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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노조와 사람들에 대한 믿음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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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작은책 산재 상담소


중요한 것은 노조와 사람들에 대한 믿음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실장님. 얼마 전 철도노조 노안실장으로 임기를 다하고 다시 현장 복귀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오래전 우리가 함께한 산재 사건이 기억나네요. 2006년이었지요. 당시 실장님은 A기관차승무사무소 지부장이었어요. 그때 조합원 한 분이 사망해서 처음 만났지요. 당시 고인은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휴무일에 사무소로 나와서 3층 외벽에 “봉축 부처님 오신 날 A기관차사무소”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달다가 중심을 잃고 추락하여 사망했어요. 고인은 승무사무소의 불교법우회 회장이었어요. 당시 실장님은 저에게 사망사고에 대해 회사(사무소)와의 협상에도 참여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였어요. 그때 사무소와의 협상에 수차례 참여했고, 중대재해라 사무소장도 겁을 먹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실장님과 저의 고민은 깊어졌고, 산재가 인정되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커져 갔어요.

 

당시 지부에서 작성한 재해경위서 초안에 대한 저의 검토의견서에서 “노무관리 및 사업 운영상 필요한 경우 통상적이고 관례적으로 행사에 참여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참여가 사용자의 묵시적인 승인에 의한 경우이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한 이후, 이 사건 경위서의 문제점과 보완 사항을 지적했어요. 그리고 “사무소장이 B 선임팀장을 행사의 지도 감독자로 공식적으로 선임하였다는 진술서 및 조직도, 행사에 참석 및 독려를 직원들 교육(소집 교육) 시 사무소장이 언급하였다는 확인서, 행사는 “무사고 안전 기원”을 바라는 기관차사무소의 특성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행사의 목적과 관련해서도 사무소의 운영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 법회 등 실제 행사에 있어서 참가자가 불교법우회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다수 참석하였다는 확인서” 등 여러 가지 추가 사항을 실장님께 요청 드렸어요. 그리고 실장님은 저의 모든 요청 사항을 꼼꼼히 이행해 주셨어요. 당시 실장님과 저는 이 사건이 산재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단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높일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만들 수 있는 확인서, 진술서, 증거 자료는 모두 첨부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저희의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어요. 산재 불승인 통지서는 “부처님 오신 날 법회는 동호회 회장인 망인, 동호회 기획부장, 동호회 총무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된 점, 사무소 건물 벽 삼면에 연등 및 현수막 설치와 관련하여 회사는 편의만 제공하였을 뿐 불교법우회 회원들이 직접 설치를 한 점, 동 법회가 망인이 사망하자 취소된 점 등으로 볼 때 불교법우회가 석가탄신일을 기해 개최하려 한 동호회 자체 행사에 해당되고, 망인은 이러한 동호회 행사 준비 작업을 하던 중 재해가 발생하여 사망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망인의 재해가 회사 내에서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근로계약에 의한 업무를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인 상태에서 발생한 재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관리하는 시설물의 결함 또는 하자로 인하여 발생한 재해로도 볼 수 없다.”라고 했어요. 우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실장님은 끝까지 싸워 봐야 한다고 심사청구 제기를 부탁했어요. 그러나 마찬가지 결론이었고, 1심 서울행정법원도 공단과 마찬가지로 기각 판결을 했어요(서울행정법원 2007. 12. 27. 선고 2007구합11108판결).

 

“불교법우회가 개인들이 모인 동아리라고 하더라도 무사고 안전 기원은 기관차사무소의 목적과 동일한 게 아닌가, 사무소장이 선임팀장에게 행사를 일부 지원하도록 위임한 사실은 왜 중요하지 않은가, 부처님 오신 날 행사는 동우회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 승무사무소 직원은 누구나 참석 가능하지 않은가, 사무소장이 참여하라고 언급한 사실은 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가, 행사 준비를 위한 전기드릴, 사다리 등은 사무소에서 대여한 게 아닌가, 동우회에서 작성한 ‘부처님 오신 날 행사 기획서’는 사무소장이 실질적으로 승인한 게 아닌가, 5만 원이 비록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사무소장 업무추진비에서 지급된 게 아닌가” 등 저의 여러 의문과 답답함은 2심 서울고등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서울고등법원 2008. 10. 23. 선고 2008누3175판결).

 

희망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고 했듯이 저와 실장님, 유족은 대법원 상고를 결정했어요. 제가 가진 논리를 담아 상고이유서를 작성했고, 우리가 사무소와의 수차례 협상과 노력으로 쌓아 온 모든 자료를 첨부했어요. 실장님이 받아 온 동료 기관사 255명의 탄원서도 함께 제출했어요. 그리고 불과 3개월 만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대법원에서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라고 했어요(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8두12283 판결). 아 !! 그때 얼마나 기쁘던지. 우리가 함께 해 온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요. 대법원은 “위 인정 사실에 나타난 바와 같이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회 및 무사고 기원제는 근무시간에 개최될 예정이었음에도 위 승무사무소 소장이 그 행사 계획을 승인하고 전체 근로자들에게 그 행사에 참여할 것을 독려한 점에 비추어 보면, 위 행사의 전반적인 과정은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어요.

 

만약 노조와 함께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노조와 함께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노조와 함께 한 명이라도 더 확인서와 진술서를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노조와 함께 승인 논리를 보강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노조와 함께 조합원들을 믿고 끝까지 싸우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산재로 인정될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그때 산재 사건을 풀어 나갈 때 중요한 것은 법 논리보다 노동조합과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까지 제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감사했고,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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