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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처음으로 엄마와 통화를 하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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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우수상


처음으로 엄마와 통화를 하다

박아셀


내 나이 33살. 얼마 전 벌써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난 친정이 먼 이유도 있지만 원래 친정 엄마와 살가운 사이는 아니다. 엄마도 날 강하게 키운다는 이유로 딱 두 번 올라왔다. 대학교 졸업식 그리고 결혼식. 출산할 때 옆에 엄마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올라와도 엄마와 내가 서로 ‘힘들지? 힘내~’ 이럴 것 같진 않아서 이번 출산 때도 아이를 낳고 엄마에게 연락(통보)을 했다. 엄마는 늘 그렇듯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용돈과 선물을 잔뜩 보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8살 때, 남동생이 6살 때 이혼을 했다. 이혼 도장을 찍기 전 추운 겨울, 엄마 아빠와 마지막으로 케이크에 초를 꽂고 후~ 하고 파티 아닌 파티를 한 기억이 아직도 아린다. 엄마는 아빠에게 진절머리가 나서 떠났고 그렇게 난 갑자기 철든 누나이자 엄마가 되었다. 나 자신도 보살피기 어린 나이에 나는 우리 집 살림까지 맡게 되었다.

 

아빠는 맨정신엔 자상했지만 술을 먹으면 쌓인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했다. ‘오늘은 맞을까, 안 맞을까?’ 잠들기 전이 항상 두려웠고 운이 좋으면 맞지 않았다. 아빠가 당구장을 운영했는데, 처음엔 책임감 있게 잘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어린 나에게 가게를 맡기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하교 후에는 당구장에 가서 카운터를 보고 손님들 시중을 들고 청소를 하고 새벽 1~2시까지 일을 했다. 그러다 정말 운이 나쁘면 술에 취한 아빠가 돌아와 당구 큐대로 사정없이 때리곤 했다. 큐대가 부러질 때까지. 

 

20년 전에는 가정폭력이 그저 개인사로 치부되었고 목격하는 사람도 섣불리 끼어들 수 없었다. 나를 외면하는 어른들이 참으로 원망스러웠고 왜 경찰도 다시 아빠를 설득해서 돌려보내기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 싫은 건 담배 냄새 나는 당구장에서 온종일 카운터를 봐야 하는 것. 왜 초등학생인 내가 당구공을 닦고 찢어진 다이를 때우고 다방 언니들에게 커피를 주문해야 하는지 화가 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엄마가 근처에 살아서 종종 왕래를 했다는 것. 하지만 어린 나도 알았다. 온전한 가정이 아니라 ‘온전한 척하는 가정’이라는 사실을. 그러다 아빠의 폭력이 너무 심해져서 우린 아빠와 분리가 되었다(의사가 우리 몸에 난 상처를 보더니 경찰에 신고를 해 줬고 기관을 통해 상담과 분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토록 원하는 엄마와의 삶이었지만… 그 삶조차 너무나 힘겨웠다. 일에 찌들어 살았던 엄마는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고 우리 아침을 차려 주고 교복을 다려 주었다. 매일같이 혼자서 우리 둘을 아주 힘겹게 키워 냈다. 요즘 말로 ‘독박 육아’라 하지만 그럴수록 본인의 전남편, 아빠에 대한 원망이 커졌고 그 불씨는 우리에게 날아왔다. 매일 가슴을 후벼 파는 폭언에 가까운 말들을 듣고 삼키고 견뎌 내야 했다. 

“이럴 거면 우리 왜 낳았는데?”

“싫으면 니그 애비한테 가라!”

