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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하청업체는 그냥 해 주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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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하청업체는 그냥 해 주시던데요


김환민/ 전국IT산업노동조합 위원장

 

 20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했던 첫 일은 게임 개발이었다. 주위에선 많이들 의아해했다. 나름 이름 있다는 대학을 나와 고연봉 대기업 취직을 마다했으니 특히 그랬을 것이다. ‘연봉도 삼성이나 증권사보다 낮은데 굳이 왜 그쪽을 희망하는 거야?’ 그때로 돌아가 답을 생각해 보자면 역시 ‘재밌으니까’였다.

 그렇게 돈 못 버는 직업 취급을 받던 IT도 이젠 속칭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의 시대를 맞아 고연봉의 대표 직종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연봉 인상의 이면에는 플랫폼 자본을 필두로 한 불공정과 노동착취가 존재하며, 노동환경이 개선되기까지는 지금까지 고생했던 활동가 동지들의 노력과 희생이 녹아 있다. IT 산업은 아직 ‘균질’하지 않고, 다 같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나도 처음부터 활동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중소 규모의 제작사였기에 여기저기에 출품을 하고, 하청도 수주하고, 투자처와 발매처를 찾아 동분서주하곤 했다. 심지어 회사의 등기임원이기까지 했다. 회사가 고꾸라지고 나자 지금까지 느끼던 부조리가 갑자기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기업은 투자와 퍼블리싱을 계약해 놓고 말 한마디로 모든 계약을 백지화하기 일쑤였고, 계약서조차 작성되지 않은 구두 약속은 말 그대로 뜬구름에 불과했다. 성공하면 같이 나눌 수 있다고 애써 독려하며 채워 나갔던 근로시간과 추가 노동은 처음부터 휴지 조각이었던 것이 되었다. 억울했다.

 한때는 이름 있는 대기업에서 오퍼도 들어올 정도였고, 그때 바로 구직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고생하는 삶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가끔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파산하고, 또 누군가는 죽어 나가고 있었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과로사와 자살로 몰아가고 있었다. 거취를 고민하다 결국 게임산업 종사자의 노동권 운동을 하던 ‘게임개발자연대’에서 반상근직 활동가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일이 있었다.

 페미니즘에 연대했다가 계약 해지, 업무 배제, 합의 사직 등의 조치를 당한 여성 및 남성들과 연대를 했다.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사망과 퇴사가 속출하던 넷마블에 대한 정치적 개입에 동참했고, 게임개발자연대에서 수집한 정보와 증언이 결정적인 열쇠가 되어 넷마블의 ‘무료 초과 노동’에 대한 노동청 조사가 이행되었다. 회사가 인정하고 토해 낸 체불임금만 300억 원에 달했다. 불법파견된 IT 노동자와 연대했고, 프리랜서들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자본의 횡포와 친자본적 시장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계속했다.

 IT와 게임의 노동문제를 정치화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세간의 인식이었다. “충분히 대우도 좋고 자율적 근로환경이 조성된 것 아닌가요?”라는 반문을 정말 지겨울 정도로 들었다. 온갖 부조리와 하청 및 불법파견에 대해, 정부 프로젝트가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며 끔찍해지는 과정에 대해 지치지 않고 꾸준히 설명했다. 그래서 “에이, 뭐 IT만 그런가요? 그거 한국 산업이 다 그래요.”라는 말을 들었을 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기뻤다. 느리지만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이제 문제는 나였다. 경제적 곤궁함은 버티기 힘들었다. 활동 문제로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어찌해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 하청, 파견을 전전하며 IT 개발 직군과 서비스업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며 가족의 자영업장에서 일하기까지 하니 몸은 힘들고 마음도 무너지는 듯했다.

