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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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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

 


“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격언이야. 프랑스의 18세기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서 안 된다.”라는 말과 함께 가슴속에 새겨 왔어.

 

그런데 지금은 생태적 관점 때문에 이 격언을 말하기가 좀 난감해졌어. 오늘날에는 모든 잡초에게도 나름 존재할 이유와 가치가 있다고 말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격언은 사람들이 생태적 관점을 갖기 이전에, 잡초가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었을 때 한정해 쓸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얼마 전부터는 나도 말하지 않게 되었는데, 세상이 더 험악해지는 것 같아서일까, 최근에 다시 이 격언을 곱씹게 됐어. 생태적 관점을 배제한다는 조건 아래 이 격언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고 싶어진 거야. 그건 내가 생태적 관점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이 격언의 메시지가 워낙 소중한데 이를 대신할 만한 격언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야. 요컨대, 이 격언을 다시 끌어들인 건 우리 사회의 불평등, 불의, 차별, 혐오, 위선, 내로남불, 갑질 등을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뽑을) 수는 있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야. 이 글에 나오는 잡초는 생태적 관점이 배제된, 오로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면 좋겠어.

 

사람들은 잘 알고 있어, 세상이 온통 잡초밭이라는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앞에 말한 불평등, 차별, 혐오, 위선, 내로남불, 갑질로 꽉 차 있다는 점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어. 또 사람들은 잘 알고 있어,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런 잡초들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을. 그럼에도 잡초를 뽑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나선다면 이 세상에서 잡초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내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초를 뽑으러 나서는 대신 “세상이 온통 잡초밭이네!”라고 평가하는 쪽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야. 이른바 식자층일수록 그런 경향을 더 보여. 그들은 일거에 잡초를 모두 없앨 수 없나 궁리를 하는 편이지. 이렇게 궁리를 하는 것에서 멈추거나 평가할 뿐 일상에서 잡초를 뽑지 않으니 세상은 온통 잡초밭으로 남아 있는데 그러니까 또 말해. “세상이 온통 잡초밭이네!”라고. 그래서 강조하려는 거야. “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라고. 이 격언을 통해, 우리가 좌절, 단념하거나 냉소에 그쳐선 안 된다는, 우리에겐 좌절, 단념, 냉소의 권리가 없다는 뜻을 공유하자는 거야.


사람들은 자주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하지만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부모가 바뀌지 않는데 교육이 바뀔 수 있을까? 스스로는 바뀔 염도 없고 실제로 바뀌지 않으면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바뀌지 않지. 그러니까 또 말해.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와 정치도 마찬가지야. 정치적 동물인 사회구성원 각자가 스스로는 바뀔 염도 없고 실제로 바뀌지 않으면서 사회와 정치가 바뀌기를 바라는 거야. 바뀌지 않으니까 계속 말해. “우리 사회 바뀌어야 한다!”, “한국 정치 바뀌어야 한다!”고.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흔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변하지 않아. 실상 나를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그럼에도 나의 일상을 바꾸는 것으로 나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봐. 실로, 일상 바꾸기는 무척 중요한 일이야.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니까.

 

난 애당초 파리바게뜨 빵집에 갈 일이 없었어. 파리에 있는 동안 아침마다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곤 했는데, 여기선 상호가 파리‘바게뜨’인데 바게트가 아예 없거나 엉터리 바게트밖에 없으니 갈 일이 없었어. 이젠 던킨도너츠도 먹을 일이 없어졌어. 파리바게뜨 임종린 노동조합 지회장이 53일 동안 단식을 했어. 대단한 요구사항을 내건 게 아니라 당연한 내용이었어. “점심시간 1시간은 당연히 밥 먹고 쉴 수 있어야 하고, 아프면 당연히 쉬고, 가족이 상을 당하면 당연히 가 볼 수 있어야 하고, 일을 했으면 당연히 그만큼 급여를 받고, 임신했으면 당연히 모성보호를 받고, 당연히 연차·보건 휴가를 쓰고, 열심히 일하면 당연히 공정하게 진급하고, 다치면 당연히 산재 처리를 하고, 약속하면 당연히 지키고….” 이 당연한 요구를 내걸고 단식을 했는데 사업주가 꿈쩍도 하지 않았어. 이렇게 노동자들에게 보란 듯이 갑질을 해대는 악덕 기업을 우리가 모두 없앨 수는 없더라도 줄일 수는 있어야 하잖아. 우리가 함께 “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라고 외치며 SPC 계열의 가게 앞에서 발길을 돌리면 아무리 지독한 기업주라도 두 손 들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렇게 우리 각자의 일상을 바꿔 보자는 거야.

지난 8월 9일 박혜영(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당해고자 박해규자살시도피해대책가족위원회 가족대표) 씨가 서울의 한 파리바게트 매장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이참에 자랑삼아 내 가방 속에 <작은책> 구독 신청서를 갖고 다닌다는 말을 해야겠네. 종종 주위 사람에게 <작은책>의 새 독자가 되도록 권유하는 게 내 일상의 한 모습이야. <작은책> 독자 한 사람이 1년에 새로운 독자 한 사람씩만 확보해도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그런 모습은 잡초를 뽑는다기보다 작지만 예쁜 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 어때, 시도해 보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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