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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내 일은 어항 관리였어요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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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최우수상

 

내 일은 어항 관리였어요

조화영

 

 나는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공공기관 고졸 특별 채용으로 근무 중인 25살 여직원이다.

 벌써 입사한 지도 약 5년이 지났다. 이 이야기는 내가 처음 2년간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한 팀장의 도움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을 극복하여 지금은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이야기이다. 

 

 5년 전 나는 청년 취업이 정말 어려웠던 시대에 운이 좋아 19살 나이로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주위 친구들에게 많은 축하와 부러움을 받았고, 나 또한 뿌듯함과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직장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직급 체계에 따른 상명하복, 선후배 간의 뒷담화 등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살벌한 개인주의 현장이었다. 

 

 처음 마주한 부장은 내가 여상 출신이라서 회계에 대하여 잘 알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 약 350명의 급여를 담당하는 업무를 주었다. 그리고 문제의 기관장 비서 업무도 주었다. 운이 좋게 구한 직장인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홀로 남아 내 본연의 급여 업무를 밤 10시 넘어서까지 해내는 건 내 일이니 참고 해낼 만했고, 정확한 날짜에 직원들에게 급여가 나가는 날에는 내심 뿌듯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관장의 특별한 취미를 돌보는 일은, 내가 이런 일까지 하면서 이 직장을 다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어느 날 기관장은 갑자기 물고기(구피)와 어항을 구해 왔다. 집에서 기르면 될 물고기를 회사 사무실로 가져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흘려 넘겼다. 기관장은 구피를 정성을 들여 기르기 시작했다. 구피들이 얼마나 활발한지 어느새 어항이 꽉 찰 정도로 가족이 늘어나 있었다. 한 개였던 어항이 네 개로 늘어났다. 기관장은 구피 돌보는 데 싫증이 나고 힘들었는지 그 일을 하나둘씩 서서히 나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구피 관리가 나의 주된 업무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구피들이 귀여웠다. 하지만 관리하는 것이 내 일로 주어진 후 더 이상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나의 일은 매주 월요일 아침 어항 물 갈아 주기였다. 일주일 동안 구피의 배설물과 남겨진 먹이들로 어항 물은 탁하게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물을 갈아 주는 것이 나의 업무 중 하나였다. 즉, 구피들의 쾌적한 어항 생활과 번식을 위한 청소와 먹이 주기가 업무였던 것이다. 

 

기관장은 내게 어항 관리를 더욱더 철저히 시키고자 했는지 물고기용 뜰채까지 사 왔다. 구피가 다치지 않게 물을 갈아 주고 청소를 깨끗이 하려면 구피부터 전부 뜰채로 건져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은 새끼 구피들은 뜰채로 잡히지도 않았다.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조바심이 나고 화가 났지만 참고 극복해야만 했다. 물을 갈다 보면 뜰채로 건지지 못한 작은 새끼 구피들이 불쌍하게도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구피의 처지와 내 처지가 같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너나 나나 버려지는 인생이구나.’ 낮에는 구피 어항 관리 업무, 밤에는 홀로 직원 급여 관리 업무를 적응하면서 참고 묵묵히 해냈다. 나에게는 그만둘 수 없는 천금 같은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눈물이 나와도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어항 한 개의 무게는 대략 50킬로그램이 넘었다. 총 200킬로그램. 여자인 내가 혼자 들어 물을 갈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선배들은 누구 하나 적극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관망했다. 분명히 부당한 기관장의 사적인 업무 지시였다는 것을 부장, 팀장, 과장 등 같은 부서 선배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직장 모습인가?’ 하며 혼자 참고 견뎌 내야만 했다. 사회 초년생 20살이었던 나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동료도 후배도 없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여 직장인인 나를 이해 못하는 눈치였다. 너무 외로웠다.