 당장 업계 선배들에게 내가 복귀할 수 있을지 묻고 다녔다. 나 자신이 확신이 없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은 좋게 좋게 말하며 공백이 길긴 하지만 아직 복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말뿐이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렇게 짐작하던 차에 친한 선배 한 명만이 굉장히 진실한 대답을 해 주었다. “야, 너만 제물로 삼게 된 꼴이라 미안하긴 한데, 그냥 잘하는 일 하는 게 좋지 않겠냐? 넌 이제 블랙리스트 그 자체야. 블랙리스트 내용을 안 보고 표지만 봐도 ‘김환민 외 n명’이라고 적혀 있을걸? 네가 거기에 굽힐 사람이야? 굽히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뽑아 줄 곳을 소개할 수는 있어.” 그다음 날부터 방황은 끝났다. 다음 해, 나는 IT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되었다.

지난 8월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조연맹에 가입한 IT노조. 왼쪽이 김환민 씨. 사진 제공_ 전국IT산업노동조합

 

 내 마음은 정리되었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도 거르지 않고 IT산업 종사자의 죽음이 이어졌고, 지금까지는 가시화되지 않았던 사내 갑질과 괴롭힘이 새로운 쟁점으로 다시 점화되었다. 시장의 불공정과 하도급 갑질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네카라쿠배’라는 특정 대기업에서만 이루어진 연봉 인상은 또 다른 계급화를 낳고 있다. 대기업이 인재 육성을 도외시한다는 점에는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실력이 없으면 대우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고, 실력은 스스로 쌓는 것이라는 능력주의-신자유주의적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안 그래도 뭉치지 못하던 IT 노동자들의 파편화는 더더욱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5월 직장 내 갑질로 인한 네이버 직원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김환민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네이버 본사에 설치된 조문 부스에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사진 제공_ 전국IT산업노동조합

 

 그렇다고 구조적 부조리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대기업은 여전히 계약을 철회하기 일쑤고,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은 여전하다. 건물을 다 지은 후 계단의 위치를 변경하자고 하면 “무슨 미친 소립니까?”라고 상식적으로 반문할 사람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만큼은 설계 변경을 해도 “쉽게 하실 수 있죠? 저번 하청업체는 그냥 해 주시던데.”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물론 변경은 어렵다. 일반 승용차를 미드십(차체 후방에 엔진이 있는 형태)으로 고치는 것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님께 대거리하는 것’은 이보다 더 힘들다.

 내가 내 능력으로 성과를 쟁취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부조리에 대한 순응으로 나타나곤 한다. 이뤄 낸 성과대로 대우받는 게 당연하다면,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법적 투쟁까지 감내하고 헌신했던 개개인은 왜 여전히 하청의 하청, 파견직과 프리랜서에 머무르며 대우받지 못하며 일하고 있는가? 누구나 선망하는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과연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그 이면에 성별, 정치적 성향, 학벌이나 전공 등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계속 의심해야만 한다.

 아직도 일에는 체력이 중요하다. 여자는 안 되고, 장애인은 안 된다. 직무 포텐셜이 있어야 하므로 고졸, 학점은행제, 방통대 출신은 평가절하된다. 노조가 생기면 과로를 못 시키니 노조도 안 된다. 하지만 이는 정당한 직무평가가 아닌 노동의 특수화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노동환경·직무교육을 제공하는 것과 ‘알아서 잘 완성된, 주당 100시간을 해도 멀쩡한’ 사람만을 고용하는 것 중 장기적으로 어느 쪽이 노동과 산업에 나은 선택일지는 자명하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는 딱지는 일견 달콤해 보이지만 결국 일자리를 줄이고, 숙련 노동자를 줄이며, 산업의 미래까지 좀먹는다.

 우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노동환경이나 윗선의 갑질이 어떠하든 무조건 더 빠르게 프로그램을 짜고, 문제를 해결하고, 시키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 가치의 전부는 아니다.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생태계, 더 나은 문화를 위해 부르짖고 싸워 나가는 것, 사람다운 삶을 요구하는 것, ‘좋은 노동환경’이 제공되었을 때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것, 이제 갓 시작하는 후배들을 위한 환경과 문화를 요구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가치의 일부이다. 특권과 차별 없이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노동 생태계를 꿈꾸며, IT도 특별한 산업, 특별한 노동이 아닌 ‘여느 노동과 다름없는 노동’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을 다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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