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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3) 최정자 어머니 2탄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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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하고 부모와도 궁합이 있다고 보면, 나와 어머니는 상극이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잘 맞는다. 그러나 나는 정말 어머니와 안 맞다. 정말 안 맞다. 가난한 집의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말이 했다. 어머니는 외가의 살림밑천이었다. 하지만 나는 살림밑천으로 살길 거부했다.

우리 집은 아들과 딸 구별 안 하고, 고등학교까지만 부모가 의무적으로 자식 교육을 감당하는 걸로 본다. 너는 공부를 못하니까 그냥 여상가서 네 돈 벌어 네가 시집을 가면 좋겠다.” 어머니가 동생보다 공부 못 하지만, 그래도 공부를 좀 하는 나보고 여상에 가라고 했다. 나는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당당하게 대꾸했다.

부모님 자식의무교육기간이 고등학교면,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까지만 부모님 도움 받아 갈게요. 대학은 제가 알아서 가면 되잖아요?” 그렇게 나는 인문계를 가고, 알아서 대학을 갔다.

처음 대학은 재수해서(도서관에서 독학했음) 한국해양대학교 기관공학과에 들어갔다. 당시 공고에서 여자를 받았으면, 난 공고에 갔을 거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그 학교를 딱 2년만 다니고 자퇴를 했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1기였던, 하나 뿐인 여자 선배가 한진해운에 인턴까지 했는데도, 취업이 어려웠다. 나는 취업이 되지 않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의 성급한 결정에 나중에 여자동기들이 졸업하고, 해운회사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며 가슴을 쳤다.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부산 앞바다에 떠 있는 상선들을 보면서 슬퍼했다.

자퇴 후에 농협에도 다니고, 빵집과 열차식당까지 여러 다양한 일을 했다. 일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로. 지금은 최정자, 내 어머니와 관련된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자.

27살에 물리치료과로 대학에 다시 들어갔다. 어머니는 내가 대입시험을 볼 때, 미역국을 끓여줬다. 내가 원래 미역국을 엄청 좋아하고, 어머니는 미역국이 머리에 좋다고 하니 나는 괜찮았다. 졸업반, 물리치료사 국가고시를 전날 밤이다. 어머니가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그 소리가 예민해서 잠을 잘 수 가 없었다.

어머니, 내일 정말 중요한 국가고시가 있어요. 물리치료사 면허시험에 떨어지면 취업도 취소되고, 1년을 더 기다려 면허시험을 쳐야 해요.” 어머니께 부탁을 하니 볼륨만 줄인다. 작은 소리는 신경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1시간을 더 기다려, 어머니께 다시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내 어머니, 최정자씨는 텔레비전을 바로 껐다. 그리고 그 밤에 힘을 실어 무를 썰었다. 결혼해서 남편이 계모에게 섭섭했던 일들을 내게 풀었다. 친모인 내 어머니가 더 심했다.

모교 부산 가톨릭 대학의 심리학 교수님이셨던 수녀님에게 9명의 학생들이, 3년 동안 매주 1회 심리학을 배웠다.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찾고, 나와 주변 사람의 관계에 대한 많은 공부를 했다. 나는 이 배움을 기반으로 내 어머니, 최정자씨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그 하나로 거의 매일, 어머니와 동네 뒷산인, 장산을 올랐다. 여러 달 뒤에 어머니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때가 왔다. 나는 산에서 쉬는 시간, 어머니께 울면서 고백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저는 항상 어머니께 모자란 딸이에요. 저는 서른이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제 가정을 잘 꾸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서른 인생을 만나고 힘들어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요.” 나는 조금 연기를 했다. ‘이제 어머니가 나를 위로할거야.’

아무리 네가 내 딸이라도 아닌 건 아니야. 어떻게 내 딸이라고 그냥 감싸고 살 수 있어.” 팔짱을 끼고 어머니는 못난 것 같은 이란 눈빛으로 냉정하게 말했다. 내 눈물은 싹 달아났다. 여기서 눈치 빠른 사람은 알거다. 내겐 엄마보다 어머니가 편했다. 그래서 식당에서 종종 며느리로 오해를 받는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어머니와 더 친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냥 어머니와 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했다. 팔순 어머니는 이제 나를 사랑하는 큰 딸이라고 부른다. 나도 오랫동안 내 폰에 부산 어머니라고 저장된 전화번호를 사랑엄마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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