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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지원가 예산 삭감을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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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온 소식


동료지원가 예산 삭감을 철회하라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팀장

 


중증장애인 노동권 예산마저 전액 삭감한 윤석열 정권

윤석열 정권하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집행되던 대부분의 공공 예산이 삭감되었고, 사업을 수행하던 노동자들도 해고될 위험에 처해졌다. 이 중에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이하 동료지원가 사업) 전액 삭감도 들어 있다. 2019년부터 시행되었던 동료지원가 사업 23억 원(2023년도 예산 기준)이 전액 삭감되어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187명(2023년 6월 기준)이 당장 내년부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작년 대비 고작 1.6퍼센트 증가가 전부인 ‘장애인취업지원 사업’ 예산 중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한 곳조차 6개월짜리 장애인 인턴제에 불과하다. 민간사업체는 고용장려금이 있더라도 중증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공공 부문의 일자리 역시 업무 보조, 청소 등 당사자의 적성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1년 이하의 단기계약직, 근로지원인도 부족하여 해고되거나 고용되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고용노동부가 중증장애인에게 놓인 최악의 고용 환경을 개선하고자, 중증장애인 고용을 자기 책무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한 의미 있는 사업을 고용노동부 스스로 걷어차는 꼴인 셈이다.

 

지난 9월 15일 국회 앞에서 개최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폐지 철회 촉구’ 기자회견. 사진 제공_ 백선영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의 박탈이 의미하는 바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한다. 한때 장애인들은 평생 집 밖을, 시설 밖을 나설 수 없던 삶을 살았다. 사회로부터 격리와 배제가 당연시되던 늘상 ‘해고’당하던 삶,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데 평생 사회적 삶을 살 수 없는 건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 아닌가.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상투어가 된 지 오래이나, 발달장애인에게 ‘동료지원’이란 노동은 임금을 받는 노동 이상의 의미였다.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지원가 스스로 교육 자료를 만들고, 회의 안건을 만들고, 업무 일지를 작성하고, 이슈에 대해 토론하며, 동료 상담을 위한 출장을 간다. 나아가 자신이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아 가며 “갈등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증장애인에게 보장되던 공공일자리의 박탈은 현재의 삶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 자체를 빼앗아 버린 것과 같다.

 

동료상담가와 역할 중복?

고용노동부는 사업 폐지의 이유로 보건복지부 동료상담 사업과 중복된다는 근거를 들었다. 동료상담가는 전국의 254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각 1명씩 고용되어 동료의 지역 사회 자립을 위해 상담과 지원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대부분 신체장애인이다. 한편 동료지원가는 취업을 매개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하는 장애인 187명 중 70퍼센트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다. 두 사업 간에는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크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전액 삭감으로 일자리를 잃는 동료지원가들을 복지부의 다른 일자리나 장애인표준사업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연계하겠다 밝혔으나, 고용도 보장할 수 없고 표준사업장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보내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중증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복지부와 민간에 떠넘기려는 목적인 것이다. 과거 정책이 중증장애인을 복지서비스 수혜자로 보고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면 동료지원가 사업은 중증장애인을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당사자로 본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동료지원가 사업 폐기는 고용노동부 자체가 이 사업에 대한 이해를, 나아가 중증장애인 고용을 통한 사회적 역할 선도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할 의사도 없음을 확인케 한다.

 

취업 실적이 없는 게 동료지원가 때문인가

취업 연계가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은 동료지원가 개개인의 부족한 노동 때문이 아니라 지독한 비장애 중심 고용 구조에 있다. 당장 일터에서 중증장애인을 볼 수나 있는가? 연계를 시작해도 장애인고용공단의 구직 상담의 문턱조차 넘을 수 없고, 연계될 일자리도 없어 결국 다시 무직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 중증장애인의 현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더욱이 성과에 대한 집착만으로는 개선이 어려움을 방증한다.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 살아갈 수단을 제공해 주지 않은 채 결핍과 무능을 증명해야만 쥐꼬리만큼 지원되는 복지서비스, 장애인 고용률 2.5퍼센트, 거의 제로에 가까운 처참한 고용 상태 속에서 정형화된 단순노동의 일자리만 전전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들은 장애인들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치로 가둔다. 장애인이 직업 생활을 통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기본으로 하는 장애인고용공단, 이를 근거로 정부가 공단의 모든 노동자들을 실적이 없다고 해고한다 생각해 보라.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고용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손대지 않은 채 정부는 약자부터 건드리는 악질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23억 원, 많지 않은 예산을 잘라 버린 속셈치고는 파장이 크다.

지난 9월 18일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삭감에 항의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로비를 점거 농성을 벌이며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들 활동가 27명을 연행했다. 사진 제공_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숫자로 평가될 수 없는 실적

정부가 그토록 강요하는 실적 때문에 2019년에는 동료지원가 고 설요한 씨가 투신하기도 했다. 상담 횟수를 채워 가며 엄청난 양의 문서 수발을 해야 하고, 취업 연계가 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연계 수당까지, 모든 것들이 ‘실적’에 목을 매게 하는 구조였다. 작년만 하더라도 197명의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들이 3202명의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만나 왔다고 한다. 노동부의 취업 상담 문턱조차 밟지 못하고 사회 활동에서 소외됐던 수많은 이들을 동료지원가 한 명 한 명이 발굴하고 만나 왔다는 점, 이것이 성과가 아니면 무엇인가. 동료지원가의 역할은 중증장애인 당사자에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 활동 참여를 촉진하며 취업 의욕을 높이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단순히 “참여자 ○○명”, “취업 연계자 ○○명”이란 숫자로만 실적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일자리 연계를 위한 체계적 지원은 전무한 채 수행 기관이 인적·물적 자원 등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정부는 ‘실적’이란 핑곗거리 말고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대안 마련에 힘써야 한다.

사진4.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문구를 써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에 부착했다. 사진 제공_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지원가 예산 삭감 철회를 넘어

지적장애인 염전 노예 사건은 단지 자극적인 가십성 기사 제목만은 아니다. 발달장애인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의 문제일 수 있다. 장애를 근거로 어떠한 규율도 기준도 지키지 않은 채 노예로 두고 착취하는 사건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당사자와 장애인 부모 100여 명이 85일간의 점거 농성 끝에 마련한 것이 동료지원가 제도였다. 노동과 자립이 불가능한,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존재적 무용함이야말로 정부와 사회가 강요해 온 허울이라는 것을, 발달장애인도 충분히 사회적 기여를 하는 노동자일 수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 통로를 무참히 끊는 정부의 만행에 다시금 분노한다. 동료지원가 예산 삭감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사업에 대한 원상복구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노동권 의제들도 더 구체적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일, 고용지원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하는 일, 일자리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일 등 필요한 활동들은 산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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