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읽기

쓰레기와 함께 쓰는 청소 일기

월간 작은책

view : 2002

<작은책> 2022년 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생활글 공모전 좋은 글

 

쓰레기와 함께 쓰는 청소 일기

김시열/ 청소노동자

 

11월 18일(수)

“내일 비 잡혔으니 남자들은 트렌치(빗물 도랑) 막히지 않게 쌓인 가랑잎 치우고 퇴근하세요.”

“저놈의 작업 지시는 꼭 집에 가기 10분 전에 할까.”

옷 갈아입으러 들어왔던 사람들 투덜거리며 벗던 작업복 다시 입고 도랑으로 나간다. 의주로 주차장은 서소문빌딩 건물 쪽에 도랑을 두어 빗물을 큰길가 하수구로 빼낸다. 갈고리 같은 칠엽수 이파리와 화살촉 닮은 느티나무 가랑잎, 길에서 날아온 은행잎이 쌓여 멀리서 보면 노란 밭이랑 같다. 보기엔 빛깔 고운 가랑잎 무더기지만 노숙자들이 자주 똥을 싸고 내빼는 곳이라, 무심코 손으로 파내기엔 찜찜하다.

이파리가 바닥에 붙어 있고 도랑 폭도 좁아 삽이나 쓰레받기도 잘 들어가질 않아 연장 쓰기도 힘들다. 내키진 않지만 손을 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지라 모두 마음이 급하다. 이 구역 청소 담당 수종 씨가 나섰다. 목장갑 위에다 고무장갑 하나 더 끼고 잔뜩 구부린 채 부지런히 긁어낸다.

“이크, 야! 이게 뭐야?”

어쩌나! 노란 은행잎 아래 몰캉한 뭔가를 움켜쥐었나 보다. 꿈속에서 만나면 재수 좋아 복권 긁으러 간다는 그분 만난 것 같다. 빛깔도 은행잎과 형제처럼 닮아 수종 씨 그 잽싼 손길로도 어쩌지 못하고 덥석 잡은 것 같다.

“빨리빨리 치웁시다. 사람들 보이는 시멘트 위에 사고 쳐 놨는데 죽으나 사나 우리 손으로 치워야지, 뭐 어쩔 거야?”

엉거주춤 일어서던 수종 씨 머리 위로 반장 호통 소리 날아들자, 모두 고개 돌리고 손발 재빠르게 움직인다.

 

쓰레기가 쓰는 일기

나는 날마다 시열 씨가 치우는 쓰레기. 인간들 잘 모르는 쓰레기 정체 알리려고 몇 마디 거들까 싶어. 쓰레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지 않아? 인간들 입에서 나와. 종이 커피잔, 비닐, 과자봉지, 귤 상자, 도시락 포장재, 대나무 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 콜라병, 사이다병, 음료수병, 물병. 잠깐 떠올려 봐도 입에 달린 쓰레기가 10가지가 넘어. 옛날에는 쪽박 하나 있으면 뭐든지 담아 먹고 마셨는데. 간단하고도 재주 많은 쪽박 대신 플라스틱, 비닐, 유리, 코팅 종이 따위 잔뜩 만들어 놓고는 인간들 발전이라고 떠들고 과학이라고 부르댄다. 이게 인간들 발전이냐? 우리 쓰레기 발전이지! 10층 사무실에서 나오는 프린터 카트리지(잉크), 볼펜, 사인펜 이런 것도 옛날엔 벼루나 먹물 하나면 됐잖아. 옛날 쓰레기로는 뭐가 있을까. 몇 날 며칠을 생각해 봐도 쓰레기 조상 찾기 참 힘들어. 옛날 인간들은 쓰레기 없이 어떻게 살았지? 그런데 쓰레기 만들지 못하는 옛날 인간이 지금보다 더 발달한 거냐 미개한 거냐? 거~ 아리송하네.

 

11월 24일(화)

날씨가 꽤 춥다. 바람까지 불어서, 영상 1도 정도 날씨인데도 몸이 덜덜 떨린다.