 

 하루는 급여 업무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어항 청소를 끝내고 싱크대에서 찻잔 설거지(기관장실에는 손님들이 자주 찾아오는데 이에 대한 차 대접 또한 나의 업무였다)를 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하염없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 처량하고 서글펐다. 그런데 그 모습을 부장이 보게 되었다. 부장실에서 면담을 진행하였다. 부장이 왜 울었냐고 말해 보라고 다그쳤다. 머뭇거리다가 나는 “직원들 급여 업무는 숫자 하나 잘못되면 돈으로 직결되어 매우 집중이 필요한 중요한 업무이며, 특히 처음 해 보는 저에게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어려운 업무입니다. 그런데 일과 시간 중에는 기관장의 어항 관리 등 개인적인 일을 해야 하고 밤에는 홀로 남아 급여 작업을 하는 것이 너무 지치고 힘듭니다.”라고 죽어 들어가는 우는 목소리로 어필하였다.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헤아려 주시겠지? 하고 예상한 것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부장은 그럼 누가 하냐고, 본인 업무인데 스스로 해내야지 하며 나를 오히려 닦달했다. 덧붙여 휴가를 갈 때는 업무 대체자를 제대로 지정해 두고 가라며 나에게 윽박질렀다. 휴가 업무 대체자는 관리자인 부장이나 회사에서 구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는 부장의 발언과 대응에 내 눈물은 쏙 들어가고 말았다. 기관장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난 누구에게 기대야 하나 서글펐지만, 훗날 괜찮아질 날을 기다리며 2년을 힘겹게 참아 내고 드디어 다른 부서와 업무로 이동하게 되었다. 

 

 기관장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기관장은 어항 관리뿐만 아니라 어머니 병원 모셔다 드리기, 집에 모셔다 드리기, 회사로 도착한 택배(물) 집으로 옮기기 등 사적인 업무를 거리낌 없이 시키는 사람이었다. 사회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이슈화되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나는 경험 없는 어린 사회 초년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억울함과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시키는 일을 참고 견디며 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2년의 시간이 지나 부서가 바뀌었고 비서 및 급여 업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참고 견디니 해방의 날이 찾아온 것이다. 나를 다그쳤던 부장, 관망했던 팀장도 바뀌었다. 그러나 기관장은 그대로였다. 새로운 환경에 설레기도 하였지만, 또다시 같은 일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새롭게 부임한 팀장은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부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유쾌하며,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특히 민주적이었고 윗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노동조합 간부 출신이었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날 부서 회식이었다. 새로 부임한 팀장하고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게 되었다. 즐거운 대화가 오가며 너무나 기분이 좋은 시간이어서 나도 모르게 취해 버렸다. 지금 웃고 있는 내 모습에 어색했는지 힘들었던 과거의 일들이 갑자기 떠올라 우울해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팀장이 이유를 물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세세히 감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팀장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고통을 겪었냐며 분노했고 어이없어 했다. 내가 아는 바는 여기까지이다. 

 

 때는 기관장 연임 심사 기간이었다. 거의 연임이 확정되어 3년을 더 근무한다고, 발령만 남은 상태였다고 들었다. 과거는 잊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새로 맡은 업무 특성상 기관장 얼굴을 가까이서 자주 보는 일은 없으니깐!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노동조합에서 회사 게시판에 기관장 연임 관련 대자보를 붙인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자행하고 직원에게 사적인 업무를 지시하는 기관장 연임을 결사반대한다’고. 내가 팀장에게 회식 때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상당히 묻어 나온 대자보였다. 난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겪었던 힘든 일들이 공론화된 것이 시원하면서 다음에 다른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함께 느껴졌다. 팀장이 손을 쓴 건가?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팀장도 대수롭지 않게 무관심한 분위기였다. 결국 기관장은 노동조합 연임 반대에 부딪혀 사표를 쓰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기관장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겪었던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노동조합에 마음속으로 고마웠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노동조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와 직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괴롭혔던 기관장이 그렇게 그만두고 나가게 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보기 싫고 없어져도 좋을 사람이었는데, 왜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현재 나는 힘들었던 지난 일들은 잊고 나를 위해 분노했던 그 팀장과 함께 3년을 넘게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는 중이다. 출근하고 싶은 행복한 직장 생활을 느끼게 해 준 팀장님 그리고 우리 노동조합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찾아오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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