아빠한테 갈 수 없는데…, 아빠한테 가라니…. 욕보다 그 말이 제일 싫었다. 그래도 엄마는 최선을 다해 돈을 벌었고 난 엄마가 주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대학 등록금을 모았다. 그리고 20살이 되자마자 뛰쳐나오듯 집을 나와서 독립을 했다. 물론 엄마의 도움도 있었지만 대학시절, 7~8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었고 바로 취업을 해서 팍팍한 서울살이를 버텼다. 스스로 결혼자금을 조금 모아서 29살에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이전 삶의 고통이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들 만큼 지금은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30살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코로나라 아무도 올 수도 없고 타지에서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해서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괜스레 친정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한 번은 올라와 주지….’ 하지만 엄마는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다.’라며 가끔 물질 조공을 하긴 했지만 단 한 번을 올라와 주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그땐 친정 엄마와 함께 육아를 하는 모습을 스치듯 보기만 하여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내가 20살 때 이미 돌아가신 아빠마저 그리워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첫아이를 키우면서 4년의 시간 동안 원망스럽기만 했던 엄마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다니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 심지어 나는 시댁과 남편이 잘 도와주고 착한데도 이렇게 힘든데…. ‘20대 엄마는 오죽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왜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원망이 가득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다행인 건 엄마를 닮아 첫째도 3.6킬로그램 4시간 만에 자연분만, 이번에 둘째도 4.1킬로그램에 2시간 반 만에 자연분만으로 순산을 했다. 그래도 진통의 순간에는 정말 엄마가 생각나더라. 첫째 때문에 첫날부터 병원에 혼자 있었는데… 친정 엄마가 간호해 주는 산모가 조금 부럽긴 했다. 그래도 몸이 건강한 게 다행이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평생 엄마와 길게 통화한 적이 없다. 해도 용건만 짧고 굵게 끝. 그런데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는데 (물론 호르몬 작용이지만) 엄마의 전화를 길게 받고 싶더라. 그리고 엄마가 늘 반복하는 하소연 레퍼토리가 줄줄이 시작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들으며 처음으로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유독 이번 둘째 출산 때는 여기저기서 축하를 많이 받았다. 그동안 육아와 일을 하면서 새롭게 구축된 인맥 때문일까? 꽃다발도 받고 축하금도 받고, 시댁도 남편도 지인들도 정말 많이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부터 혼전 임신이라 축하받지 못했고 아빠와 겨우 결혼했고 나를 낳고서도 조리원은커녕 몸조리도 못했고…. 아빠는 술을 먹고 와서 행패를 부렸고….
(물론 아빠 측 이야기도 들어 봐야겠지만) 정말 33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들은 이야기인데 처음으로 엄마가 불쌍했고 짠했다.

 

‘나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 축하를 다 받는데… 엄마는 혼자 정말 외로웠겠구나.’ 나는 조리원에서 편하고 행복하게 몸조리도 하고 축하 메시지 답을 해 주느라 바쁜데…. 엄마는 하루하루 살아 내는 게 고달픈 인생이었구나, 눈물이 났다. 사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시절들도 많았는데… 내가 애 둘 엄마가 돼 보니, 내 내면이 성숙해져 보니 엄마가 엄청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키울 때야 큰소리 떵떵 쳤지, 사실 엄마도 나이 들고 나선 내 눈치도 많이 보고 나한테 항상 미안해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한테 연락 오면 안 받을 때도 있었고 ‘어, 알겠다.’ 하고 툭 끊어 버릴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무려 30분이나 통화를 한 것! 싸우지 않고 이렇게 보통의 모녀처럼 대화를 주고받으며 통화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 내 울먹임이 느껴졌는지 엄마는 당황하며 마지막에 한마디를 하고 끊었다.

“니가 웬일로 내 이야기를 다 듣냐?”
 

만약 엄마와 내가 보통의, 일반적인 가정에서 만났으면 어땠을까? 말도 다정하게 하고 손도 잡고… 그런 아기자기한 추억이 많았을 텐데 아쉽다. 우리도 지금부터 보통의 모녀가 될 수 있을까?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래 보길 소망한다.

 

수상 소감 ∞∞∞∞∞∞∞∞∞∞∞∞∞∞∞∞∞∞∞∞∞∞∞∞∞∞∞∞

 

우수상 수상자 박아셀 씨.

 

둘째 출산 63일 차.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또다시 육아 출근.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는데 걸려 온 낯선 번호.
“박아셀 씨죠? 작은책이에요~ 이번에 우수상 당선됐어요, 축하드려요!”
갑자기 피곤하게만 느껴지는 1세, 4세 아이들과 39세 남편이 급 사랑스럽게 보이며 하루의 힘듦이 싹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 둘째를 출산하고 친정 엄마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 뜨거운 마음을 글로 쉼 없이 옮겨 적어 내려갔습니다. 진심을 다해 적어 내린 글이 <작은책> 공모전에 당선되다니! 떨어진 제 자존감이 회복되는 기분까지 듭니다. 이번 연말은 <작은책> 덕분에 더욱 따뜻하고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선한 글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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