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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0.1퍼센트 크리스천의 조건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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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상위 0.1퍼센트 크리스천의 조건

김민/ 서울 마포구 주민

 


나는 유년 시절을 그야말로 ‘SKY 대학 입시’ 버금가는 교회 생활을 버텨 내며 지냈다. 특히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내 방학만 되면 남들은 휴양지로 가족 휴가를 떠나지만 우리 가족은 기도원이 휴양지였다. 친구들이 시원한 물놀이를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때 나는 빽빽한 어른들 틈에 무서운 방언 소리를 들으며 2박 3일 금식을 했다. 방학 때만 이런 특급 훈련이면 족할 텐데 이게 끝이 아니다. 내 부모님은 내가 상위 0.1퍼센트 크리스천으로 살기 바라신 게 분명하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어머니의 기도만 무려 1시간!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잠들기 일쑤였다. 수요일엔 수요예배, 금요일엔 금요철야, 토요일엔 교회 청소와 노방전도, 아파트 각 현관문마다 전단지(교회 주보) 꽂는 일, 일요일엔 주일학교로 시작해 11시 주일예배, 오후엔 찬양예배…. 이렇게 나의 일주일은 온통 교회로 가득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매일 성경 1장씩 필사를 해야 했다. 도저히 채우지 못할 땐 친구들한테 급하게 SOS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교회 엘리트 10대를 보내며 결국, 부모님이 원하는 교회의 인재가 되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은 채 신학교를 가게 됐고 유초등부 전도사로 3년간 사역을 했었다.

 

 

내 부모님은 왜 그렇게 열심이셨을까. 아들이 하나님을 알기 바랐던 걸까. 아니면 그들의 욕심이었을까. 어느새 서른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나는 부모님과 차를 타고 시골을 갈 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왜 그렇게 강제로 시켰어요?”

“뭐가?”

“교회 생활요.”

엄마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래도 그때 그랬기에 지금까지 교회를 잘 다니잖아.”

말문이 막혔다.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과거 유년 시절 강요했던 모든 게 다 괜찮아지나 보다. 혼란스럽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자녀의 마음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교회 사명을 잘 완수했다는 마음 같았다.

 

그렇게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가스라이팅일까, 아니면 정말 부모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걸까. 그게 아니라면 긴 세월이 지나면서 내 속에도 믿음이 생겼나 보다.

 

내가 퀴어가 아닌 이성애자였다면, 이 모든 고민들을 하지 않았을까? 그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와 부모님이 물려준 신앙관에 갇혀 지내왔으려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교회에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확실하다. 성경에 “동성애는 죄”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득할 거라는 목사님들의 설교 내용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예수님은 낮은 자들과 함께하셨다는데, 왜 교회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까. 성경 <레위기>에 적힌 그 말 때문에? 태초에 아담과 하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일차원적이고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무책임한 얘기들뿐이다.

 

2022년 기준 한국 개신교의 신자 수는 국내 인구의 20퍼센트, 약 1000만 명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 유년 시절 예배와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게 순위로 매겨진다면 나는 0.1퍼센트 안에 속한다고 자신한다. 여전히 많은 교회들은 0.1퍼센트 신앙인이 모범인 양 전도에, 교제에, 헌금에, 예배 참석에 열을 내며 양성, 아니 강요를 해 오고 있다.

 

그렇다. 퀴어의 정체성을 어릴 적부터 인식해 오던 0.1퍼센트 크리스천인 나는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섬기는 모범생이었지만 철저하게 나를 부정하며 살아왔다. 이젠 내가 누구인지, 나를 세상에 드러내려 한다.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외치고 싶다.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셔!”라고. 0.1퍼센트는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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