했습니다. 그런 서울YMCA는 2022년 3월, 정부에 ‘갱신기대권을 법제화하여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라’는 노동정책을 제시한 시민사회단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23년부터 청소년 사업을 재수탁하기 위해 서울시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현재 종사 인력 전원을 고용 유지하겠다’고 하고 저의 업무 분장도 구체적으로 적시하였습니다. 또한 위수탁 승인을 받기 위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준수하고 사업계획서를 사실대로 작성하였다는 서약을 하였습니다. 이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전환하도록 하는 서울시의 지침을 따른 것이고, 서울YMCA가 정부에 제시한 노동정책이 보여 주듯 서울YMCA의 고용안정 방침에 따른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의미 있는 노동을 하고 싶지만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계약기간 동안에만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별받고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청소년쉼터에서 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청소년쉼터 주야간 보호 업무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상시, 지속적인 업무이지만 청소년쉼터는 주간 노동자와 차별하여 야간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쉽게 해고하는 행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업무지원팀장에게 특이 사항이 없으면 계속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갱신기대권을 확인받았습니다. 사회복지사업은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 사업비를 전액 지원하여 운영되고 있고, 개인이나 재단의 소유가 아니며 인사권자가 전횡을 부려서도 안 되는 공공업무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노동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함부로 해고하는 일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허미라 씨가 2023년 9월 1일 서울YMCA 건물 앞에서 서울YMCA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묻기 위해 95회차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은 공공운수노조 해고자복직특별위원회 남성화 위원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며칠 전 2023년 9월 6일에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 재심인 중앙노동위원회 심문 회의가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하지만 비정규직 고용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 나라에서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갱신기대권이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하여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기간제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기 위한’ 갱신기대권 법리는 그동안 고용 형태로 차별받아 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와는 달리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사용자에 대한 심문이 활발히 이루어져 승소를 기대하였지만,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준비 부족을 자책하게 되기도 하지만, 저를 해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용자들의 뻔뻔함과 서울YMCA의 무책임에 백기를 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에 점점 더 당당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지만 사용자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정합니다. 상시 업무임에도 야간노동을 임시직으로 규정합니다. 계약갱신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합니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는 불합리함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듭니다. 서울시도 차별 규정을 감독하지 않습니다. 노동위원회도 차별 규정, 차별 논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용자를 대변하는 법조인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권이 걸린 문제를 사용자의 재량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를 개발합니다.

 

의미 있는 관계를 1~2년마다 바꾸어야 하고, 직장을 1~2년마다 옮겨 다니며 1~2년마다 굴곡진 인생 곡선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비정규직 고용 행태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저항하기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장을 위해서 일하는 이들과 선주만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청소년복지 현장에서는 ‘선생님들 간에도 차별이 있다’며 맑은 눈을 잃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알려 줄 수는 없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이 차별 시정이어야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복지시설에는 자신의 그라운드에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조합의 존재와 역할을 금기시합니다.

 

저는 밤늦게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지 모를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전화하기를, 방문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을 맞이하며 처한 상황과 마음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부당해고 구제 신청 과정에서 투명한 절차와 근거도 없이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 맘대로 평가당하는 제물이 되었고 청소년 현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었던 꿈이 짓밟혔습니다. 나와 이웃 또한 겪을 수 있는 사회적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쉼터를 찾아오는 청소년들이 겪을 수 있는 재난과 부당함에 대한 공감조차 잃을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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