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건강을 위한 비대면 진료?

월간 작은책

view : 424

살아가는 이야기

김정선의 인문약방

 

건강을 위한 비대면 진료?

 

김정선/ 일리치약국 약사.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저자

 


요즘 약국에는 하루가 멀다고 비대면 진료 서비스 업체들에서 보낸 우편물이 도착하고 있다. 파트너 약국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 시스템은 보통 이렇게 돌아간다. 스마트폰 앱으로 진료를 받으면 약국에 팩스로 처방전을 보낸다. 조제한 약은 배송 기사를 통해 환자에게 배달되는데 약사는 복약 지도를 작성하여 온라인으로 전달한다. 도대체 비대면 진료 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어제 가장 유명하다는 앱을 휴대폰에 깔아 봤다. 진료과나 증상 분류를 골라 터치하고 들어가면 그 시간에 진료 가능한 의사들이 사진과 함께 뜨고 별점이 나오고 후기가 몇 개인지 보인다. 흡사 맛집을 검색해서 선택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된다. 이게 뭐지 하면서도 막상 진료 가능한 의사가 보이니 바로 누르고 싶었다. 아! 이거 너무 편리하구나! 그런데 이런 편리함이 정말 좋기만 한 걸까? 뭔가 찜찜하다. 

 

한 서울 지하철역의 비대면 진료 앱 광고. 사진_ 작은책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가 심각 단계일 때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었다. 오는 5월 중 심각 단계가 해제될 예정이고 그러면 비대면 진료는 다시 불법이 된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진척되지 않았다. 지난 4월 초에 당정은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를 추진하겠다고 결정했다. 의사회나 약사회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많다. 환자 본인 여부를 의료진이 확인 불가능하고, 비급여 처방약을 손쉽게 처방받는 편법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고, 처방약이 분실되거나 오배송될 수 있는 등등. 결국 건강에 대한 안전성을 해치고 보건의료 질서 또한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보건의료의 영리화도 함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나는 약사로서 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 서비스가 충분한 논의 없이 시범사업 형태로 지속된다는 데에 염려가 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게 뭐냐며 시범사업은 고사하고 비대면 진료 앱이 있는 줄도 모른다. 새로 시작한 세미나에서 정의에 관해 공부했는데, 불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히 의사 결정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차이를 잘 반영하는 것이 정의에 가까워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부나 이익 집단끼리의 폐쇄된 논의로 정책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 정부와 업계 그리고 의사회와 약사회가 잘 논의한다고 해도 충분치 않다. 학계와 사용자 입장인 일반 국민들 등 관련된 여러 분야가 함께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상황의 종료 시기에 맞춰서 졸속으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법 개정을 추진할 때 정부는 도서·벽지·재외국민·감염병 환자 등 의료 취약지·사각지대 환자를 우선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의료 불균형이 심한 나라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잘 이용한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 취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스마트폰 이용에 서투른 노인들이 아닌가? 결국 젊은 사람들이 주 이용층이 될 가능성이 크고 도시에서의 이용률이 높을 게 예상된다. 도시는 이미 병원이 많아 접근성이 좋다는 점에서 이 시범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기는 좀 힘들다.

 

무엇보다 내 찜찜함의 이유는 따로 있다. 사람들이 의사나 약사를 만날 때 단순한 이해관계로만 만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어도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는 관계가 만드는 밀도는 비대면 관계와는 다르다.

환자의 체형과 얼굴색 등 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중요하다. 이 대면이 주는 밀도에는 치료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에서 기인하는 환자의 정서적 안도감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비대면이라도 시간을 들여 상담한다면 그 밀도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앱상에서의 상담이 그렇게 긴 시간을 보장해 줄까? 편리함 때문에 과잉 진료가 부추겨지는 것은 아닐까? 결국 비대면은 몸을 소외하면서 편리함을 만들 것이다. 그 편리함 속에 과연 ‘건강’이 들어 있을까? 

 

최근 읽은 《쿠바와 의생활》(김해완, 북드라망, 2023)이라는 책에는 쿠바에서 의대를 다니고 진료소에서 실습했던 작가가 전하는 의료 현장이 소개되고 있다. 쿠바에서는 ‘콘술토리오’라는 마을 진료소가 1차 보건의료를 담당한다. 작가는 이 진료소가 병원보다는 ‘마을 사랑방’을 떠올린다고 얘기한다.

진료소는 환자들의 수다가 가득하다. 의사와 간호사는 모든 대화를 꼼꼼하게 듣는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수다 속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의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쿠바는 우리와 사회체제와 경제적 상황이 달라서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또 공공의료만 있고 진료비가 무료이다. 하지만 내가 약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콘술토리오에서 일어나는 일이 짐작 간다. 비대면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많은 디테일들이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이야기 속에서 발견된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 업체의 파트너 약국은 되지 않으려고 한다. 실은 약국을 열 때부터 처방전을 받지 않았다.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강이 구성되는 현장은 어디까지나 ‘몸’이다. 환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몸이라는 이 현장에 동등한 주체로서 참여해야 하고 몸은 이야기되어야 한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