날마다 새벽에 나와서 그런 것 같다. 청소는 사람들 없을 때 시작해서 출근하기 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라 새벽 첫 버스나 두 번째 오는 버스를 탄다. 동트기 전 추위에 언 몸은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로 올라와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레 가까운 사람들한테 춥다고 말하면 “한겨울도 아닌데 뭘 그리 춥다고 호들갑이냐”며 오히려 핀잔받기 일쑤다. 오후 1시. 외곽 쓰레기 줍는데 반장 전화다.

“시열 씨, 하던 일 놔두고 지금 지하 2층 샤워장으로 와요.”

갔더니 다 모여서 청소 한창이다. 웬일? 건물 관리하는 소장이 족구 하고 샤워하러 올지(온다는 것이 아니라 ‘올지도’) 모른다며 벽이며 바닥이며 락스질이다.

실내의 이미지일 수 있음

집에서 하는 청소와 달리 건물과 사무실 청소는 깨끗하기보다 ‘보여 주기’가 먼저다. 입주한 빌딩 주인(관리업체)에게 잘 보여야 하고, 입주해 있는 사무실(직원)에 밉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년에 우리(용역회사)가 재계약할 수 있고 여러분들도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게 청소 반장 평소 말씀.

“지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샤워 끝내고 물 한 번 뿌리면 끝날 일을 바빠 죽겠는데 꼭 우릴 불러야 하냐고? 쓰레기 내놓을 시간에 말이야.”

(빌딩 안 모든 사무실 쓰레기는 오후 2시까지 각층 화물 엘리베이터 앞에 내놔야 한다.) 정신없이 사무실 쓰레기 정리하다 불려 내려온 13층 염씨 아줌마가 반장 들으라고 큰소리로 왈강달강 떠든다.

샤워장 청소 끝나니 8층으로 올라가라고 닦달이다. 사무실에서 종이와 책 한 무더기 나왔으니 얼른 치우라는 연락. 아, 오늘은 일도 추위도 모두 내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르네. 제발, 저리 좀 가라, 가!

 

11월 25일(수)

종이 상자가 하루에도 몇백 상자씩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알맹이만 쏙 빼고 빈 상자와 포장지는 쓰레기가 되어 다시 내려온다. 보험회사에서 계약자들한테 줄 판촉물이며 온갖 선물을 싼 것들이다. 이런 종이 상자만 가져가는 업체가 따로 있는데, 요즘 자주 오질 않는다.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아침마다 들어왔는데, 언젠가 일주일에 두 번 오더니 슬그머니 한 번으로 줄었고 그 시간도 들쭉날쭉 제멋대로다. 폐휴지를 가져가는 사람들은 주로 노인들이고 가끔 이주노동자도 들어온다. 보통은 노인 혼자 큰 트럭을 몰고 무겁고 엄청난 양의 폐휴지를 다 싣는다. 서울 시내 빌딩 이곳저곳 다녀야 하니 정해진 시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니 버티는 직원이 별로 없다. 만약 이 사람들이 한 달만 들어오지 않으면,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쌓이는 폐휴지가 내가 일하는 이곳 21층 빌딩만큼 높이 올라갈 것이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쓰레기 참 무섭다.

 

쓰레기가 쓰는 일기

오늘은 인간들 연말 선물로 김과 새해 달력이 각 100상자씩 3층, 5층, 7층, 10층, 11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깨지거나 값나가는 보물도 아닌데 싸고 또 쌌다. 바깥에 두꺼운 종이, 가운데 비닐, 가장 안쪽에 플라스틱으로 포장지가 세 개나 들어가 상자마다 3배로 몸집을 불린 쓰레기가 되었다. 달력도 종이 상자-비닐-황금빛 플라스틱 노끈으로 어김없이 3겹 포장이다.

이상하지? 인간들 왜 모든 포장을 세 겹으로 할까(의심스러우면 택배 물건 풀어헤칠 때 한번 눈여겨봐 봐). 허세와 과시로 만들어 내는 포장물은 이 땅별에서 인간만이 특허 낸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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