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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미안해요 베트남

구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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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반레/ 하재홍 옮김/ 아시아

 

응웬 꾸앙 빈 상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7살에 미군의 침략에 맞서 전쟁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잠깐 만나 사랑했던 여자 칸이 미군에게 학살당하자 그들에게 분노하여 총을 마구 쏘아대다 등 뒤에서 쏜 총에 맞아 죽는다.

황천강에 이른 그는 뱃사공에게 줄 노잣돈이 없어 강가를 배회한다. 그 강을 건너야 망각의 죽을 먹고 환생할 수 있다는 이 대목에서 그리이스 신화에 스틱스강을 망각하는 것이 연상되기도 하고, 불교적인 세계관이 보이기도 했다.

 

베트남은 세계 최강의 나라들인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을 상대로 싸워 이긴 나라이다. 나는 베트남 만 일의 전쟁에서 이 놀라운 나라의 저항을 읽고 그럼 우리는?’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베트남...’에서 베트남도 한국처럼 하고 싶었다는 미국 고위직의 말이 몇 번 인용되었다. 한국에서 휴전조약이 맺어지고 분단이 고착화 될 무렵이었다. 베트남에서 그들의 시도는 실패하고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마시고 철수해야 했다. 왜 우리는 분단을 당연시하고 미국을 북한보다 더 신뢰하고 마치 아기가 엄마한테 매달리듯 매달릴까? 어디에서 그들과 우리가 갈리는 걸까?

 

이 마을 사람 중 제일 첫 번 째 죽은 사람은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연락책 민 아저씨였다. 그는 비가 계속 내려 물이 붓고 있는데도 강 건너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소식 듣게 하려고 앞으로 나가다가 물살에 휩쓸려 죽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민 아저씨를 무모하다 비판하는 빈(베트남에서는 끝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재난이고, 또 그 속에서 동포들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지. 예를 들어 시위를 한다든가 회의를 조직한다든가 하는...”

그렇지만 미국과 지엠(남베트남) 정부는 우리의 타도목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잖아요.”

빈아, 적의 무리들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란다.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야...... 죽은 사람들이야 당연히, 우리가 그들의 복수를 위해 싸우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겠지.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할아버지는 빈에게 말한다.

너도 전선에 나가게 될거야. 전쟁은 자비가 없지. 전쟁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괴물 같은 것이니까. 그것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전부 다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지......”

“...... 그러므로 전쟁이 터졌을 때 저항이 있어야 해. 어느 민족이든 다른 이들의 지배의 굴레로부터 저항할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런 민족은 영원히 노예로 사는 것이 마땅해.”

 

조국을 위해 전선에 나온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비겁하거나 비열한 사람도 있고 슬며시 항복하러 나간 이도 있다. 그런 이 중 한 명에게 죽은 이가 꾸에 지이다. 그녀는 같은 후방 부대 병원에서 견습 의사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나아갈 길에 걸리적거리는 아기를 지우려 들지 않는 꾸에 지를 의사 바오는 독약을 주사해서 죽인다. 그녀 역시 노잣돈이 없어 황천강을 배회하다 빈을 만나 서로 의지한다.

 

이렇게 저승과 이승 두 곳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환상적이게도 하고 현실적이게도 느끼게 하는 이야기 속 치열한 전투 장면은 영화보다 더 사실적이고 처절했다. 폭탄이 터지면 집이 주저앉고 구덩이가 파이고 군인들이 위로 떴다가 떨어지며 죽거나 다치는 것이다. 나무는 뽑혀나가거나 새카맣게 타고 사람들은 처참하게 시체로 남는 것이다. 그 시신들을 헤치고 도망가야 하는데 빈이 구토를 마구 하자 소대장은 시체가 없는 곳까지 뒤에서 머풀러로 눈을 가리고 따라가라고 부하에게 명령한다.

동료 부상병을 들것에 메고 도망가는 발밑 움푹 패인 길에는 자갈들이 방해를 해서 급기야는 업고 뛰어야 했다. 비행기가 낮게 폭격하면서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죽이면 그들은 그 비행기를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그래서 떨어지는 폭격기도 있었다.

사이공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칸과 빈은 하늘에서 내리는 기름을 맞았다. 불이 나겠다는 예감으로 정신없이 강을 향해 뛰는데 수풀과 강어귀까지 불이 활활 탔다. 이게 고엽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평범하지만 위기의 순간 고귀한 인간성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빈과 많이 부딪쳤던 부소대장은 협동농장 농부 출신으로 빈이 많이 배웠다는 것을 시기하고 시비를 잘 걸었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는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동료를 구하며 싸워서 빈을 감동시켰다. 소대장은 또 어떤가? 욕도 무지 잘하고 직설적이기 짝이 없는 그는 아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내를 찾아간다. 그들의 전선은 아내가 있는 집에서 멀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거리라 해도 미군이 점령하고 있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 길을 헤치고 가 아내의 눈을 감겨주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그를 잡으려는 다섯 명의 보안대원을 향해 그는 준비했던 수류탄 두 개를 터뜨려 죽었다. 뒤따라 갔던 빈은 ! !” 부르며 울부짖었다. 베트남에서는 조금만 친해지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여자는 오빠, 남자는 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니 빈 상사의 소대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세대가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건 승리에 이르는 근원이 군인의 품행, 민족의 품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짓밟히고 유린당할 때, 심지어 적이 우리 몸 위에 발을 얹었을 때,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품행과 연민, 이런 것들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인간의 명예와 체면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작가의 말이다.

