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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운전

이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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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무 살. '만 19세'라는 금기(?)가 풀리고 하고 싶은 것들이 부쩍 많아졌다. 밤늦게까지 피시방에 있기 같은 아주 소박한 것부터 자동차 운전 같은 계획과 연습이 필요한 것까지 말이다.

지난 달 운전학원을 다니면서부터 줄곧 내 머릿속 한켠에는 자동차가 돌아다닌다. 수시로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왼발을 꾹 누르고 오른손을 부드럽게 움직여보자. 1단에서 5단까지 물 흐르듯이. 깃털이 내려앉는 듯 엑셀에 오른발을 올려보자. 올라가는 속도계와 바람을 느끼자.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마지막 도로주행시험만을 앞두고 있다. 지금 바로 내 눈 앞에 ‘드라이버’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올해 안에 면허를 따면 나중에 블랙박스를 사주겠다던 엄마와의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회가 다다랐다.

마음을 추스르고 시험관 선생님과 차에 올랐다. 마음속으로 나에게 이야기 한다. “걱정하지마. 이론 시험, 장내 기능 시험도 통과했잖아. 넌 할 수 있어!” 자동차와 연결된 태블릿 피시가 소리는 낸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과연 결과는?

처참했다. 반복되는 방향지시등 실수와 긴장한 나머지 신호위반까지. 보기 좋게 실격했다. 연습 때는 잘했었는데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시험날짜를 잡는데 재시험을 보려면 다시 결재해야 한단다. 카드를 긁는 직원분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다시 날짜를 잡고 돌아가는 길, 도로 위 수많은 ‘드라이버’를 쳐다본다.

“에이~정지선을 넘으면 안 되지.”, “저 사람은 출발이 너무 거칠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아 본다.

나름 상심이 컸는지 자동차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더불어 수많은 생명을 죽였고 죽이고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신 권정생 선생님 말씀도 떠올랐다.

본래 생각이란 것이 이리로 튈지 저리로 튈지 모르는 아주 기이한 것이지만 운전면허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이러는 나를 비판해야 할지 보듬어야 할지도 고민이다.

아무튼 올해 안에 면허를 따겠다던 내 목표는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조금 더 숙달되고, 성숙한 운전자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 주 새해를 맞아 더욱 즐겁고 단단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가야겠다. 다음에는 꼭 성공하리!

아 맞다. “엄마, 블랙박스는 사주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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