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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수레바퀴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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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기 전, 구청에 긴급생활지원비를 신청했다. 가장의 실직 등으로 어려움을 당한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구호자금이다. 재난적의료비보다 신청하기는 편했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새언니를 데리고, 구청을 오고가느라 나는 힘들었다. 긴급생활지원비에는 의료비도 포함되어 있다. 호스피스병원에서 뒤늦게 병원비를 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긴급생활지원을 신청했기에, 의료비 지원을 받는 줄 알았다. 구청에 전화를 했다.

긴급의료비는 신청하지 않아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직원이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냉정하게 말한다. 나는 기가 막혔지만, 화를 내기보다 천천히 말했다. 내가 주거비와 생활비를 신청하면서, 의료비만 신청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저는 긴급생활비를 신청하면서, 그 속에 포함된 모든 사항을 같이 신청한 줄 알았어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제가 신청을 하지 않아, 조카들이 받아야 할 것을 놓친 거잖아요? 그렇다면 제 잘못이잖아요. 선생님이 잘 알고 계시니, 부탁을 드립니다. 제가 놓친 것이 있다면 알려주시고, 다시 신청하도록 도와주세요.”

, 다시 확인하니 의료비는 신청대상에 들어가지 않네요. 새언니 분이 계속 일하시는 걸로 나와요. 새언니 쪽으로 의료보험이 청구되기 때문에,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 빠졌어요.”

새언니는 그만뒀던 어린이집에 다시 일을 하러 간다고 했다. 구청 직원의 말을 이해했다.(구청직원은 이후 새언니 기초수급신청에서도 실수를 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했다) 새언니를 설득하고, 다문화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게 한다고 고생을 했다. 나는 지치고 힘들었다. 오빠가 항암을 할지 말지 온 가족이 힘들어 하는 시기에, 새언니는 오빠 톡에 전기렌지를 결재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오빠를 호스피스 병원에 옮기는 그 날도, 오빠에게 노트북을 사야 한다고 했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주식을 한 오빠에게도, 새언니에게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어리석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오빠 일을 처리하면서, 나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가족들과 싸우지 않겠다. 특히 새언니를 원망하거나 싸우지 않겠다고 말이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오빠 장례식 후, 지인들이 나에게 안부를 물으면, 나는 다 괜찮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심장의 통증이 심해졌다.

문득, 오빠와 새언니만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는 거다. 나는 지금 동동거리며 산다. ‘나의 이 동동거림이 오빠와 새언니와 다를 것이 뭐가 있나?’ 내게 질문을 했다. 나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내가 죽을지 말이다. 나또한 죽기 전까지 이렇게 어이없는 짓들을 하다 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오빠의 병원일과 장례식 일 그리고 새언니와 아이들이 천안에 살아 갈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자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봤다. 내가 너무 불쌍했다. 나는 엉엉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 흐흑 나도 오빠를 보낼 시간이 필요한 거야. 흐흑, 우리 오빠, 흑흑, 너무 슬프다고 흐흑, 슬퍼. 우리 오빠를 추모하고 싶단 말이야. 엉엉, 내게 유일한 오빠가 죽었단 말이야. 엉엉, 나도 너무 슬프다고, 나도 정말 슬프고 가슴이 아프단 말이야. 엉엉

지금까지 내가 놓친 것들이 밀려왔다. 아들을 잃은 팔순 부모님을 걱정하느라, 남편을 잃은 새언니를 걱정하느라, 아빠를 잃은 아이들을 걱정하느라, 나는 내 슬픔을 돌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 그래도 내가 낫다며, 참고 억눌렀던 감정들이 쏟아졌다. 가슴을 치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래, 그래, 우리 성희, 속상하겠다. 오빠 죽고 오빠를 제대로 보낼 시간이 없었구나. 슬퍼할 시간도 없었구나. 우리 성희 고생했다. 우리 성희 불쌍하네, 정말 가슴 아팠네. 그래, 그래.” 나는 미친 사람처럼 내게 말을 하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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