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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이 다는 아니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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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정규직이 다는 아니다

김경학/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처음으로 진행되는 원청과의 교섭

 

2021년 11월 한국지엠 원청이 금속노조로 ‘사내하도급 관련 특별협의’ 공문을 보내왔다. 한마디로 지금껏 불법으로 사용해 왔던 비정규 노동자에 대해 교섭으로 풀어 보자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말 기가 막혔다. 교섭은 올해 3월부터 시작해 세 번의 만남으로 한 달 만에 끝났다. 이유는 한국지엠이 내놓은 ‘재직자, 1차 업체, 직접생산 공정’에 한해서 “260명만 신규 발탁 채용한다.”는 제시안을 끝으로 “이 제시안이 최종안이다. 조율할 수 없다. 노조가 제시안을 받지 않으면 더 이상의 교섭은 없다.”면서 “노조가 제시안을 받아야만 제시안에 대해 상세적인 교섭이 있을 수 있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시정명령을 내린 1719명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교섭이라는 틀을 이용해 재직자와 해고자, 1차 업체와 2, 3차 업체 그리고 직접생산 공정(컨베이어벨트에 붙어서 직접적으로 생산에 가담하는 공정)과 간접생산 공정(자제 보급 및 서열 공정은 직접 생산에 가담하지 않는 간접공정이라는 이유로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간접공정 또한 불법파견이라는 판례가 있다.)으로 갈라치기 꼼수를 부린 것이다. 한국지엠은 260명만을 한정해서 신규 발탁 채용하면서 불법파견에 대해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과거의 불법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과거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러면서 3월 31일 해고예고장을 보냈다. 비정규직지회는 이 제시안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안타깝게도 해고예고장을 받아 든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측의 꼼수를 거부하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 사측은 일방적으로 발탁 채용을 강행했고, 17명의 노동자가 사측의 꼼수를 거부하면서 5월 1일 해고되었다.

 

지난 4월 14일 창원공장에 해고예고통보서를 돌려준 비정규직지회. 한국지엠은 교섭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통보서를 날렸다. 사진 제공_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사측은 꼼수로 끝내지 않고 비정규직지회를 향해 마수를 뻗었다. 한국지엠 부사장이 창원 비정규직지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260명의 자리 중에 조합원이 거부한 15개의 자리가 남는다. 그중에 5명의 해고 조합원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말이 추천이지 해고 조합원을 나누라는 말이었다. 지회장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자 부사장은 전직 지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똑같이 해고 조합원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전직 지회장은 부사장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바로 지회장에게 집행부가 해고 조합원을 모아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 집행부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데도 전직 지회장은 15명을 선별하여 사측에 명단을 넘겼다. 전직 지회장은 노동자를 갈라치려는 사측의 마수에 넘어갔다. 발탁 채용을 거부한 15명 조합원의 자리를 자신이 꿰차기 위해 조직적 배신을 했다. 그리고 정규직이 되었다. 그의 선택은 해고를 각오하면서 투쟁을 결의한 해고 조합원의 투쟁 의지를 꺾었고 투쟁 과정 중 형성된 조합원들의 계급의식과 연대의식은 의미를 상실해 버리기 충분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해고 조합원 생계의 어려움을 피력하면서 집행부가 해고 조합원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집행부도 모두 해고노동자이다. 그렇지만 투쟁하겠다는 의지로 투쟁팀에 남아서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있다. 그들의 각오를 무시한 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처럼 정규직만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현재 전직 지회장은 경남지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의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지엠 사장 카허카젬을 구속시키는 퍼포먼스를 하는 비정규직지회. 사진 제공_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 투쟁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2005년부터 시작한 불법파견 투쟁이 17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비록 2005년 사측의 공세에 비정규직지회는 거의 전멸했지만 몇몇이 뜻을 모아 2013년부터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지엠은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고, 두 번의 노동부 시정명령이 있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규직 희망퇴직으로 공백이 생기면 비정규직으로 자리를 메웠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는 업체 폐업은 매년 수시로 일어났고, 인소싱(외주화한 공정에 정규직이 일하게 하는 것)까지 벌어졌다.

파견법에 제조공정은 ‘파견이 불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대공장 자본은 엄청난 이득이 되는 비정규직 사용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법파견 투쟁은 파견이 불가능한 사업장에 불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글로벌지엠이 대우자동차를 헐값에 사들여 비정규직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수천억의 부당이득을 취득해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경영상의 문제를 들먹이며 한국지엠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 대해 고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국민 혈세 8100억 원도 받아 갔다.

 

정규직이 다는 아니다

 

나도 2018년 인소싱으로 해고되어 투쟁팀에 남아 투쟁하고 있다. 한국지엠뿐만 아니라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파견 투쟁을 하고 있다. IMF 시절 만들어진 비정규직은 현재 경쟁사회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도태되어 실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비정규직이 없던 시절에는 정규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은 선망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정규직만이 목적이 아닌, 정규직이 되어도 ‘어떻게’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현장에는 당장 바꿔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일하는 동안에도 급한 생리현상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우리는 컨베이어벨트에 묶인 로봇처럼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지급되는 장갑 수량을 늘리는 문제, 몸이 아프거나 집안 경조사가 있어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연월차, 일하다 다치더라도 교대해 줄 대체인력이 없어서 치료 후에는 바로 일해야 하는 상황들, 무기계약직단기계약직 상관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 기간 등 노동자라면 지켜져야 할 권리들이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투쟁으로 바꿔 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로 우리의 노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원청의 사주를 받은 하청업체의 문제만 지적해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청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불법파견 투쟁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앞에 있는 부평,창원,군산 3개 비정규직지회의 공동 농성장. 사진 제공_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내가 투쟁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고 바꿔 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불법이라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게 아니라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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