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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싶다면 노동조합을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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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안전하고 싶다면 노동조합을

 

이병조/ 금속노조 현대위아창원비정규직지회 사무장

 


현대위아 창원 공장은 2018년 7월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노동조합이라는 테두리로 노동자를 모아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의 교섭력이었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현장에서 쓰는 장갑은 늘 모자랐고, 필요한 공구 역시 제때 지급되지 않아 사비로 구매해서 사용하는가 하면, 현장 내에서는 막말과 욕설이 만연했다. 갑자기 몸이 편찮으시다는 부친의 연락을 받아 걱정하던 아들에게 관리자는 “걱정은 집에 가서 하고 일은 잔업을 해서라도 마쳐야 한다. 정신 차리고 일해라.” 하며 부친 걱정보다 생산 걱정을 하라는 비인간적인 말을 서슴없이 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 눈도 못 뜨고 콜택시에 의지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돌아온 노동자에게는 안대 낀 눈을 가리키며 “이제 뵈는 게 없으니 집에 가야겠수?” 하며 조롱 섞인 퇴직 권유까지 했었다. 연차 한 번 쓰려 하면 “너네만 애 키우냐?”, “너만 몸이 아프냐?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는 다 아파. 참으면서 하다 보면 나으니 그냥 출근해.” 등 관리자들의 비아냥과 막말에 말도 못 하고 넘어갔었다.

 

노조가 생기자 점차 일상이 반전되었다.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안전이다. 항상 부족했던 장갑, 교체 주기를 지키지 않던 안전화, 노동자의 건강보다 우선시되었던 생산 일정들이 싹 바뀌었다.

 

내가 창원 공장에 입사해서 처음 배운 일은 세척 작업이었다. 현대위아는 현대자동차 계열사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기름과 이물질을 벗겨 내는 일이 내 손의 피부까지 벗겨 내는 일인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손이 마르고 갈라져 보습을 못 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좁쌀만 한 수포가 생기고 터지면 진물이 나고 말라붙어 피부가 찢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2018년 12월, 나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닐 거란 생각에 현장을 뒤집고 다녔는데 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 할 것 없이 증상이 있는 사람이 즐비했다. 우선 하청 노동자 12명만 추렸다. 경남근로자건강센터에서 진단을 받고 집단 발병으로 노동부를 찾아가 중대재해가 발생했으니 특별근로감독을 하라고 촉구했다.

 

▲ 접촉성피부염이 생긴 비정규직 노동자의 손. 일반 목장갑을 끼고 시너와 걸레로 부품 세척을 하자 집단 발병했다. 사진 제공_ 현대위아창원비정규직지회

 

▲ 2018년 12월 집단피부질환이 발생하자 경남근로자건강센터를 방문해 진료를 받는 현대위아비정규직노동자. 사진 제공_ 현대위아창원비정규직지회

 

이 일로 안전교육 미실시, 현장 내의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 원청이고 하청이고 할 것 없이 태만했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처분이 원·하청 모두에게 내려졌다. 하지만 시정명령 외에 내려진 벌금은 다해서 5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청 사장들은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현장의 일부 정규직들은 “하청 것들이 현장을 들쑤시고 다닌다.”, “잘 쓰고 있는 장갑에 괜한 시비냐?”, “위아래도 없는 것들”, “회사가 싫으면 니들이 나가면 된다.” 하며 불쾌감과 적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피부질환에 대한 대책으로 불침투성 니트릴 장갑을 요구하여 현장에 지급되었고, 정규직 역시 이후부터 지급받아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동일한 질병의 발생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들이 얻어 낸 성과는 보호 장구에 대한 지급 기준을 마련한 것과 당시 사내의 3개 하청사들과 통합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구성을 이끌어 낸 것, 각 하청사들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위촉시킨 점이다.

 

▲ 비정규직 노조가 요구한 불침투성 니트릴장갑을 끼고 작업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 이후부터 확인된 집단피부질환 발병은 없다.  사진 제공_ 현대위아창원비정규직지회

 

이러한 성과도 법의 강제성이나 억제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마저도 노동조합이 언론을 통해 알리고, 집회를 열어 알리며 밖으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에게 이 정도의 벌금은 정말 푼돈이었다. 자진해서 납부했으므로 감액해 주고, 중소기업(하청)이라서 감액해 주고 나면 안 그래도 적은 벌금이 더 적어진다.

 

2021년 1월 창원 4공장의 프레스를 이용해 주물을 찍어 내는 단조반에서 프레스에 협착되어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혼자 작업해도 위험할 프레스 작업을 3명이 나눠서 작업을 하다가 작업자 간 사인 미스로 사고가 발생하였다. 원인은 작업 계획에도 없는 임의 작업이었다. 안전장치 설치 미흡, 안전 수칙 미준수 등이다. 하청업체 관리자들끼리 야간 시간을 이용해 당일 생산 계획이 없어 멈춰 있던 비가동 설비에서 임의로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문제는 기계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음에도 안전 센서의 설치 위치 불량으로 기계가 동작했다는 것이다. 사고 수습과 동시에 3일간의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지만, 현대위아는 책임 회피에 급급했고, 함께 참여한 정규직 지회는 하청의 사고에 관여하는 부분의 내부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는 힘들었다.

수십 건의 위반 사항들을 적발했음에도 시정명령과 함께 원청인 현대위아 법인에게 1천만 원, 책임자에게 600만 원의 벌금, 하청사 법인에 800만 원, 책임자에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대표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고작이었다. 원·하청 다 합쳐 2500만 원도 안 되는 벌금과 실형 없는 처벌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노동자의 목숨을 가벼이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현장에 자동문 하나 설치하는 것에만 15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위험성 평가와 근골격계 유해 요인 조사로 개선 대책을 세우면 사업주들은 거부부터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사람이 죽어도 개선 비용보다 벌금이 더 싸게 먹힌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몇 차례씩 발생하더라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도 징벌적 처벌은커녕 회사가 영세하니 벌금을 감면해 주고, 성실 납부 했으니 감면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처벌보다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요구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이후 교섭에서 지회는 광주, 안산의 현대위아 비정규직지회들과 연대하여 “생산/안전/고용협의회”를 신설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이 단위는 노사협의회와 산업안전보건협의회를 확장하는 성격을 가진 단위이다. 지역별로 진행하되 공장별로 해결되지 않던 안건들을 모아서 분기별로 원청의 관계 부서와 하청 대표들 그리고 노동조합이 참여하여 협의하는 회의체이다. 원청의 직접적 개입으로 개선 속도는 이전에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의외로 노사관계는 이전보다 원만해졌다.

 

현대위아 창원비정규직지회에서 발생했던 사례들을 보면, 처벌하는 법에 하한선이 없고 상한선만 있는 한(예: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항상 소극적인 솜방망이 처벌만 내려질 것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스스로 현장을 바꾸어 나갈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싸워 나갈 힘이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현장들은 계속되는 악순환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생존법인 노조법 2조, 3조가 개정되고 강화되어야 노동자가 진짜 사장(원청)과 교섭과 협상을 할 수 있고, 또한 투쟁으로 인한 노동자의 불합리한 처우를 막아 우리 스스로 현장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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