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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더이상 손을 잡고 걷지 않는다.

정나리

view : 2002

우린 더이상 손을 잡고 걷지 않는다.
                                             -결혼 5년차 주부-

소개로 만난 남자와 1년간의 뜨거운 연애를 하다가 2006년 7월 결혼을 하고 그해 8월에 임신을 해 다음해에 아이를 낳고 만 4년이 된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연애할때 남들도 그렇듯이 우린 늘 손을 잡고 다니거나 팔짱을 끼거나 했었다. 그런데 결혼후 그것도 아이를 낳아 셋이 함께 다니게 된 이후로는 길을 갈때 특별한 남편하고의 스킨십이  없어졌다. 대신 주말마다 함께 가게되는 마트에서 생활에 필요한 장을 본 것들이 모두 그의 손에 들려있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연애 할 때는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하는 스킨십이 있어야 교감을 하는 느낌. 우리가 정말 서로 좋아하는 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결혼 5년차 지금은 마트에서 두어시간 동안 장을 본 물건들이 들어있는 커다란 박스를 남편이 드는 것이 당연히, 당연하게 느껴지고 난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분업. 협업체계.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 그런 당연한 관계는 내게 안도감을 준다.

설레는 손끝의 감촉은 없다. 대신 당연한 안도감이 있다. 그 짐을 내게 지우지 않을 것이라는...언젠가 남편의 어깨가 유난히 쳐져 보이는 그런 날이 있다면 장바구니를 둘로 나누어 드는 그런날도 올것이다. 그것 또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주말마다 함께 가게 되는 마트. 그곳에서 나는 삶의 권태가 아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본다. 장 본 물건 두 박스 정도는 아직 거뜬한 아직까지 내가 힘을 보탤 일 없는 든든한 그이의 어깨와 믿은직한 뒷모습. 당연한 행복누림을 본다. 그것은 또다른 스킨십이다. 접촉아닌 접촉이다. 내 시선이, 내 마음이 그의 어깨에 가 닿으므로...

결혼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햇살아래 잠들어 있는 배우자에게 입맞춤하는 그런 뮤직비디오 같은 일상은 글쎄..결혼후 얼마동안이나 가능할런지.. 결혼 생활은 생활의 권태와 행복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
배우자가 마음이 식었다고? 변했다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당연히 불같은 사랑은 식어야 하고 예전의 그 이글거리는 눈빛은 변해야 한다. 활활 타오르다 둘 다 재가 되고 싶지 않다면.. 대신 가늘고 길게 자식 키워가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을 주섬주섬 주어 담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 불같은, 연애할때와 같은 변함없는 사랑은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그 대신 서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생활 곳곳에 하나 하나씩 채워질때 서로는 안도하게 되고 분업과 협업이 잘 이루어지는 공동운명체에 대한 서로의 믿음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팀워크가 잘 이루어 지면 사랑의 열매라는 그 사이의 아이들도 안정된 환경하에서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축소판인 가정의 평화가 이처럼 당연한 안도감에서 오는 것처럼 사회에서도 구성원간 서로 합의된 당연함으로 채워져 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도감을 갖고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더 많고 높은 곳에서 더 적고 낮은 곳으로 물리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 그래서 사회구조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좀 더 안도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회. 강렬하지만 일시적인 스킨십이 아니라 삶의 권태를 행복으로 끌어올려주는 서로간 믿음과 당연함이 곳곳에 채워져 있는 그런 가정, 그런 사회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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