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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죽인 교육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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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죽인 교육 시스템

김석현/ 중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강남 지역 못지않게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나도 작년 한 해 온갖 악성 민원을 받았다. 출결과 관련된 민원, 성적과 관련된 민원 등 진학과 관련된 민원이 많았고, 학생의 말만 듣고 전화해서 다짜고짜 따지는 학부모도 있었다. 주변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몇 년 전부터 교권 침해와 아동학대에 대해서 공포심을 보였는데, 이제 이 학생들이 자라서 중학생 정도가 되니,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던 온갖 소송들이 중학교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들으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나는 운 좋게 소송을 당하지 않았고, 운 좋게 살아남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 이후로 교사들의 분노와 슬픔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보다도 지금 냉철한 판단과 분석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분노와 슬픔이 매우 크기 때문에,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치밀해야 하고 더 근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교사들이 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시달리게 된 것인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묶어 교육의 3주체라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주체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학생은 학교의 모든 결정 사항으로부터 오래전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부모도 형식적으로 새 학기가 되면 잠깐 학교의 결정 사항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지만, 대부분은 자기 아이와 관련되지 않으면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고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다. 교사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시키는 대로 일을 진행하며 학교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전교조에서 많이 힘쓰긴 했지만, 교사들을 위한 학교 내의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은 없는 상태이다. 학교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확인하려면 교직원 회의를 살펴보면 된다. 대부분은 전달 사항만 있을 뿐이고, 교사들의 살아 있는 의견은 없다. 

 

이렇게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 ‘수요자와 공급자’라는 개념이 들어왔다.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가 되었고, 학교와 교사는 서비스를 파는 ‘판매자’가 되었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학교 평가, 교원 평가는 소비자 만족도를 측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여기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 협박 등이 난무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교무실은 한때 일반 기업의 고객센터를 방불케 했다. 또한 기초학력 신장이라고 하는 책무성의 이름으로 일제고사가 진행되며, 이는 기업 실적을 평가하는 것처럼 학교의 실적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용되고 있다. 학교가 어느 순간 시민을 길러 내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기업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김영삼 정부가 초석을 닦고 이후 정부들이 진행한 5·31 교육개혁이 그 원인이다. 그 개혁의 방향을 보면 ‘수요자 맞춤 교육’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하며, 지금 지옥과 같은 학교의 모습이 그 개혁의 설계도에 그대로 그려져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그대로 교육개혁에 녹아 있으며, 이후 학교에 시장 논리가 판을 치게 되었다. 시장의 논리가 학교에 들어오니, 기존의 군사 문화적인 권위주의적 학교 문화에 억눌려 있던 학생과 학부모는 고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위치에 서게 된 학부모는 재력과 지위에 따라 교사와의 관계가 다르게 나타났다. 부촌 지역은 민원이 더 심하고 가난한 지역이나 지방으로 갈수록 민원이 덜하다. 신축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 교육열이 심한 곳은 학부모가 변호사를 대동하여 찾아오거나 학벌을 들먹이며 교사를 무시하기도 한다. 백화점에서 직원을 무릎 꿇리는 갑질과 땅콩 회항이 학교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 개혁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까지 한 번도 중단되거나 변화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동학대처벌법’이라는 법이 만들어지면서 이 법이 교사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무기가 되었다. 2017년에 대구에서 현장 체험학습을 가던 도중 한 학생이 버스 안에서 설사가 나와 차량 뒤편에서 볼일을 보게 되었고, 이후 학생이 창피하여 더 이상 현장 체험에 참여하기 곤란해하니 교사와 학부모가 연락 후 학생 혼자 휴게소에 내려 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하는데, 이것이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게 되는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벌금형을 받은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전교조 성명에서 “이것이 향후 유사한 사례에 대한 전범이 될 경우 아동복지법이 교사에 대한 분별없는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하였다. 

 

이런 점들을 놓고 봤을 때, 이전의 권위주의적인 학교가 과연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였는지 의문이 든다. 진짜 그런 문화였다면, 아무리 시장 논리가 들어와도 갑자기 학생과 학부모가 블랙컨슈머가 될 리가 없지 않는가? 단순히 낭만적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학생들을 다시 체벌하고, 학부모가 학교에 잘 찾아오지 못하게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과거의 권위주의적 학교와 현재의 시장주의 학교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다른 길은 분명히 있다.

 

김석현 교사가 지난 7월 28일 전교조 대구지부가 주최한 서이초 교사 대구 추모제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_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구지부

 

우리는 진상 학부모나 금쪽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이런 괴물을 낳은 신자유주의, 시장주의 교육체제와 전면전을 해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이 시스템이 낳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너무 힘이 든다. 뉴스에는 이미 너무 많아서 묻히고 있지만, 학생들도 끊임없이 자살을 한다. 서이초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얼마 전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목숨을 끊은 학생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학교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만 중요하고 소중하게 되며,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민원의 형식으로,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나타낸다. 그러니 민주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인간의 도리나 인성은 입시 경쟁 앞에서 쓸데없는 것이 되고, 오히려 아이를 경쟁에서 도태시키는, 혹은 다른 말로 기를 죽이는, 교사의 주제넘은 정서적 학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공동체를 회복하는, 체제를 바꾸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원인을 찾았으니 뿌리를 뽑을 시간이다. 교사들이 앞장서서 파업을 하고 학생들도 동맹휴업을 통해 이 체제와 전면전을 시작하자. 이는 장기적인 것도 아니고, 우회하는 것도 아니며, 이상적인 무언가도 아니다.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그리고 근본적인 것이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5·31 교육체제가 있다. 그리고 그 체제가 교사를 죽였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만든 국가는 이를 해결할 수가 없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 이 체제 속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우리들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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