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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장학금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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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분 공항버스 타러 집에서 나오니, 밖이 캄캄하다. 오빠가 참 좋은 시기에 죽었단 생각을 했다. 오빠 덕에 새벽 비행기와 밤 비행기를 많이 탔다. 이런 날씨에 오고 갔으면 더 힘들었겠지. 오늘은 1125일이다. 나는 천안에 가서 새언니와 조카들을 데리고 대전에 가야 한다. 충남대 호스피스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수령가족이 장학금지원 프로그램에 꼭 참석을 해야 한다. 새언니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고, 5, 8살 조카는 어리니까.

공항버스를 타고 새언니에게 톡을 보내고, 8시 알람을 맞췄다. 8살 조카에게도 오늘 일정을 말하고, 학교 마치고 꼭 집에서 고모를 기다리라고 당부하기 위해서다. 나는 오늘도 걱정이 많다. 코로나19 시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렇다고 우리 형편에 100만원 주는 장학금을 거절할 수 없지.

천안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걸어, 오빠집이 아닌 언니네로 갔다. 일찍 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천안 집은 불편하다. 1330, 약속시간에 벨을 눌렀다. 조카들이 고모다.” 소리를 치며 뛰어 나온다. 아이들에게 고모와 같이 기차를 타고 간다고 말했다.

나도, 나도 기차타고 싶어.” 5살 안나가 온 몸으로 말한다. 정말 귀엽다.

기차에서 언니가 왕솔이 신발치수가 210이라고 말한다. 장학금 주는 곳에서 아이들 선물을 준다고 했다. 예를 든 것이 장난감과 신발이라, 새언니에게 톡으로 치수를 물어봤는데, 의사소통에 또 문제가 생겼다. 나는 왕솔이가 원하는 건담장난감을 부탁하면서, 신발치수도 200으로 보냈다. 장난감주면 다행이고, 신발을 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기차에서 바로 잠들고, 나는 새언니에게 한국어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를 했다. 다행히 지금 새언니는 다문화지원센터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대전역에서 탄 택시가 인재교육원 건물에 내려줬다. 입구 쪽이 아닌 주차장이라, 입구를 못 찾아 당황하는 사이, 아이들과 내 말소리를 들은 행사 담당자들이 3층 창에서 우리들을 부른다. 3층에 도착하니 직원이 와서 안내를 한다. 우리 가족이 20분 일찍 도착했는데, 반갑게 만나줘 고마웠다.

안내된 자리로 가서, 나는 우리들 이름표에 적힌 오빠이름을 보고 울컥했다. 고 최성남의 아내 탕티슈엔짱님, 고 최성남의 아들 최왕솔, 고 최성남의 딸 최안나, 고 최성남의 누나 최성희. 오빠의 이름이, 이렇게 슬프다니.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가서 울고 나왔다. 누나라는 오타에 대한 지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빠 살아서도 누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행사장은, 우리 말고 두 가족 총 세 가족 8명의 유가족이 모였다. 아내를 사별한 아저씨와 고1 아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고2 아들과 할머니 그리고 우리들. 충남대 권역 호스피스 간호사들과 상담사, 복지사 소개를 받고 간단하게 가족 인사를 했다. 우리 안나와 왕솔이는 단호하게 자기소개하기 싫다고 해서 어른들을 웃겼다.

아이들은 미술치료로 만들기 활동을 하고, 어른들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 우울증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새언니에게 지문을 설명하고 체크하게 하고 보니, 불면증이 심하게 나왔지만, 그 외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유가족 심리 설문지까지 작성하니, 담당자가 가족끼리 대화를 이끈다.

아들을 6개월 전에 보낸, 할머니는 울면서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호스피스에 오래 입원하고, 많이 아픈 걸 봤는데, 할머니 아들은 2주 입원에, 떠날 때도 심장마비로 큰 고통이 없이 죽어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나는 호스피스가 다른 병원보다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오빠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내를 보낸 아저씨는 3년간 많이 아프다 갔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덤덤하게 말하는데, 장학금 100만원 수급을 위해 이 어색한 자리를 견디는 모습이 보였다.

45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보러 갔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있었다. 왕솔이는 다 만들었고, 안나는 치료사가 열심히 만들어 유리를 씌우고 불을 밝혔다.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왕솔이가 처음에는 만들기 못 한다고 엄청 싫어했는데, 그 모습이 생각나 웃었다.

장학증서 증정식과 사진촬영. 행사는 코로나19로 도시락을 나눠주고, 일찍 끝났다. 612분 서대전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싶었던 나는 안심이 됐다. 하지만 아이들 과자선물과 안나 인형, 왕솔이 건담인형 그리고 도시락까지 짐이 많아 걱정이 됐다. 천안역에서 언니와 아이들을 내려주고, 나는 그 기차를 그대로 타고 서울로 가서 남편을 만날 생각이다.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다. 왕솔이가 엄마를 위해 만든 꽃바구니와 음료는 챙기지 않기로 했다.

역에서 아이들 저녁을 도시락으로 먹이면서, 왕솔이에게 천안역에선 고모 없이 택시타고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왕솔이가 무거운 선물가방 2개를 양손에 들어 보이며 말한다. 엄마와 안나를 데리고, 집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건담로봇을 받아 기분이 좋은 거다.

대전 올 땐, 자리를 돌려, 4명이 마주 보고 왔다. 천안 갈 땐. 안나와 새언니 그리고 통로를 두고 나와 왕솔이가 앉았다. 올 땐 잠들었던 아이들이 갈 땐 창밖을 보며 좋아 한다. 왕솔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새언니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안나가 엄마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이 모습을 곁눈질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모른 척 했다. 아이나 엄마나 나나 우리 모두 슬픔을 이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인을 사별한 아저씨가 갑자기 생각났다. ‘오늘 참석하지 않은 중3 딸과 고1 아들이 우리 아이들과 잘 어울릴까?’ 아저씨가 나와 비슷한 또래 같은데, 새언니도 41살이고 대충 괜찮아 보인다. ‘연락처라도 받을 걸 그랬나?’ 나는 새언니가 앞으로 혼자 살 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나설 일은 아니다. 정신을 차리자.

왕솔이는 아까 만들기 못 한다고 싫어했잖아? 그럼 잘 하는 건 뭐야?”

노는 거요. 나는 노는 걸 제일 잘해요.”

, 우리 왕솔이 멋지다. 그래 공부보다 잘 노는 것이 정말 좋아.” 왕솔이는 내 칭찬에 살짝 놀란 표정이다.

고모는 공부 잘 하는 왕솔이 보다, 잘 노는 왕솔이가 정말 좋아. 그런데 잘 놀기 위해선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거다. 수업시간에 제대로 공부 안 하면, 쉬는 시간에도 공부해야 하잖아. 수업시간 빼고 무조건 잘 놀려면,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왕솔이가 고개를 끄떡인다. 천안역에서 아이들과 헤어졌다. 기차에서 내가 손을 흔드니 왕솔이가 짐을 들고 내게 손을 흔든다. 나는 새언니와 아이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장학금은 1210일 오후에 입금됐다. 내가 담당자에게 2번 독촉을 했다. 담당자는 부서 간 서류발송과 지출일이 정해져 있어, 본인도 매일 확인하고 있다며 미안해했다. 힘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진 찍고, 장학금 지급을 늦게 하니까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시 구청에서도 직원 간 일처리를 잘못해서 긴급생활지원비 지급이 늦어지고 있었다. 이래저래 나는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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