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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에서 일한다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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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도축장에서 일한다

정현호/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조합원

 

나는 2008년 4월에 입사한, 도축검사원으로 불리는 위생직 직원이다. 충북 청주에 살고 있던 나의 첫 근무지는 집에서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충북 음성 외딴곳에 위치한 작은 도축장이었다. 도축장은 혐오시설이라 대부분 외곽에 있어 대중교통 출퇴근이 불가능했다. 당장 출퇴근을 위해 급하게 중고차 매매상사를 방문해 가장 싼 차를 사러 왔다고 멋쩍게 말했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사택 하나 없이 허울뿐인 숙소 운영 지침만 만들어 놓고, 신규 임용된 직원들은 첫 출근을 위해 할부를 떠안고 차부터 구매해야 한다. 기존 직원들도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발령이라도 나면 출퇴근 소요 시간과 유류비 부담으로 개인이 숙소를 구해 지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월급의 10~15퍼센트를 차지한다.

 

첫 출근한 내게 주어진 업무는 도축 검사와 시료 채취였다. 도축되는 가축이 병에 걸렸는지 검사하고, 항생제가 남아 있는지, 도축장 환경이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가축들이 백신은 잘 맞고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지를 검사하는 데 필요한 시료를 채취하는 일이다. 도축 시작을 알리면 복장을 갖춰 입고 현장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들어선 도축 현장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피, 내장, 분변, 산패된 냄새가 뒤섞여 어디서도 맡아 본 적 없는 역겨운 냄새 속에서 온갖 기계들이 만들어 낸 소음이 귀마개를 뚫고 고막을 찔렀다. 먼저 구제역 및 광우병 검사에 필요한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기계들 사이 좁은 틈을 지나 도축이 시작되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타격 총에 맞고 힘없이 쓰러진 집채만 한 소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방혈을 시작했다. 소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에 작은 튜브를 갖다 대어 혈액을 채취하려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노란 방역복은 금세 피범벅이 되어 버린다. 바닥은 순식간에 피가 가득 고여 버리고 잠시 후 소머리가 잘려 작업장 한쪽으로 던져지면 미끌미끌한 피 바닥을 스케이트 타듯 조심조심 헤치고 다가가 잘린 소머리에서 또다시 시료를 채취한다. 검사원 신규 교육 때 보았던 도축장 교육 영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라 당황의 연속이었지만 시설이 더 열악한 도축장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도축된 소의 구제역 검사에 필요한 시료 채취를 하는 모습. 사진 제공_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시료 채취 업무를 마치면 곧장 도축 검사를 위해 해체 검사 구역으로 이동한다. 지면에서 40센티미터 정도 높이에 설치된 내장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맞춰 허리를 깊게 숙인다.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또 다른 한 손은 성인 남성 몸무게 정도의 무거운 소 내장을 밀고 끌어당기고 뒤집어 가며 림프절과 이상 부위(병변이나 물리적 충격에 의한 출혈)를 절개한다. 이 작업은 20대의 젊은 나이였어도 만만치가 않았다. 어설픈 손놀림에 검사 속도가 도축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날이면 급한 마음으로 불합격된 내장을 폐기하다 손가락을 베이는 건 일상이었고 허리를 두드리며 퇴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4년차 검사원이 되었고 변함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 업무가 능숙해져 베임 사고는 줄었지만 불안정한 자세로 반복적인 업무를 하다 보니 왼쪽 어깨를 다쳐 석회성 염증이 생겼다. 2년 전부터는 자유롭게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게 되었다. 같이 근무하는 후배는 허리가, 또 다른 후배는 목이 망가져 지속적인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오늘도 현장에서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여 가며 일을 하고 있다. 10년이 넘게 지나도 개선되지 않고 우리의 위험과 통증만 누적되고 있다.

 

비록 우리 신분은 무기계약직이지만 공공기관의 직원이라는 사명감으로 국민에게 위생적이고 안전한 축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안전과 처우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도 지켜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기관에 취직했다고 세상 다가진 듯 기뻐하셨던 부모님께서 실망하실까 두려워 아직도 내 신분이 무기계약직이라는 말을 못 하고 있다. 요즘엔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말끝을 흐리며 그냥 도축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지만 14년을 일해도 턱없이 부족한 월급과 공익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무기계약직 신분이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게 어렵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대학 동기들을 만나 월급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게 된다.

 

얼마 전 한 직장 동료는 일과 후에 배달 알바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본인도 규정상 겸업금지인 걸 알면서도 생계유지가 너무 힘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고 한다. 너무 공감되었던 것이, 나 역시도 택배나 배달 관련 앱을 설치하고 일거리를 찾아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저임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검사원의 업무 환경이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위생직은 각 도본부의 사무소에 속해 있지만 도축장이 내근지이다. 회사는 사무실을 임대할 예산이 없고, 검사관처럼 법적으로 사무실을 제공받을 권리도 없어 검사원들이 직접 도축장에 부탁하여 남는 사무실을 얻어 쓰거나 검사관실 한쪽을 빌려 근무한다. 컴퓨터 없이 업무를 할 수 없음에도 위생직 정원의 절반도 안 되는 수량의 컴퓨터만 지급된 상태이며, 이마저도 대부분 10년이 넘어 사용이 불가하다. 프린터, 팩스 등의 사무 집기 역시도 구매가 불가능하다 하여 사비로 구매하거나 타 기관이나 업체에 눈치를 보며 구걸을 한다. 어떻게 정부 부처에서 일을 시키면서 기본적인 업무 환경조차도 만들어 주지 않고 예산 탓만 하는 것일까?

 

우리 기관은 가축 방역 현장을 책임지는 작은 기관으로 시작해 이제는 축산업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현장 기관으로 발전했다. 이 모든 것이 20년이란 세월 동안 현장 직원들이 흘린 피와 땀을 인정받아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7개 직종(방역, 위생, 예찰, 안전, 검역, 정보통계, 청사관리) 1219명의 무기계약 공무직과 55명의 일반직이라는 기이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현장 중심 기관에서 정작 현장을 책임지는 직원들은 직급도 인정받지 못한 채 수당도 상여도 일반직과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지난 1월 18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면 파업을 선포했다. 사진 제공_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처음부터 어긋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지붕 한 가족’임을 확인하듯이 모이기만 하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희망 고문에 우린 속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무이사는 직원 간담회를 통해 공무직의 요구는 일반직과 태생부터 다른 구조적 문제로 기획재정부에서도 우리의 요구를 인정치 않고 있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선을 그어 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현장의 분노가 우리를 뭉치게 했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파업을 성공으로 이끈 우리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 파업 총결의대회에서 모두가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생생하게 느꼈다.

 

지난 1월 20일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앞 경고 파업 1차 총결의대회. 사진 제공_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맨손에 칼과 주사기만 쥐어 주고 현장으로 내보내 20년 가까이 싼 맛에 부려 먹었다면 이제는 공무직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국가가 책임지고 일반직 전환에 나서 국가방역시스템 일원화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구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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