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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대를 전국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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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이야기_ 지역공공병원 만들기(7)

 


공공의대를 전국 곳곳에

 

문정주/ 의사.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 저자

 

 

정확히 2년 전, 전공의들이 파업을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인턴과 레지던트가 모두 파업하는 바람에 전국 큰 병원마다 보름 동안 응급, 수술, 입원, 외래진료 전반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방안(2020. 7. 23.)에 반발해 벌인 파업이었다. 인구당 의사가 OECD에서 꼴찌 수준인 현실에 의사 증원이 절실한데도 의협은 정원 확대가 ‘무분별’하다고 했다. 전공의들도 방안을 철회하기를 요구했다.

 

파업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를 쏟아 냈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 의사가 병원을 박차고 나간 데다, ‘전교 1등’이라야 의사가 된다는 오만한 홍보물까지 뿌리니 비난이 들끓었다. 차가운 국민 여론이 뒷심이 되어 주었지만, 결국 정부는 의료 대란을 끝내기 위해 앞서 발표한 정책 방안 추진을 중단하기로 했다.

 

때는 코로나19 감염이 번져 나가던 첫해 여름이었다. 초봄에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시작한 대유행이 가라앉고도 집단 감염이 계속되었다. 환자는 발생하는데 사립병원이 환자를 받으려 하지 않아 전체 중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입원환자 80퍼센트를 치료했다. 집단 감염이 일어난 지역에서는 병상이 부족해 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치료하는 예가 빈번했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환자도 있었다. 과중한 근무 부담에 공공병원 의료진은 지쳐 갔다.

 

공공의료를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지역별 공공병원을 확보하고 공공의료 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갈수록 커졌다. 정부가 떠밀리듯 정책 방안을 마련한 배경이고, 이를 발표하는 회의장 정면에 ‘공공의료 인력 확충’이라 써 붙인 배경이다.

 

그런데 정부 발표는 오히려 공공의료 확충에 찬물을 끼얹었다. 의대 정원 400명 확대, 지역의사(지역 내 중증·필수 의료 분야에 종사) 양성, 공공의대 2024년 개교 등을 발표했으나 기대했던 공공병원 신·증축, 의사·간호사 공직 확대 등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공의료 강화 문구는 귀퉁이에 양념처럼 끼어 있을 뿐이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해 얻는 효과는 사립 의대에 학생을 늘리고 사립병원에 의사 고용이 수월하게 되는 데 그칠 것이라 예상되었다.
당장 반발이 터져 나왔다. 매스컴에는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주장과 파업 움직임만 크게 보도되었지만, 실은 정부 방안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며 철폐를 요구한 쪽은 그간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해 온 단체들이었다. 발표 바로 다음 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노동건강연대 등은 합동 성명을 내 방안 폐기를 요구했다. 정부 방안이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 아닌 ‘사립 의대와 사립병원에 혜택 몰아주기’와 다름없음을 지적하며 공공의료를 위한 의사 증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 방안에서 가장 비판받는 대목이 확대 정원을 배정받을 의과대학 선정이다. 총 400명 중 대다수인 300명을 지역의사로 양성하며, ‘의사 수 부족 지역 및 소규모 대학(정원 40인 또는 49인)’을 우선 고려해 선정한다는 것이다.

 

소규모 의대는 전국에 17개로 울산대(현대아산그룹), 성균관대(삼성그룹), 인하대(한진그룹), 가천대(길병원), 차의과대(차병원), 건국대충주(건국대병원) 등 대부분 사립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 산업 재벌과 병원 재벌이 앞다투어 설립했다. 설립 인가 과정에 ‘정치권 압력’과 ‘고위층 입김’이 뜨겁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정부가 무더기로 인가를 내주는 대신 정원을 제한해 규모가 작다.

 

아산병원, 삼성병원 등 매머드 병원을 거느린 재벌이 겨우 학생 40여 명인 소규모 의대를 인가받아 설립한 것은, 크든 작든 의대가 있으면 이를 지렛대 삼아 병원이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만큼 높은 사회적 위상과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누리는데 그중 병원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교수 직위다. 핵심 인력인 의사에게 교수 직위를 부여해 안정적으로 고용하고, 그를 정점으로 한 직업 피라미드를 통해 젊은 전공의의 노동을 낮은 임금으로 이용하니 경영에 이보다 더한 이점이 없다.

