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투고

첫 담임의 추억

서병렬

view : 3029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단어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 흥분, 아련함 등의 감정을 느낄겁니다. 첫 등교, 첫 수업, 첫 시험, 첫 만남, 첫 사랑, 첫 키스 ...


개인적인 생각으로 교사로서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역으로 얘기를 하면 담임을 안 맡는다는 것은 마치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같은 웰빙(?)의 교사 생활을 한다는 얘기겠죠. 1999년 교직에 첫 발을 디딘 후 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웰빙의 교사 생활을 하다, 2002년 교직 생활 4년만에 담임을 맡았습니다. 그때의 설레임과 흥분은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렸던 첫 아이를 만난 기분이었답니다.


2002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해였답니다. 제가 첫 담임을 맡아서일까요?ㅎㅎ 바로 지구촌 축제라 할 만한 월드컵이 대한민국에서 열린 해였죠. 현재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죠. 온 나라에 월드컵 응원의 열풍이 불어서 경기가 있는 날은 거리와 광장이 온통 붉은 티셔츠를 입은 붉은 악마들의 물결로 뒤덮이고 대한민국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함성과 환호로 들썩일 정도였답니다. 저 역시 대한민국 경기가 있는 날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대한민국을 열심히 응원했고, 때로는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독립기념관 광장에서 야우리 광장에서 시민들과 월드컵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답니다.


첫 담임반 학생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쁨과 넘치는 의욕 속에서 한 해동안 많은(?) 일들을 했었습니다. 5-6명씩 6개의 모둠을 만들어 매일 모둠일기를 썼고 그 일기들을 모아 연말에는 날아라 병아리라는 제목의 학급문집을 만들었습니다. 4월 벚꽃축제 기간에는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들과 함께 교실에서 학급잔치를 열었고, 이때 당시 유행하던 개그콘서트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봉숭아 학당을 반 학생들이 촌극으로 만들어 연극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학급 단합대회도 하고, 야간 자습시간을 이용해서 개인 상담도 자주 했었고, 학년말에는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우리반 학생 29명 모두에게 편지를 써서 종업식 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학급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제 기준으로 보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3월 첫날 학생들과 첫 인사를 나누는 자리. 한명 한명을 보며 애정을 담뿍 담아 눈을 맞추는데 교실 뒤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덩치 큰 학생(아래부터는 A)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 교직 생활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학생이었죠. 3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무단 조퇴와 무단 결석을 몇 번 하더니 가족이 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아예 학교를 나오지 않았답니다. 요즘처럼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 때라 A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 집에까지 찾아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고 다음 날 학교에 같이 등교를 하기도 했었죠. A가 갖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수업 시간에 학교 교정을 돌며 상담을 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 A가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는 술집에 찾아가 같이 술을 마시면서 A의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답니다. 사업을 하시는 아버님과도 몇 차례 상담을 하고 어머님과는 수 차례 상담을 하기도 했죠. 때로는 따끔하게 얘기하다 체벌을 하기도 했지만 A의 행동이 나아지지는 않았답니다. 그리고 A의 곁에는 늘 B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A만큼은 아니지만 B 역시 학교생활이 겉돌고 있었죠.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결석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A와 술, 담배 친구였답니다. 한번은 B가 부탁할 일이 있다 하여 방과 후에 터미널 맞은 편에 있는 신부문화공원에 갔더니 여자 친구와 함께 있었습니다. 무슨 부탁인가 물었더니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해서 수술비용이 필요하니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전 지금도 그때 했던 말들이 진실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답니다. 왜냐면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AB 모두 학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이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리니지는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죠. 특히 청소년들이 리니지 게임에 빠져서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게임 아이템이 온라인 상에서 현금 거래가 되면서 게이머들 사이에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분쟁이 현실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일명 현피뜬다는 말이 유행이 되기도 했답니다. AB 역시 이 게임을 하고 있었고 우리 반에 C라는 친구도 같이 하고 있었는데, 게임 중에 다른 학교에 다니는 D라는 친구의 아이템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고, 아이템을 보상하라며 D가 수업 중에 우리 학교로 찾아온 일이 있었답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ABC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결국 AB는 강제 전학을 가게 되었죠 ...

 

한방울의 이슬에도 삼라만상이 숨어 있다는데, 비록 몇 줄의 글로 거칠게 요약을 하였지만 그 안에는 짧은 지면에 담을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이렇게 첫 담임의 추억은 AB에 대한 미안함, 아쉬움 등의 감정과 함께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물론 교직 생활 동안 이보다 더한(?) 학생(예를 들면 점심 시간에 어머니와 통화하다 격해진 감정에 복도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고 피 흘리는 주먹을 움켜쥔 채 학교를 뛰쳐나갔던 친구)들도 만났지만 첫 담임의 기억 때문인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해 동학년 담임을 같이 하던 선생님을 만나면 그 때를 떠올리기도 하지요. 이제 그 친구들도 30대의 장년이 되었을 텐데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다들 잘 살고 있겠죠? 혹시나 20년 후쯤에 ‘TV는 사랑을 싣고같은 프로그램에서 녀석들이 나를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 막 해봤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도 있답니다. 즐거운 추억은 즐거운 대로 좋고, 슬픈 일은 슬픈 일대로 우리 인생에 거름이 되겠죠. 담임의 추억은 저에게 즐거움과 아픔을 모두 안겨 주었고, 그 후의 학교생활에 거름이 되었으며, 앞으로의 학교생활에도 그럴 겁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올해 담임을 맡은 1학년 10반 학생들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첫 기억이 있나요?



뒷글 : 작은책 10여년(?) 독자로 늘 글만 읽다가, 문득 나도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교지에 실었던 글을 약간 편집해서 올렸습니다.

  • 작은책 안녕하세요 선생님. 당시 학생들을 끝까지 보듬어주시고 이해하시려던 선생님의 노력이 잘 느껴지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1-02-05 14:36 댓글삭제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