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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살아남을 자들을 위하여(2)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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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에게 받은 통장과 휴대폰으로 주식 빚을 정리했다. 돈을 갚겠다고 해도,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 나는 남편보고 오빠 역을 맡겼다.

본인 확인을 하지 않으면, 저희가 대출금을 정확하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오빠가 말기암으로 통화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옆에 있어 전화를 바꿀게요.”

남편이 오빠 주민번호와 이체 은행을 말하고 본인인증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내가 콜 센터 직원과 통화를 해서 나머지 일을 처리했다. 오빠가 가진 2개의 휴대폰 중 하나만 남기고, 정지를 시키는 것도 다 남편이 오빠인 것처럼 해서 끝냈다.

새언니 외국인등록증 재발급과 긴급생활비지원 신청을 위해 천안에 갔다. 안나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 있다.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이 비싸서 그만두기로 했단다. 일단, 싼 가정어린이집으로 옮긴 다음, 내년부터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라고 통역 친구가 말해줬다. 나는 급하게 근처 국공립어린이집을 찾아 상담을 했다.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았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 미납금을 내고 안나 어린이집을 바꿨다. 내가 바꾼 어린이집을 오래 전에, 오빠에게 추전을 했다. 그런데 오빠는 대기를 걸고 기다려야 한다며, 새언니가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을 찾았다. 내가 미리 대기를 걸어 두는 걸 알려줬는데도 말이다.

안나를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 5살 너무 어리다. 왕솔이는 재왕절개로 태어났다. 왕솔이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의사에게 새언니의 피임수술을 조용히 부탁했다고 한다. 의사는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단다. 나중에 오빠가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에게 난리를 쳤다고 한다. 하지만 오빠도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의사에게 시술을 부탁했지만, 이미 모든 수술이 다 끝난 후였다고 한다. 안나는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안나야, 안나는 아빠가 정말 사랑해서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 내가 안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했다. 안나가 눈을 반짝이면서 듣는다. 정말 사랑스런 이 아이가 나를 괴롭게 한다. 그냥 태어나지 않았다면, 무서운 생각을 했다. 지금 왕솔이 하나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는데, 안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동생에게 울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했다.

언니야, 새언니와 왕솔이에게 그래도 안나가 있다는 것이 축복이야. 안나가 너무 어려서 우리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힘으로 잘 클 수 있을 거야. 언니는 조금 쉬는 것이 좋겠어. 언니가 너무 고생한다. 중요한 건, 새언니가 얼마나 말을 빨리 배우고 또 아이들 일상생활을 잘 관리하는 거지. 새언니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새언니에게 이제 한국말 배우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속 통역 친구를 두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통역 친구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내가 너무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3자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 것이 나는 불편했다. 새언니도 나처럼 불편해서, 공부를 더 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왕솔이가 태어나기 전, 새언니는 다문화센터에 잘 다녔다. 왕솔이를 키우고, 안나가 또 태어나고, 그냥 한국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오빠에게 아이들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며, 새언니가 가능한 빨리 한국어를 배워 국적취득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내 말에 찬성하던 오빠가 나중에 다른 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니까, 국적취득을 그렇게 서둘러서 할 필요가 없다고 해. 국적취득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네. 앞으로 천천히 할게. 그러니까 새언니에게 한국어 배우라며, 스트레스 주고 그러지마.” 나는 오빠의 말이 너무 이기적으로 들렸다. 새언니의 날개를 접어두려는 심사가 보였다.(새언니와 오빠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사이는 아니다. 둘이 만나고 혼인신고까지 내가 고생한 이야기가 왜 없겠냐?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룬다.)

당시 나는 새언니와 매일 3분 통화를 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생각했다. 오빠나 새언니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답답한 새언니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만 하고 그만뒀다. 지금은 또 한편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조금 고생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동생이 내 말을 듣고 바로 반박을 했다. 만약, 내가 나서서 공부를 시켰다면, 이미 오래전에 오빠와 의절을 하고 살게 됐을 거라고 말이다. 오빠가 그리고 새언니가 언제 우리들 말을 들었냐며, 내가 간섭하는 줄 알고 엄청 싫어했을 거란다.

나는 새언니의 페이스북을 일부러 찾아보며, 오빠 가족이 잘 살고 있는 지 확인을 했다. 새언니는 우리 가족 모임과 베트남 친구들 모임에서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가족모임에서는 화장도 술도 하지 않는 소박한 모습이라면, 친구들과 모임에서 엄청난 악세서리와 화장 그리고 술을 한다. 나는 화려한 언니의 모습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언니가 베트남 친구들과 잘 어울려, 잘 사는 모습을 조용히 응원했다. 어떻게든 엄마가 행복한 모습이 아이들에게 좋으니까.

새언니나 오빠나 지금 이 상황이 아니라면, 문제없이 살았을 거다. 오빠 휴대폰을 확인하니 3년 전 삼성SDI 하청에서 구조 조정으로 퇴사를 당하고, 그 퇴직금으로 주식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랫동안 주식을 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는 오빠가 감당할 수 있는 빚을 지고 살았다. 새언니가 일을 다니며, 작게라도 돈을 벌고, 집안 살림이 조금 나아지려는 때였다. 하필 그때, 오빠가 큰 병에 걸린 거다. 오빠나 새언니나 모두 너무 불쌍했다.

나는 죽어가는 오빠와 살아갈 가족들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지 않다. 매일 오빠 꿈을 꾼다. 내 머리는 온통 오빠와 그의 가족들로 가득 차 있다. 오늘도 나는 구청직원과 긴급생활비지원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응답했던 직원이 이제 내 상황을 많이 이해하고,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들과 새언니가 어떻게든 오빠 없이 살아가도록 하나씩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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