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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여유

양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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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여유> 양성수

 

 쓴맛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맛이라고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어릴 땐 모르는 어른의 맛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쓴맛과 거리감이 줄었고 오히려 즐겨 찾고 있다.

 쓴맛이 나는 음식 중에는 술도 있고 채소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중에서도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면 피곤하고 충전이 안 된 몸과 정신에 보조배터리로 충전시켜주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고, 커피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학생으로서 시험과 과제를 준비할 때,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일할 때, 군인으로서 복무할 때, 모두 내 옆에는 커피 한잔이 있었다.

 커피와의 첫 만남은 부모님이 커피믹스를 즐겨 마신 것에서 시작한다. 어릴 때 나는 커피믹스의 달달한 향기에 이끌렸다. 그래서 한 모금만 달라고 졸랐지만 모든 부모님이 그러듯이 나중에 커서 마실 수 있다고 하셨다. 현재의 나는 블랙커피를 즐겨 마시고 부모님은 언제나처럼 커피믹스를 드신다. 서로 다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부모님은 그 쓴 걸 왜 먹는지, 나는 너무 달지 않은가? 하며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커피를 많이 마시기 시작한 건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후다. 그때는 통학이 집에서 왕복 5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과제와 시험공부도 하며,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었다. 그러니 커피에 손이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커피의 맛보단 카페인이 주는 각성효과와 진정 효과, 불안 억제 효과에 빠졌다. 그 당시는 하루하루를 마치 트랙 위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여유 없이 빨리 완주하자는 마음가짐이었다. 다른 점은 휘발유 대신 커피를 넣는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이때는 잠을 자도 기운이 완전히 충전되지 않았다. 수면시간의 부족함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삶의 여유가 없어진 점 역시 한몫했다. 당장 학업 걱정부터 미래 걱정까지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이대로 가면 영혼까지 털털 방전될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을 바꿔주는 친구의 한마디가 있었다. “, 너는 너무 바빠 보여. 가끔은 우리랑 카페에 가서 커피나 마시자.” 친구가 툭 던진 이 말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가까운 지인이랑 커피 한잔도 못 마실 정도로 내가 바쁘게 살아 온 건가, 내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 말이다. 카페에도 못 갈 정도로 여유가 없는 삶이라면 카페에서 커피 한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여유는 만들어 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 후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문구같이 살고 있다. 자동차처럼 현재를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길에서 벗어나 잠깐 휴게소에 들려보자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친구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때처럼 사소한 일이 현재의 삶에 여유를 불어넣고 안정감을 더해줬다. 예전에는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의 효과로 기운을 충전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커피의 다양한 원두처럼 커피를 마시며 있었던 다양한 기억들과 사람들이 떠올리며 기운을 충전시킨다.

 등굣길에는 항상 매점에서 콘트라베이스라는 커피음료를 산다. 한입 마시면 예전에 느끼지 못한 커피의 맛을 느끼는데. 첫맛은 쓰지만, 점차 단맛이 느껴진다. 다시 한입 마시며 생각하면 오늘 할 과제와 시험이 떠오른다. 과제와 시험 손이 안 가는 쓴맛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걱정보다 단맛 같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고생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마치 커피 같은 삶을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부터 10cm의 아메리카노까지 수많은 커피 같은 인생이 있을 텐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잊지 않고, 커피의 여러 맛 중에 끝맛이 단맛으로 끝나는 커피처럼 살고 싶다.

010-2978-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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