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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내일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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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상하다. 손가락이 왜 이러지?...

  오늘 새벽 잠들기 전에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갑자기 뻣뻣해졌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무시하고 바로 잠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손가락 전체로 그 뻣뻣함이 퍼져있었다. 주먹을 쥐는 손이 어눌해지고 꽉 쥐어지지 않았다. 자꾸만 주먹 쥐고 펴기를 반복해봐도 왼손의 뻣뻣함은 풀리기는 커녕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순간 이렇게 마비가 되는 건가 싶어 겁이 덜컥 났다. 애써 태연한 척 아이들 등교 준비를 마치고 한의원으로 갔다. 평소 믿고 자주 가던 곳이라 침 몇 방이면 금세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 점점 마비가 되어버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되풀이 하며 진료실에 들어섰다.
 평소와 다름없이 상냥한 선생님 얼굴을 보자 마음 속 두려움들이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이미 내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알고 계셨기에 선생님은 침착하게 내 증상들에 귀 기울여주셨다. 선생님은 내게 일단 바로 담당 의사를 만나 검사하고 확인해 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병원에 전화하니 바로 진료 예약을 잡아주었고 나는 혹시 입원할지도 모르니 먹을 것들을 잔뜩 사다 냉장고를 채워놓고서야 서울로 출발했다.

  나는 모야모야병을 갖고 있다. 머릿속 혈관들이 자꾸 막혀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샛길로 빠지는 병이다. 다행히 혈관들은 지금까지 막힌 큰 길을 나두고 새로운 좁은 길로도 잘 뚫고 가고 있지만 언제 막혀버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좁은 길 하나가 막히면 마비가 오기에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 의사는 최악의 경우 갑자기 쓰러져서 의식불명이 되기에 신속한 처치를 위해 늘 MRA영상들과 진료기록들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4년 전, 건강 검진을 하다 뇌혈관의 문제를 발견하고 서울로 병원을 가야했다. 이런 저런 검사 끝에 병명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아직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그저 피가 응고되지 않게 하는 약을 먹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계속 지켜봐야한다고만 했다.
  이전에 앓았던 갑상선은 내가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치료약도 있었고 조직을 떼어내면 그만이었다. 물론 초기에 발견해서 다른 곳으로 전이 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의 경우는 달랐다. 갑상선처럼 규칙적으로 약을 먹는다고 수치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혹여 나빠질 경우 수술하면 성공률이 제법 높아 예후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마비가 오면 이미 경색이 온 것일 수 있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면 얼마나 빨리 큰 병원에서 전문가의 수술을 받는지에 따라 생명이 좌우된다.

 나는 언제 어떻게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 된 것 같았다......

  그 무엇에도 의욕이 없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는 것인지, 죽는 것인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 왜 이런 일이 또 생긴 것인지... 이제 좀 재미나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아직 어린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이런 삼류 드라마가 다 있나..... 하루에도 수백 번 삶과 죽음을 오가며 눈물을 훔치기만 했다.
  이런 내게 의사는 말했다. 인생이 어찌 될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매일 매일을 좋은 생각하며 맛있는거 먹으며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야한다고.
  그 어떤 처방전보다 이 말 한마디는 내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맞다!, 그렇지!
 나는 그렇게 이 병을 받아들이고 매일 ‘의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약도 꼬박꼬박 먹고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내가 아닌,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언제가 마지막일 될지 모르기에, 두려워 망설이기보다는 해보고 가보고 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다시 이 길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아이들을 안아볼 수 없을까봐, 무섭고 떨리고 어지러웠다. 남편에겐 이런 저런 잡담을 늘어놓으면서 무심하게 혹시 내가 의식을 찾지 못한다면 연명치료는 거부하고 장기 기증을 해달라는 것과 아이들이 한 번씩 엄마를 찾을 수 있게 수목장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왼팔 전체로 번진 뻣뻣해지는 왼손을 자꾸 주물렀다.
  병원에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뇌혈관은 문제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엄청난 병원비 때문인지, 하루 종일 졸아든 마음 때문인지 집으로 가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막내를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재운, 엄마를 대신한 큰 아이들은 부스스 일어나 괜찮냐고 물었다. 대충 씻고 누우니 비로소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차올랐다. 다시 내게도 내일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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