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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도 어렵지만 유통은 더 어렵네!

양파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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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이틀을 쉬고 난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는 근성이 앞서는 걸 보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일 것이다. 습관처럼 아래층 휴게실에 내려가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빼 마시고  올라오니, 동료직원이 당겨 받았던 전화를 돌려주면서 난색을 표한다.

(농산물 유통담당자 ○○○입니다) 입버릇처럼 내뱉는 멘트(?)를 끝내기도 전에 들려오는 어지간히 사투리가 섞인 상대편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라고 묻자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상대를 확인했음인지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사연인즉. 인근에 있는 농산물 공판장에서 ‘○○산고구마’ 라고 해서 믿고 구입했는데, 집에 와서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겉과는 너무 다르더라는 것이다. 이른바 '속박이'포장을 한 농산물이었던 것이다. 고구마 한 상자에 대한 금전적 가치를 떠나서 그런 상황이라면 필자 역시도 불쾌했을 것이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산물의 속박이포장은 심심찮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불공정거래행위였다. 불쾌했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보이지 않는 수화기 속 주인공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들어 주고, 그래도 상대방의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싶으면 원론적인 얘기로 토닥거리다가 마지막에는 리콜(?)까지 해 왔으니까!

물론, 필자에게 자신의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는 이 고객은 그런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자신의 서운한 얘기까지 들어주며 관심을 가져주는 태도에 분한 감정이 수그러졌는지 ‘선생님 인적사항과 연락처 알려 주시면 출하농가 추적(?)해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얘기를 듣다말고 “농민들 교육이나 잘 시키십시오!” 라면서 전화를 끊는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인류의 가장 원시산업이며,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농업' 또한 어렵다. 생명산업으로 녹색산업으로 글로벌 농업으로 거듭나야 하고, 생산된 농산물이 '물건'이 아닌 '상품'으로 소비자의 식탁에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해 줘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분위기가 사그라질 줄 모르는 배추값 폭등의 원인을 놓고 ‘4대강 사업이냐!’  ‘기상이변이냐!’ 논쟁을 벌인다는 건 무의미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농산물의 가격은 생산량의 10%가 좌우를 한다. 10%가 과잉 생산되면 가격은 폭락하고, 적게 생산되면 폭등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배면적 축소가 불가피했다면 대체농지를 확보하고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고, 생산손실을 우려했다면 포기당 천원에 밭떼기 거래된 배추가 만오천원에 마트에서 팔릴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수집과 분배과정이 길고도 복잡하다. 또 유통과정 중 부패와 변질이 쉬워 감모나 폐기도 많다. 바꿔 얘기하면 유통마진이 그 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또, 생산 환경과 재배기술에 따라 품질이 다르기에 표준화․등급화도 어렵다. 무엇보다 이번 배추 파동처럼 기상여건에 따라 작황이 결정되기에 수급불안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농산물의 특성들을 고려해서 생산농가, 유통종사자, 관계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불합리한 농산물의 유통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산지 조직화와 단지화를 이루고, 생산물의 규격화와 물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형유통업체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재정비하는 등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는 보도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듯이 제 아무리 훌륭한 대책도 그것을 호응해 주고 따라 주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어떻게든 나만 살겠다고 1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속박이를 하고, 시세 차액만을 노리고 매점매석을 일삼는다면.....

참 어렵다. 생산도 어려운데, 유통은 더 어려우니!  '산지 유통종합계획 수립'이라는 크나 큰 과제를 앞에 놓고 시름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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