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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기증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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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해부학 교실 교수님을 만나, 시신기증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청주에 남았다.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천안에 가서 부산에서 올라 온 새언니의 친정언니(대만 화교분과 결혼해서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이 분도 한국어를 잘 못한다.)를 만나 다 같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나는 통역 분에게 우리 가족의 장례식에 대해 알렸다. 우리는 부모님부터 모두 시신기증을 서약을 했고, 장례식은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끝낸다고 했다.

장례식장 사무실에 약속시간에 딱 맞춰 갔더니, 해부학 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제가 어제 전화로 말씀을 드렸지요. 지금 기증된 시신이 많아, 아마도 4년에서 5년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교수님은 내가 처음 듣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당황했다. 오빠의 시신이 오랫동안 냉동고에 보관된다고 하니,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일단, 교수님의 말을 듣기로 했다.

해부를 끝내고 연구 가치가 있는 특별한 장기는 연구용으로 보존처리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장을 하게 됩니다. 그때, 가족 분들에게 연락을 드립니다. 화장을 할 때, 가족이 참석 할 수 있으며, 납골당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충북대 병원 납골당에 모실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모실 수도 있습니다. 충북대 병원이 아닌 다른 납골당으로 모실 경우, 충북대 병원에서 1회에 한해 모시는 비용을 지불하고, 그 다음 기간부터는 가족이 내셔야 합니다.”

해부학 교수님은 시신의 처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오빠의 시신처리 시간이 길어진 것이 어쩌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솔이와 안나가 그때쯤이면,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나와 이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새언니와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장례를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병원에서 내게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나는 부모님과 천안 식구들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러 장의 시신기증에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했다. 추후 가족의 마음이 변해 시신기증의사를 철회하면, 지금까지 일체의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마지막 서류까지 서명을 했다. 교수님은 뒤늦게 연락을 받지 않는 가족이 많다며, 연락처에 나 말고 다른 가족의 전화번호도 하나 더 적도록 했다. 나는 남편의 전화번호를 남겼다. 내 옆에 앉아 묵묵히 나를 지켜는 주는 남편이 있어 정말 든든했다.

오빠의 시신은 28일 월요일, 장례식장에서 충북대 의대로 옮긴다고 했다. 그때도 가족이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통역을 통해 새언니 의견을 물어 보니, 언니는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월요일 12시로 시간을 정해 장례식장 직원에게 알렸다. 그날은 새언니와 새언니 베트남 친구들만 참석하는 걸로 했는데,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새언니는 그 날 제주에 있는 나와 양양에 있는 부모님을 찾았다. 새언니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걸 안다. 천안식구들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장례식과 시신기증이 나를 심리적으로 더 힘들게 했다.

오빠의 사망신고를 1015일에 했다. 나는 주민센터에서 오빠의 신분증(운전면허증)을 마지막으로 사용하고, 호주머니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오빠의 신분증을 없애기 위해 찾으니 주머니에 없다.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가방을 정리하다가, 서류사이에서 오빠의 신분증이 나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자세히 오빠의 사진을 봤다. 운전면허증 오빠 사진 아래 쓰인 글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 장기기증이 적혀 있다. 그랬다. 오빠가 생전에 장기기증 선약을 했었던 거다. 그렇다면 시신기증도 오빠의 선택이다.

사망신고 후, 새언니에게 오빠가 보고 싶다고, 오빠를 어디에 모셨냐는 톡을 받았다. 나는 오빠 운전면허증 아래의 글을 크게 확대해서 보냈다. 오빠는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을 서약했다. 오빠가 생전에 선택한 거라고 그래서 지금 충북대병원에 있다고 말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서약을 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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