 

이들 의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공통점이 ‘지역 학교’라는 외피다. 이는 설립 당시 정부가 인가를 내주는 정치적 명분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내세웠던 데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학교 주소가 서울이 아닌 울산(울산대), 수원(성균관대), 포천(차의과대), 충주(건국대충주)로 흩어졌다. 하지만 이는 행정 요건에 따른 것일 뿐, 주소지 지역과 의대 사이에 실제 관계는 매우 약하다. 의대 교육 6년 중 지역에서 수업하는 기간은 대개 첫 1년 정도이며 그 외 기간에는 학생 전원이 서울 또는 서울 근교에 있는 병원 캠퍼스에서 수업하고 실습하므로 ‘지역 학교’가 아니라 ‘서울 학교’ 또는 ‘서울 근교 학교’인 셈이다. 학교가 배출한 졸업생이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율도 미미할 만큼 낮아, 지역 균형 발전으로는 명백한 실패작이다.

 

작년 12월 교육부가 이들 의대 중 한 곳에 시정명령을 통보했다. 인가받은 지역에서 교육하라는 명령이었는데 학교 측 답변은 ‘명문 의대’로서 양질의 교육 환경을 유지하도록 재고해 달라는, 다시 말해 시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분노했지만, 서울 명문 사립 의대에 지역이 영향력을 미칠 방도가 없으니 어떤 움직임도 만들지 못했다.

 

이런 학교에 정원을 배정해서는 안 된다. 의대를 병원 경영의 수단으로 여기고 지역을 행정 요건을 무마해 줄 외피로 여기는 학교는 지역을 위해 일할 의사를 키울 수 없다. 만약 정부가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정원을 확대해 이들에게 배정한다면 지역 불균형 해소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처사다.

 

 

공공의대를 전국 곳곳에

 

정부 발표에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 또한 담겨 있다. 역학조사관·감염내과 등 국가와 공공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 낼 학교를 설립해, 시도별로 학생을 선발하고 장학금 등 학비를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며 졸업 후 공공의료 분야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게 하는데,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이에 관해 두 가지 논점을 살펴본다.

 

첫째, ‘공공의대를 별도로 설립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다. 먼저 국립 의과대학 신설을 환영한다. 우리나라에 40개 의대가 있으나 대다수가 사립인 현실에서 국립 의대 신설은 뜻깊은 일이다. 앞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의학 교육 기회가 늘기를 바란다. 그런데 공공의료는 일부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의료 범위 전반에서 누구나 필수의료를 이용하게 보장하는 활동이다. 그와 함께 공공의료 교육 역시 의료 전반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학 교육과 다르지 않다. 모든 의대, 적어도 모든 국립 의대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설할 공공의대와 기존 국립 의대가 협력해 공동으로 국고를 지원받아 인재를 양성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둘째,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 활용으로 충분한지’에 관해서다. 서남대학교는 전북 남원에 있었고 부실 대학으로 악명이 높다가 2018년 교육부에 의해 최종 폐교되었다. 지역에서는 그 대학 정원을 살려서 남원에 국립 공공의대가 설립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겨우 49명으로는 국가와 공공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공공의료는 어느 곳 누구에게나 필요하므로 이를 교육할 대학도 남원만 아니라 곳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국립 의대를 모든 권역에 골고루 세우고 정원을 확대해 자기 지역을 깊이 이해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건의료노조는 30일“의사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과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방안의 허점은 미래를 열어 주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단순히 400명 증원을 선언했을 뿐, 의료 체계의 숱한 문제에 개선책을 내놓지 못했다. 젊은 의사들의 파업은 변화를 바라는 요구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의료 체계의 근본을 겨냥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일차의료제도를 도입하고 권역별로 국립 의대를 세우며 지역 공공병원을 확충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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