 

그의 이름 반례는 본명이 아니다. 그도 소설 속 빈처럼 17살에 자원입대했다. 호치민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음에도 말이다. 호치민은 전쟁이 끝나고 조국 재건을 해야 할 때를 대비해서 장학생을 선발해서 유학 보냈다. “너희들은 비겁하게 전선에서 피하는 게 아니고 조국의 미래 부름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이 기회를 거절하고 전선에 나갔다. 우리처럼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베트남 풍습대로 독자는 후방부대에 배치될 수 있는데 그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그와 함께 자원입대했던 열일곱 살 부대원 300명 중 살아 돌아온 이는 겨우 다섯 명이었다.

반레는 전선에서 만난 친구로 시인 지망생이었다. 전선에서도 틈틈이 시를 읽고 짓던 친구였다. 이 친구의 이름으로 그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감독을 했다. 그 주제는 모두 전쟁이었다. 그는 반례 뿐 아니라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295명 친구들의 삶을 죽을 때까지 산 것이다.

 

소설 마지막에서 그의 그런 행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칠월 보름 망인의 죄를 씻는 날, 황천의 문이 열려 영혼들이 생을 마감했던 자리로 돌아가는 날, 빈과 꾸에 지는 특별히 옥황상제의 배려로 죽은 곳이 아닌 고향으로 보내졌다. 돌아와보니 그새 10년 세월이 흘러갔다.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했으나 예지력을 지닌 할아버지는 손자를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켜 주었다. 관리들은 윤택하게 살고 있었지만, 가난했던 사람들은 제대군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가난했다.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빛나는 영광에 대해, 과거에 대해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관심은 오로지 먹고 사는 일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노잣돈(돈처럼 생긴 것을 시장에서 판다고 한다)을 태워 환생하라고 하자 그는 환생해서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과 고향, 절친한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고, 제가 살아온 날들을 잊고, 인간의 삶에서 제가 받았던 그 아름다운 정감들을 모두 잊으면서까지 얻고 싶은 것은 없어요.”

 

빈은 고향 친구 호앙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 역시 죽은 295명에 속했다. 그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했을까? 어떤 이는 소설 속 빈처럼 여전히 전쟁 속에 살고 향을 사르는 작가를 그 방황에서 나오라 안타까와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빈이 황천강을 방황하면서 자신의 삶을 잊지 않으려던 것처럼 작가도 거듭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그것이 그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는 길일런 지도 모른다.

 

작가는 거듭 말한다.

만약 과거를 모른다면, 사람들은 현재 속에 쓸쓸해질 것이고, 미래 앞에 당황할 것이다.”

두려운 건 총칼이 아니야.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감수성이 점점 무뎌지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거야.”

 

작품 속에 미군들은 마치 무생물 같다. 그들은 그저 남의 땅을 침범한 악마일 뿐이다. 그저 폭격기, 조명탄, 헬기 등으로만 보여진다. 그들과 싸우는 전사들은 여러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내 땅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은 동일하다. 이 부분에서 가해국인 미국과 함께 했던 나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팠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 미국 작품에 나오는 베트남 사람들, 우리가 베트콩이라 불렀던 작품 속에 나오던 그 비엣공들은 그저 섬멸해야 할 대상이었고 나쁜 놈들이었다. 우리 작품들 속에서 그들 또한 감정이 없는 그저 죽으면 그만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느꼈을 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우리는 모른다. 지금도 고엽제로 고통 받는 그들의 아픔도 우리는 모른다. 공포와 고민, 성찰은 그저 우리 몫인 줄 알았다. ‘그대 살아 있다면은 그런 베트남 사람들이 자기네 고달프지만 영광스러웠던 전쟁을,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열일곱 살 인생을 송두리째 바쳤던 조국과 이웃, 고향에 대한 사랑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인간 관계 속에 대단히 필수적입니다. 흔히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로에 대해 잘 안다면,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도와주고, 더욱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고 작가는 말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패배시킨 이 자랑스런 국가의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가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런 상처를 안겨준 걸 이야기하고, 그렇지만 우리는 부단한 노력으로 서로 이해하는 속에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명희 선생님이 쓰신 베트남 문학기행에 소개된 책 중 도서관에서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읽고 생각을 써보았습니다.

  • 작은책 구자숙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생각을 글로 남겨주셨다는 점에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문학기행 김명희 작가님께도 공유해드렸습니다. 투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도 연락드리겠습니다) 2023-11-14 11:04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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