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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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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0, 오빠의 항암 담당 의사 면담이 11시다. 아이들은 눈뜨자마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휴대폰 동영상을 본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8살 조카는 치과치료 받은 기억을 못한다. 정말 다행이다. 내겐 상처로 남은 기억이 아이에게 없어서 말이다. 하지만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아이에게 말했다.

왕솔아, 너는 3살부터 앞니가 없었잖아. 그럼 앞으로도 앞니가 없이 살 수 있어?”

앞니 없이 살기 보단 죽을 거야!” 죽는다는 말이 어이없었지만, 대화가 될 것 같다.

지금처럼 계속 사탕을 먹으면 앞니가 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더라도 충치로 검게 돼.”

왕솔이는 내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사탕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 오빠를 따라 동생 안나도 안 먹겠다고 한다. 잘됐다. 새언니에게 다시 당부를 했다.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9시 병원에 갔다. 오빠가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눈물을 훔치고 들어왔다. 오빠가 구토하며 일어났다. 내가 급하게 휴지를 챙겨줬다. 오빠는 구토로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한다. 복부로 아주 작게 영양분이 투여되지만, 거의 안 된다고 보면 된다. 오빠는 지금 한 달 넘게 영양제로 버티고 있다. 나와 말을 하는 동안 계속 갈색의 끈끈한 액체를 토한다. 오래 전 키우던 개가 죽기 전에 토했던 것과 같은.

성희야, 병원에 있어 보니까, 지금 내 몸 상태가 항암을 견딜 수 없어. 내가 알지. 내 몸이 견딜 수 있다면, 항암을 하고 싶어. 그런데 아닌 것 같아. 너에게 부탁이 있어. 방송에 보니 위암환자가 먹을 수 있는 차가 있더라. 네가 그걸 구해 주면 좋겠다.” 오빠에게 구해 보겠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접은 오빠에게 처음으로 호스피스 병원과 암 전문 요양 병원에 대해 말했다. 앞으로 오빠의 간병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돌봐야지 나를 간병할 수 없어. 수술과 항암을 하지 않으면 여기 계속 있을 필요도 없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네가 나에게 좋은 병원을 알아봐 주면 좋겠다. 나는 아내도 면회를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면회를 와서 계속 우는 새언니가 보기 힘들다고 했다.

오늘 외래환자가 많아, 오빠의 면담시간이 1130분으로 미뤄졌다. 병원에선 기다림은 생활이다. 예약했음에도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우리가 그날 마지막 환자로 의사를 만났다. 우리 남매가 울고 불며,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릴 줄 알았나 보다. 전화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던 의사가 종이 한 장에 위와 장을 대충 그리고 말한다. 오빠 위 입구가 막혔고 장도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항암을 해서 최대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단다. 나는 지금까지 내시경 영상이나 치료 기록지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다. ‘이 따위 설명을 하려고, 이렇게 기다리게 했어?’ 나는 화를 참고, 바로 질문했다.

선생님, 지금 오빠가 항암을 받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나요?”

보존적 치료를 하면 3개월에서 6개월이고요. 항암을 하면 1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환자 나이가 젊으니 항암을 해서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추천합니다.”

선생님, 항암 이후 오빠 삶의 질을 알고 싶어요.” 의사는 대답을 회피하고, 오빠가 젊어서 아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의사는 무조건 항암치료를 하자고 한다. 오빠는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오빠가 옆에 있으니, 의사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만약, 당신 가족이라면, 당신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은 하지 않고, 고려를 해보겠다고만 했다.  미덥지 않은 의사가 오빠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까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우리의 면담 시간은 5분 만에 끝났다. 우리 남매는 아무렇지 않게 병실로 이동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정말 특이하다. 작은 일에는 불같이 일어나도, 큰일은 덤덤하다. 오빠가 그랬다.

병원을 나와 양양 동생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동생은 나중에 퇴근하는 자가용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미 예상했지만, 의사의 선고는 또 달랐다는 거다. 나도 그랬다. 한 시간 넘게 울면서 걸었다. 마음은 급해졌다. 오빠에게 좋은 병원을 찾아야 한다. 나는 오빠의 마지막을 같이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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