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투고

오빠를 살리고 싶다.(1)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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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0일 월요일

어제 오빠가 내일, 즉 오늘도 대장내시경을 한다고 알렸다. 729일 입원해서 계속 검사만 받고 있다. 오빠는 여전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상태다. 오늘 검사를 하면 또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답답하다. 오빠에게 의사 회진을 돌 때, 내게 전화를 하게 했다. 면회를 가더라도 의사를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스피커폰으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선생님, 동생이 선생님과 통화하길 원합니다. 여기 전화 있어요.”

위는 암으로 나왔으나, 암의 성질을 아직 파악 중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진단을 말씀드릴 수 없어요. 대장은 내시경상 소견은 암으로 나왔는데, 조직검사에선 암 전 단계 세포가 나왔어요. 그래서 오늘 다시 검사를 해봐야 알겠습니다. 지금 환자의 위와 대장 상태가 사실 내시경을 하는 것도 힘들어요. 위의 문제 하나면 좋겠지만, 대장과 같이 치료 계획을 세우는 거라 상당히 어렵습니다. 암의 성질에 따라 항암치료나 수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검사결과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검사 결과를 보고 진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동생들과 어머니께 전달했다. 양양 동생이 14일 왕솔이와 어머니를 모시고 천안에 오기로 했다. 나는 어머니가 천안에 오는 걸 반대하지만, 어머니가 원하시는 데로 하시게 했다. 뉴스에서 온 나라가 태풍 소식으로 난리다. 우리가족은 이 태풍은 무섭지 않다. 오빠의 불행이 어떻게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섭고 불안했다.

이젠 오빠도 확실히 자신이 암에 걸린 건 안다. 다만, 위중에 대한 생각이 나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오빠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긴급생활지원과 의료비지원 받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항암치료하면서도 근무할 수 있다고 우긴다.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전혀 모르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오빠도 오빠지만, 새언니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똑같다. 새언니가 어린이집에서 일해서 버는 돈이 85만원, 오빠 200만원. 지금 이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고, 오빠와 새언니에게 말했다. 하지만 둘 다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안타깝다.

나는 구청에 긴급의료비 지원에 대해 문의를 했다. 오빠와 내가 복지부 콜 신청을 해서 복지부는 구청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 구청 직원이 놓친 거다. 나는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지금 병원 상황이 급박한 것도 아니라 그냥 넘겼다. 구청직원, 건보직원들과 상담을 하면서 정말 많이 답답했다. 코로나 19로 콜서비스 연결이 안 되서 할 수 없이 방문을 했더니, 담당직원이 자택근무 한다고 연락하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래도 조금 배우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으니, 이렇게 전화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정말 없는 사람들은 이 벽에서 절망할 것 같다.

어렵게 담당직원과 통화를 하니, 오빠가 긴급의료비 지원 대상에 적합한 지 서류로 판단해야 한단다. 제출하라는 서류는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마지막에 하는 말은 의료비를 전액 지급받는 것도 아니고 건보에 해당되는 금액만 지불되기 때문에 본인이 낸 병원비와 긴급의료비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한다. 오빠가 2주 병원에 있으면서 나온, 중간 계산서가 200만원이 넘었다. 나는 어떻게든 긴급의료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희귀질환과 암은 보건소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보건소 담당자 연락처를 주기로 한 구청직원은 감감무소식이다. 겨우 연락된 보건소 담당자는 정서적 문제가 있었다. 오빠가 국가암검진을 받지 않았다고 하니, 거의 웃는 소리로 그럼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어이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내가 침묵하니, 그녀도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 같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오빠와 새언니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 하면서, 나는 내 노력이 헛될 수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 안 되는 것.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렇다.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냥 노력할 뿐이다.

나는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과 동시에 동생들과 오빠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금전적 시간적 범위에 대해 논의를 했다. 오빠일은 단기적으로 끝날 일도 아니고 오빠에게 준 것을 다시 돌려받는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빠를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우리는 가족이고, 오빠는 5살과 8살 아이들의 아버지이니 말이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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