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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생활글 공모전 작은책상] 다수를 위한 일

월간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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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생활글 공모전 수상작  작은책상

 

 

다수를 위한 일

김유진

 

 추석 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9월 어느 날, 느닷없이 부고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구청 ○○○팀장 배우자 상. ○○○장례식장…’

 모처럼 만의 연휴에 날아든 부고가 부담이 됐지만-문자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조문객들을 받지 않겠다고 적혀 있었지만 직속상관이라 잠깐이라도 장례식장에 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한편으로는 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사람의 소식을 달랑 문자 한 줄로 접하는 마음이 착잡하면서도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팀장의 배우자이자 같은 지자체 직원이었다는 사실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수다스럽기로 소문난 팀장이 왜 배우자에 관해서는 일절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부부 사이가 많이 안 좋았던 걸까? 숨겨야 하는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장례식장을 다녀온 후 며칠 동안 잊을 만하면 이런저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소 타인의 사생활에 그다지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라 이런 나 자신이 이상하다 싶었던 찰나, 그분의 사연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분은 십 년 전쯤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 동원됐다고 한다. 그 이후 많이 괴로워했고, 그 마음을 술에 의지해 견뎌 내다 시설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극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으며, 그러고도 나아지지 않아 다시 술에 손을 대다 결국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얘기를 접한 순간 텔레비전 뉴스에서 봤던 살처분 영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오동통 하얗게 살찌워진, 수도 없이 많은 돼지들이 산 채로 구덩이 속에 무참히 던져지던 장면들이…. 얘기를 듣고 머리를 심하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얼얼해졌다.

구제역 살처분 현장. 사진_ 구제역 긴급행동지침 농림축산식품부 자료.

 

 다수를 위한 행동이 어떤 사람에겐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문득 얼마 전 업무를 하며 목격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급격하게 오르던 지난여름 어느 날, 동료 직원과 나는 야간에 관내 노래방과 주점 등을 돌아다니며, ‘정부 방침을 어기고 영업을 강행할 시 행정처분에 처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포스터와 경고장을 붙이러 다녔다. 그날따라 비가 세차게 내렸다. 주변은 그야말로 주차가 지옥인 곳이었고, 우리는 인근에 차를 댄 후 미리 준비해 온 종이 위에 찍힌 관내 가게들 위치와 주소록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스무 군데가 넘는 장소를 걸어서 이동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지도를 짚어 가며, 포스터를 붙인 가게에는 지도상에 가위표를 쳐 가며 스무 군데가 넘는 장소를 이동해 다니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나중에는 지도가 비바람에 너덜너덜해져서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방침이 너무 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많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단 공무원으로서 시키는 대로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더 쪼그라들게 만든 건, 평소라면 한창 활개를 치고 있어야 할 가게들에서 마주한 정적과, 어둠과, 그리고 마치 죽음을 예견하는 듯 스멀스멀 코끝으로 올라오던 그 퀴퀴한 냄새들이었다. 눈앞의 가게들은 마치 거대한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한 군데 문을 연 가게를 발견했다. 조금 전 무거웠던 마음이 불 켜진 가게를 마주하자 순간 환해지려다 이내 걱정이 앞섰다. ‘정말 영업을 하는 거면 어쩌지? 그럼 행정처분을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복잡해진 마음에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슬며시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가게 안에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직원들로 보이는 몇 명이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용기 내 질문을 던졌다.

 “여기, 영업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휴업하려고 가게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사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와 내 동료를 번갈아 보더니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목에 두르고 있던 공무원증을 내보이며 구청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 같은 공무원들이 요즘 제일 부러운 사람들이라며 자신의 힘든 사정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차마 그냥 등 돌리고 나올 수가 없어 “네….”,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러시죠.”, “그 심정 이해 갑니다….” 같은 말을 건네며 이십여 분을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 깊은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그러고는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없겠지만 바쁠 텐데 시간 내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 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돌아서 나오는 마음이 전보다 더 무거워졌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기력했던 나는 기계적으로 남은 포스터들을 마저 붙이고 별다를 것 없이 그날 하루를 마감했다. 

 얼마 후 뉴스에서 생활고로 자살한 자영업자 소식을 들었다. 내 마음을 짓눌렀던 그 무겁던 공기와 노래방 사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그분의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전염병이 전파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게들의 영업 제한이 장기화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 방침이, 열심히 살아오던 소시민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잘 모르겠다. 다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동물들과 어떤 이들의 목숨이 이토록 가벼워져도 되는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진짜 다수를 위한 것인지….

 그래서 글을 써 본다. 혼란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안받아 보고자. 혹은, 답을 알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져 보고자. 

 우리는 정말 다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당선 소감


 최근 야심차게(?) 도전했던 일에 연이어 거절을 당하면서 좌절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작은책’으로부터 당선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나는 다시 기사회생하였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적절한 시기에 나를 수렁에서 건져 준 작은책 심사위원 모든 분들께 격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노동현장에서 몸소 겪은 일로 쓴 글이 얼굴 한번 마주하지 못한 타인의 마음에 조금은 가 닿은 것 같아 그 어떤 글로 당선된 것보다 흐뭇하고 기쁜 마음이다. 앞으로도 ‘작은책’과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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