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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가 밥그릇을 엎은 이야기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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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아큐가 밥그릇을 엎은 이야기

 

이철의/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립공원공단 희망지부 조합원

 

 

나는 국립공원공단 녹색지킴이이다. 월출산 국립공원사무소에 속해 있고 월출산 자생식물원에서 근무한다. 나무나 풀의 씨앗을 파종해서 키우고, 화분이나 땅에 옮겨 심고, 다른 곳에 보내기도 한다. 넓은 식물원 부지에 심은 나무를 관리하거나 풀을 깎는 등 단장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월출산국립공원 입구. 사진_ 이철의

 

본래 녹색지킴이는 산에서 일을 한다. 청소, 순찰, 탐방객 안내 등을 하는데 나는 지킴이 일을 두어 달 하다 식물원 근무를 자원했다. 한갓진 곳에서 나무를 기르는 게 좋았고 눈치 볼 일이 없어 더 좋았다. 적당히 노동하니 건강이 좋아지고 체중도 불었다. 나는 오래도록 이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관리자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 연초에 선발할 때 5 대 1 경쟁을 두 번이나 뚫었다. 나는 칠십이 될 때까지 녹색지킴이를 하거나 식물원에서 기간제로 근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이제 다 틀렸다. 어느 날 나는 뚜껑이 열렸으며 밥그릇을 발로 차 엎어 버렸다.

월출산국립공원 자생식물원의  실내 증식장. 사진 제공_ 국립공원공단 희망지부

 

나는 철도 기관사를 하다 정년퇴직하였다. 평생 노동운동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고 건강이 안 좋았다. 나는 해남을 좋아했으므로 아무 연고가 없는데도 이곳에 왔다. 집에서 닭을 키우고 개와 고양이를 키웠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매일 산책을 하고 책을 썼다. 실업급여가 다 되어 갈 무렵 우연찮게 취직이 되었다. 나는 평생 파업을 일삼으며 세상을 어지럽히던 정체를 숨기고 직장과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올해 나는 삼 년째 식물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가르쳐 준 선배는 내가 상당히 총명하고 성실하여 식물원을 훌륭히 가꾸고 있다고 평했다. 나무 의사 자격을 가진 후배도 들어와 둘이 열심히 하면 그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물원 관리책임자는 월출산 국립공원사무소 초급 관리자이다. 매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지킴이와 무기계약직을 거쳐 정규직이 된 의지의 한국인이다. 성실하고 운을 타고났으며 항상 자신감에 넘쳐 “내가 지킴이를 할 때는…” 하고 자기가 개고생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후배들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욕도 곧잘 하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직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매우 훌륭한 관리자였다. 그의 눈에는 눈치 없이 일하는 우리가 약간 못마땅했겠지. 그래서 선의를 가지고 계도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과장님이 와 계시는데 꼭 물을 주러 가야 하겠냐?”, “센터장이 예초기로 풀을 깎는데 왜 딴 일을 하냐? 내가 직접 빗자루로 쓸어야 하겠냐?”, “과장님이 와 계시는데 화분 정리 같은 일을 지금 해야 하냐?” 

센터장은 자신이었고 과장님은 우리의 직속상관이었다. 그날 과장님은 식물원 연못 파기 때문에 식물원에 와 있었다. 높은 사람이 왔으므로 아랫사람들이 따라가 뒤처리를 해야 했는데 그의 눈에 우리 둘은 엉뚱한 일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뚜껑이 열린 식물원 인부의 항변은 다음과 같았다. “요즘 날씨에 온실이나 하우스에 물을 안 주면 화분이 금방 마른다.”, “풀이라고 손바닥만큼 깎아 놓았다. 나랏님마냥 모 심는 흉내를 하면 우리는 수건 들고 기다려야 하냐?”, “비 오는데 화분 흙을 바깥에 방치하면 엉망이 된다. 과장님 옆에서 다들 얼쩡거리기만 했지, 우리만 실제로 일한 거 같다.”

