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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쿠마에서 태어난 아이

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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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케냐에 갔을 때는 카쿠마(Kakuma)나 다다브(Dadaab)에 가고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캠프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케냐 난민부를 친구와 함께 두 번이나 찾아가기도 했었다. 배운 것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관료제와 싸워야 했던 그 과정 때문에 카쿠마나 다다브에 직접 가는 마음을 접었다. 
 
요즘 일하는 곳에서는 다다브와 카쿠마를 거친 사람들을 만난다. 대충 출신 국가에 따라서 카쿠마인지 다다브인지도 알아볼 수 있다. 카쿠마는 남수단과 우간다 국경과 가깝고 다다브는 소말리아 국경과 가깝기 때문이다. 카쿠마에 있었냐, 다다브에 있었냐고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카쿠마와 다다브를 아냐고 되묻지만, 난민들과 일하는 사람이 카쿠마와 다다브를 모르기도 어렵다.

어제 아침에 요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콩고 엄마 재신타 아줌마가 어디서 구했는지 헌 옷과 신발을 어마어마하게 짊어지고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선생님, 나 이거 오늘 여기 좀 맡겨두면 안될까?"라고 슬그머니 물었다. 나는 사무실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 오늘만 그렇게 하자고 했다. 몸에 맞건 안맞건 이런저런 것을 다 모아다가 가지고 가서 10명이 넘는 대식구나 주변 이웃들과 나눠 입일 것이 분명했기에 안된다고 말하기도 미안했다. 그녀가 주섬주섬 내려놓는 비닐봉지들을 사무실 구석에 보이지 않게 숨기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또 들키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미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전 내내 재봉수업, 영어수업, 그리고 컴퓨터수업을 열심히 듣고 물건을 찾으러 돌아온 재신타 아줌마는 3살 정도 먹은 듯한 작은 꼬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냐고 물으려는데 아줌마가 먼저 "선생님, 우리 손자 조니야. 조니는 케냐식 스와힐리 잘해. 조니하고 얘기해봐"라고 그런다. 어딘지 모르게 총명하고 단단해 보이는 조니의 손을 잡고 정말 오랜만에, "사사(Sasa)?"라는 인사를 건넸다. 케냐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을 더 했던, 케냐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가 "포아(Poa)" 또는 "핏(Fit)"이라고 대답을 하는 솅(스와힐리가 변형된 구어의 일종)의 "하와유?"같은 말이다. "포아"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조니를 보면서 나는 고향사람을 만난 듯이 반가웠다.

그러다가 문득 이 아이는 카쿠마에서 태어났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떻게 내 생각을 읽었는지 재신타 아줌마가 먼저 "조니는 카쿠마에서 태어났어"라고 내게 말했다. 아직 40대인 아줌마는 아주 어릴 때 큰 아들을 낳았고, 지금은 20대인 아들이 낳은 아들이 조니였다. 안타깝게도 아이의 엄마는 케냐에서 세상을 떠났기에 할머니의 손에 자라고 있는 카쿠마에서 태어난 아이 조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가 꾸려놓은 짐꾸러미 중에서 작은 꾸러미 하나를 그 보다도 더 작은 자신의 어깨에 둘러메고는 떠날 준비를 하는 조니에게 사탕이라도 하나 줘야 되는데 싶어서 둘러보니 사탕이 없어서 그냥 보냈다. 찾아보면 어디 하나 있었을 것 같은데 짐을 맡아준 것을 들킬까 봐 눈치가 보여서 급하게 그냥 내보낸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다.

카쿠마와 다다브에 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여기서 카쿠마와 다다브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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