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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글쓰기모임 겸 작은 송년회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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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가 가네요. 올해 마지막 글쓰기모임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글쓰기모임에 다녀갔습니다. 강좌도 아니고 누가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 그저 모임일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작은책> 글쓰기모임과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사람이 더 소중해서였을 겁니다. 만나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고 술 한잔 기울이는 그런 모임이라서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글쓰기는 덤이었지요. 이곳에서 글쓰기를 배워 필력을 뽐내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완주 고산에도 글쓰기모임이 있습니다. 김지영 씨는 고산에서 처음 글쓰기모임을 할 무렵 우울증이 심했답니다. 글쓰기를 하면서 치유했던 경험을 <작은책>에 보내주셔서 이번 1월호에 실었습니다. 저희 <작은책> 글쓰기모임이 어떤 분한테는 큰 도움이 됐구나 하고 뿌듯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분의 경험을 나누어보고자 여기에 전문을 싣습니다.


, 그리고 올해 <작은책> 송년회는 따로 열지 않습니다. 서울 <작은책> 글쓰기모임이 끝나고 바로 소박한 송년회를 합니다. 글쓰기모임 회원들이 아니라도 상관없겠지요. 작은책은 처음 오는 분도 어색하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2시부터 4시까지는 독서모임을 합니다. 이달에 읽을 책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들녘, 2007)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분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작은책 사무실은 합정역 2번 출구, 망원역 1번 출구에서 약 10분 떨어진 곳에 있어요.


02-323-5391입니다.


언제- 20181222일 토요일 4(다달이 넷째 주 토요일)


어디서- 작은책 사무실(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81-2 태복빌딩5)


문의할 곳 : 작은책 02-323-5391/



나는 글쓰기로 우울증을 치료했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  -   김지영(완주)

 

나는 75년생 김지영이다.”

얼마 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선호빈 감독의 영화 <B급 며느리>가 화제가 되고 급기야 책으로도 나오고, 김영주 작가의 <며느리 사표>까지. 요즘 이렇게 결혼한 여성들의 삶의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관심이 쏟아지는 것이 정말 반갑다. 왜냐하면 내가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2006년에는 결혼 생활에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이상한 여자로 취급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 나는 그 어디에서도 마음속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내놓을 곳은 병원뿐이었다. 그마저도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큰 잘못을 한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모르게 다녀야했다. 더 큰 문제는 남편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병원에서 중증 우울증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는 것이 부끄럽기보다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고 있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매주 한 시간씩 상담을 받으며 눈물, 콧물을 쏟고 있었지만 무너진 마음들은 좀처럼 주워 담기 힘들었다.


<작은책>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서 당시 <작은책> 편집장이었던 안건모 선생님의 글쓰기 강연이 있었다. 그 강연에 참석했던 J언니가 안건모 선생님과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자고 했다.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답답한 마음을 좀 풀 수 있을까 싶어 모임에 나갔다. 안건모 선생님께서는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쓰게 되신 이야기며,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 등을 편하게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작은책>을 갖고 오셔서 보여주셨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책>에는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표지 글이 있었다. 내용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좋은 잡지라고 하니 또 책값도 부담스럽지 않고 얇아서 1년 구독을 하게 되었다. 안건모 선생님께서는 매달 서울에서 완주까지 먼 길 마다않고 글쓰기 모임에 오셔서 각자 써온 글들을 함께 읽어보고 수정해주셨다.


처음에는 글 한줄 쓰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끙끙거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이 써보라고 조언해주셨다. 다른 사람들이 써 온 글들을 읽으며 , 나는 언제 저렇게 써볼 수 있을까?’ 부러워하고만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래 나도 한번 써보자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던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결혼으로 달라진 예기치 못했던 삶에 대해, 독박 육아로 지치는 일상에 대해, 이해받지 못하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하소연으로 점철된 편지글을 가지고 글쓰기 모임에서 발표했다. 내가 쓴 글인데도 읽어 내려가던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떨리고 식은땀이 나던지...... 안건모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써 간 내 글에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조목조목 알려주시면서, 여러 내용이 뭉쳐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내보기를 조언해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써 가기 시작했다.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시간들이 더 많았지만, 마음속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매달 글쓰기 모임이 있는 전날은 밤을 꼴딱 새기 일쑤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 앞뒤 문맥도 안 맞고 내용도 어설프기 그지없어 늘 빨간 펜으로 수정되기 일쑤였지만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주는 그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 게다가 생협 언니들의 생생한 반응들과 응원은 꽉 막혀있던 마음에 통쾌한 바람을 몰고 왔다. 병원 의사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쏟던 시간들보다 글쓰기 모임에서 더 답답함이 풀어지고 시원해졌다. 자연스레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급기야 약도 끊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내 글이 <작은책>에 실리게 된 것이다. 단 한 줄도 쓰지 못해 끙끙거리던 내가 난생처음 잡지에서 내 글을 만나게 된 것이다. 마치 연예인이 된 것 마냥 잡지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보는 일은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기만 했다. 읽고 또 읽고 틈만 나면 보고 또 보고했다. 이후 나는 글쓰기를 계속 하게 되었고 간간이 <작은책>에 내 글이 실리게 되었다. 그 때부터 매달 <작은책>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건성건성 넘겨보던 <작은책>을 늘 들고 다니며 보게 되었고,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중파 방송에서 외면 받는, 힘없고 그늘진 자리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내게 새로운 눈을 갖게 했다.


<작은책>을 통해 시작된 글쓰기는 내게 치유의 시간들이었다. 어디에서든 이상하고 예민하고 문제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하던 내가 처음으로 공감과 응원을 받았다. 게다가 <작은책>에서 내 글을 만나는 것은,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괜찮다고 숨고 감추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병원에서도 해결되지 않던 마음의 병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회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더 이상 대책 없이 무너지진 않게 되었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또 다시 우울증에 빠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등등 남편과 아이들의 기호가 아닌 오직 나의 것을 생각해내는 것은 놀랍게도 쉽지 않았다. 결혼은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나라서 좋았던 것들을 추리고 추려서 남은 것은 서른 살 배낭여행책읽기였다. 이십대 때부터 시작된 집안 빚잔치는 서른이 되는 십년동안 이어졌고, 그 지긋지긋한 빚잔치가 끝났을 때 내 수중에 200만원의 돈이 남아있었다.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려 이룰 수 없었던 꿈이던 배낭여행 떠났고 그곳에서 매일매일 빵 한 조각으로 버티면서도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설레는 날들을 맞았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알바시간에 맞춰 뛰어 다니던 쫒기는 하루가 아니라 내 의지로 내가 만들어가는 그전과 완전히 다른, 두근거리는 하루가 있었다. 십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내 속에 그 하루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책읽기는 회피하고 싶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힘들 때마다 책은 내게 작은 위안을 주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여행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밤마다 아프리카로 남미로 남극으로 유럽으로 떠나는 이야기들 속에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1년 후 나는 아이들과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 때 <작은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아직도 병원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안건모 선생님께서 성의껏 수정해주시는 내 글들과 그 글들을 <작은책>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약에 의지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사람들만이 주목받는 세상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지켜가는 낮은 자리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 모른 채 두려움에 맞서 아이들과 배낭여행을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작은책>은 내가 틀렸다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무엇이든 어떤 이야기든 해도 괜찮다고 토닥여주었다. < 작은책>을 만난 이후 비로소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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