그날 나와 후배는 연못에 들어가 낫으로 갈대와 억새 베기, 할미꽃 씨앗을 받아다 파종하기, 연못에 있던 방부목을 트럭에 싣는 일도 하였다. 모두 센터장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인데 그날따라 센터장은 우리를 콩 볶듯 볶았다. 소장의 지시라며 단호박을 심으라고 했을 때 나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단호박 모종. 사진 제공_ 국립공원공단 희망지부

 

“작년에 단호박 심어 맛도 못 보았는데 올해는 백이십 그루나 심으라고? 소장이 계약직원을 시켜 공유지에 호박을 심어 다 가져가겠다고? 작년에 네 명이 하던 일을 둘이 근근이 하고 있는데 풀까지 깎으라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일은 곱절로 늘어나고 오늘처럼 볶일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묵묵히 일만 했다. 다음 해 다시 선발되고 싶었고 칠십까지 계속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 같으면 너 정도는 한 방에 보냈어. 나이 든 내가 참아야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그동안 쌓은 내공이 깨지는 거지.”

나는 이렇게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즐겨 썼다. 나뿐 아니라 지킴이 동료들도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능숙하게 썼다. 나는 이제 정신승리보다는 직접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그날 집에 돌아가 공단 이사장에게 보낼 공개편지를 썼다. 당사자나 사무소에 항의해 봐야 왕따 되기 십중팔구였으므로 수뇌부에 호소하기로 한 것이다. 센터장이 우리에게 한 언행을 사실대로 적고 소장이 단호박을 심어 다 가지고 갔다, 올해는 열 배로 늘려서 심으라고 한다고 사실을 공연히 적시하였다. 사실을 공연히 적시해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므로 거짓은 조금도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음 날 아침, 편지를 센터장 및 과장, 지킴이 동료들, 해설사 등 직원들에게 일제히 발송했다. 식물원 관련 공식 밴드에도 게재하였다. 센터장에게는 “틀린 내용이 있으면 오전까지 지적해 달라. 점심시간 뒤 공단 홈페이지에 게재하겠다.”라고 알려 주었다. 

자동차로 출근하는데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근길에 식물원으로 찾아갈 테니 대화를 하자고 하였다. 그날 대화에서 해결의 가닥이 잡혔다. “센터장은 식물원에서 손을 뗀다. 근무복과 안전화를 신속하게 지급한다. 오후에 한 명을 충원하여 인력 문제를 해소한다.” 나는 단호박 문제는 소장이 직접 사과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합의를 무효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갑질한 센터장이 와서 사과했다. 카카오톡으로 사과했으니 되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찾아와 고개를 숙이니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센터장에게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며칠 후 코로나로 쉬던 소장이 식물원으로 찾아와 대화했다. 소장은 “단호박을 심어 혼자 먹으려고 한 게 아니다. 산밭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것이다.”라고 해명하고 소통이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요구한 문제들이 대체로 받아들여졌으므로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기왕에 밥그릇을 엎었으니 하고 싶은 일이나 하겠다. 민주노조에 가입했으니 남은 기간 활동을 하다 가겠다.” 하고 알려 주었다. 노조활동을 어떻게 하실 거냐고 해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 노동조건 개선 캠페인을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 나는 민주노조에 가입하였고 노조 지부장과 교육부장을 만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찾아와 일인 시위를 함께하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연말까지 분회를 건설해 보겠다. 안 되면 노조의 필요성이라도 느끼게 만들겠다.”라고 약속하였다.

월출산국립공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이철의 씨. 사진 제공_ 국립공원공단 희망지부

 

나는 본래 성격이 급하고 할 말을 참는 사람이 아니다. 본색이 드러났으니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식물원 일이 떨어지게 된 것은 아쉽다. 칠십까지 해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기르던 나무하고 헤어져야 하다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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