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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 동생, 그렇게 안 봤는데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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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근로계약서? 동생, 그렇게 안 봤는데

 

박형민/ ‘좋은 이웃’ 청년모임 마니또 스물한 살 청년

 

 

2020년 9월, 나는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을 했다. 회사 일은 내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할 거 딱 하고 욕먹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과장님, ‘회사-술-집-회사-술-집’ 회사 일을 저녁에 술로 푸시는 내 옆자리 차장님,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장님은 회사의 모든 일을 꿰고 있었다. 어려운 일도 항상 한 번에 처리해 주시며 “이건 이렇게 하면 돼.” 하고 알려 주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많이 힘들어 보였다. 회사 선배들이 미래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니 좋지만은 않았다. 회사 생활 역시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익숙해진 회사 생활보다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요리나 운동을 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어느 날은 내가 요리한 ‘수비드 닭가슴살’을 헬스장 트레이너와 함께 먹게 되었다.

“어우~ 이거 뭐야! 회원님,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내가 맛있게 먹으려고 한 요리였다. 헬스장 트레이너는 한발 더 나아가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그렇게 새로운 부업이 시작되었다. 매일 퇴근해서 운동하고 집에 가면 ‘수비드 닭가슴살’을 만들었다. 다음 날 헬스장에 가져가서 팔았다. 새로운 부업은 생각보다 즐겁고 쏠쏠했다. 하지만 피곤한 탓에 회사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상급자에게 좋지 못한 소리도 자주 들었다. 그 탓인지 회사 생활에 대한 마음이 더욱 지쳐 갔다.

그때 헬스장 관장이 솔깃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만든 닭가슴살을 같이 팔아 보자고 했다. 자신이 헬스장 인맥을 이용해 영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에 지쳐 있던 나는 이 제안을 덥석 물고는 퇴사해 버렸다.

 

퇴사 후 한 달간 사업 준비에 정신없었다. 그러다 동업을 제안했던 헬스장 관장이 치킨집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함께 만들려던 닭가슴살 사업을 보태면 세금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하겠노라 이야기했는데, 헬스장 관장은 생각이 달랐다.

“닭가슴살 시작하기 전에 내 치킨집 주방을 분리해서 떡볶이 배달 전문집을 한번 해 볼래?”

 

새롭게 시작하려던 일은 저 멀리 있는데, 동업자라고 생각했던 헬스장 관장이 생각하지 못한 제안을 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내가 당장 큰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직원으로 일해 보라는 건데, 문제 되지는 않겠다 싶었다. 시간을 내 연수 프로그램에 가서 주방 일도 배우고 필요한 물품, 식자재를 확인하며 장사 준비를 했다. 크고 작은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100퍼센트 헬스장 관장의 사업이고 나는 당분간 직원이니 그러려니 했다. 장사만 시작하면 될 무렵,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면 좋겠어요.”

“형민아? 야, 동생… 동생… 그렇게 안 봤는데….”

 

고용노동부의 근로계약서 홍보 자료.

 

사장은, 우리는 동업자 아니냐며 왜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냐고 했다. 설마 설마 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려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한 태도로 화를 내면서 서운하다는 식으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그러면 일 못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한 달 뒤부터 급여도 꼭 주고 계약서를 작성해서 오겠다며 일단 시작하자는 말에 장사를 시작했다. 시작한 지 2주가 지날 무렵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했고 결국 헬스장 관장과 싸우고는 울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진_ 경기도청

 

그 누구도 보기 싫었고 아무하고도 말하기 싫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실패자가 된 것 같았다. 새로운 시작의 연속이었지만, 무기력과 슬픔만 남아 있었다. 방에 들어가 2주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니던 회사나 잘 다녔어야 했나?’, ‘욕심이 많았던 걸까?’, ‘아직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건가?’, ‘난 이거밖에 안 되는 놈인가?’ 등등 정말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잘못할까 봐’, ‘실수할까 봐’, ‘실패할까 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니또 모임에서 힘든 일 있으면 말하라던 한솔이 형이 생각났다. 두서없이 상담을 요청했다. 만나기 전에는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 창피했다. 막상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전혀 그럴 것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끝난 게 아니라 경험이 하나둘 쌓여 내일로 가는 계단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차피 하고 싶은 것은 해 보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잘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도 새삼 알았다. 혼자 방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고민을 나누니 다시 새로운 시작점이 보였다. ‘실패해도 괜찮구나, 실패했다는 거는 도전했다는 거고 실패가 쌓여서 더 성장하는구나.’ 하고 몸소 느꼈다. 

 

사실 성장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 나가고 있다. 제과제빵 배우기, 클라이밍, 기타, 집에서 요리하기 등등.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이제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역특례 업체에 입사한다. 그리고 마니또 모임에 내가 만든 빵도 가져가고, 늦게라도 모임에 참석한다. 힘들 때면, 회사에서 나오고 싶을 때면 우리 마니또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내 속마음을 더 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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