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투고

엄마의 빨간 손톱

정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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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엄마! 그게 뭐야!”

엄마에게 소리는 낮췄지만, 불쾌함을 담은 말투로 말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차를 주문하고 오니 엄마가 신발 벗은 발을 의자에 올려 양반다리를 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발목을 빙빙 돌리며. 평소에 내가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우리 엄마가 하고 있다니(완전 깬다ㅠ)! 옆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 중 한 명이 흘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창피한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엄마의 손을 봤다. 울퉁불퉁, 빨간색 메니큐어가 거칠게 칠해 있었다.

“엄마, 손톱은 또 뭐야~? 내년에 70인데, 에휴..”

최근 엄마의 행동에 화가 쌓여있던 나는 일부러 날카롭게 내뱉었다. 병원 검진때문에 시골에 계신 엄마가 올라오신 지 한 달이 넘었다. 첫날부터 아이들이 사용하는 방을 엄마에게 내어드리고, 내 방을 아이들과 사용했다. 좁은 집에 사람 한 명이 더 늘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게 많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모르시는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하는 예능을 보시면서 깔깔 웃으셨다. 평소엔 거의 텔레비전을 틀지 않는 우리에겐 너무 생소한 광경이었다. 아니, 시끄럽고 짜증이 밀려왔다. 그것뿐인가! 나랑 아이들, 반려견에게까지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오메, 나갔다 왔으믄 바로 옷을 갈아입어야제. 할머니가 거실 다~닦았는데 밖에서 묻은 먼지가 다 떨어지네!”
“오메, 머리카락 좀 묶어라~”
“오메, 보라야~ 패드에다 잘 좀 싸라~ 옆으로 다 새냐~”
“오메, 이거 언제적 꺼냐~냉장고에서 상추가 다 시들었다야!”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의 “오메, 오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급기야 어제저녁에는 큰아이의 매니큐어를 꺼내어 바르시는 게 아닌가!

“앗, 할머니 그거 제꺼 아니예요?”
“아, 니꺼였냐? 방에 있길래~”
“그거 제가 선물받은 거예요. 아끼느라 아직 한 번도 사용안했단 말이예요...”

아이는 차마 할머니에게 화는 내지 못했지만,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에서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분해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가뜩이나 사춘기라서 언제, 무엇 때문에 폭발할지 모르는 애였다.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속 편하게 지내는 엄마가 못마땅한 나는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실 날만 기다렸다. 
그러다가 오늘, 병원 검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커피숍에 왔고 엄마의 빨간 손톱을 보니, 눌려있던 짜증이 확 밀려 올라왔던 거다.

“엄마, 색깔이 너무 진한 거 아니야? 차라리 좀 연한색을 바르던가! 전에는 바르지도 않으시더니!”
“오메, 젊었을 때 이걸 바를 수나 있었냐~? 딸 넷 키우느라 맨날 느그 아빠랑 논에서, 밭에서 일했는디. 손톱칠할 일도, 바를 수도 없었재. 모종 심으믄 알아서 딸기가 열리간? 도랑 파야제, 풀 뽑아야제, 꽃도 따 줘야제. 맨~쭈그려 앉아서 일 했응게 지금 무릎이랑 허리가 이모양 아니냐. 이런 거 바르고 싶어도 맨날 흙 만지면서 일하는디, 뭔 소용이다냐. 그래도 종일 딸기를 따믄 몸은 힘들어도, 느그 키우고 먹일 생각하믄서 참았제. 새벽에 나가서 보믄 줄줄이 빨갛게 익은 딸기 색깔이 얼마나 이쁘든지. 올망졸망 느그들처럼.”

오메!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에게 쏘아붙였구나. 목이 메이고 눈이 시려왔다. 부끄럽고 미안해진 나는 괜히 투정부리면서 말했다.

“아따, 그믄 나한테 발라달라고 하지. 그게 뭐여~ 손톱 밖으로 다 샜잖아. 이따 집에 가서 내가 이쁘게 다시 발라줄게!” 하며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엄마의 손톱마다 빨갛고 예쁜 딸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 월간 안녕하세요 정리연 선생님. 작은책입니다.
    어머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따뜻한 이야기로만 포장되지 않고 생활 속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소한 불편함, 또 그 속에서 묻어나는 애틋함이 잘 느껴지는 글입니다.
    분량이 조금 부족해 아쉽습니다. 조금 더 어머니와 지낸 이야기를 더 보충해서 한편의 글로 완성될 듯 싶습니다.
    아쉽지만 작은책 지면에는 싣지 못했습니
    2024-01-25 10:29 댓글삭제
  • 월간 다. 투고해주신 분께는 그달치 작은책 2권을 드립니다. 여기로 책 받을 주소를 남겨주시면 보내겠습니다.
    (공모전 실린 1월호, 2월호를 보내드릴게요.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들이 많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작은책 글쓰기모임도 다달이 열리고 있습니다. 95년부터 이어온 전통있는 글쓰기 모임입니다. 참가비도 없으니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오셔도 좋을 것 같
    2024-01-25 10:30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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