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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글)정치인의 정년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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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쁜 놈들, 나에게는 자리가 없다고 하고는, 나보다 늦게 탄 사람들에게 표를 팔아! 천하의 나쁜 놈들!”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화가 단단히 나서 객차에서 난리를 쳤다. 할아버지는 밀양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좌석을 구하지 못하고 입석표로 탔다. 빈자리 앉아 가다가 대구에서 탄 사람이 할아버지보고 자기 자리니 일어나시라 한 거다. 일찍 기차를 탄 사람은 좌석이 없고, 늦게 탄 사람이 좌석이 있는 것에 할아버지는 화가 단단히 났다. 할아버지는 예매를 몰랐던 거다. 나는 할아버지 심정을 이해했고, 처음으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20년이 넘은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다가 역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박정희가 제일 괜찮았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박정희는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때, 나와 어머니의 실랑이를 외할머니께서 정리를 해주셨다.

그래도 이승만 아바이 때가 제일 나았지비”(이승만 대통령 때가 제일 좋았다.)

엄마, 어떻게 이승만, 이승만 때야. 말도 안 돼.”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 웃는 내 얼굴을 보고 어머니는 더 이상 박정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부산에서 드물게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에게 표를 줬다. 그러나 그 전에는 노태우 선거 운동원이었다. 당시 엄마는 동네 반장이었는데, 대통령 선거 운동을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 거의 다 했다. 당시 번 돈으로 자계 화장대를 구입했다.

전두환이랑 이순자와 다르게 노태우 대통령과 영부인은 정말 선한 사람 같아요.” 중학생이던 내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두고두고 부끄러운 말의 대가가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걸로 돌아왔다. 그들을 보고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당시 나의 어머니와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되는 걸 지켜보며 힘들었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1973년생인 나는 이제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던 시간, 당시 박정희가 최고라고 했던 내 어머니보다 몇 살 많다. 그런데 나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누가 최고라는 말을 못 하겠다. 더 살아봐야겠다. 보통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과거를 미화하며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나는 추억으로 미화를 할 과거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진보도 아니다.

새해부터 해고 통지를 받은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를 mbc 9시 뉴스를 통해 봤다. 인터뷰가 70세까지 정년보장으로 끝났다. 청소노동자의 해고 뉴스를 다룬 것은 인정하지만, 뉴스가 뭔가 미흡하다. 104일 월요일 뉴스공장에서 청소노동자가 나와서 인터뷰를 한다. 해고는 청소 노동자의 노조가입과 부당 노동에 대한 거부로 이뤄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 노동자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억울함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9시 뉴스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 나는 70세 정년보장만 위한 싸움은 지지하지 않는다. 가난으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지만, 난 오랫동안 청소노동자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극심한 퇴행성 질환을 앓고 힘들어 한 분들을 좀 봤다. 난 그렇게 오랫동안 일해야 하는 환경을 억지로라도 멈추게 하고 싶지 일을 더 시키고 싶진 않다.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부당 노동을 없애는 것에 동의하며, 부당한 해고에 대한 저항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시대였다면 이들의 노동쟁의가 mbc뉴스에 나올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역대 대통령으로 그리고 청소노동자로 갑자기 글이 이상하게 전개된다는 걸 안다. 비약은 더 일어날지니, 기다리시라. 열차에서 만난 할아버지처럼 생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억울함을 느끼는 어른의 모습에서 나의 노년을 상상해 본다. 또 외할머니나 어머니처럼 자신의 젊은 시절의 향수로 역대 대통령을 꼽는 것처럼 나중에 나도 내 젊은 시절 어떤 때를 그냥 막무가내로 좋은 날과 좋은 대통령의 시대로 꼽을 수 있겠지. 이해한다.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이 있다. ‘민주당 이낙연 당대표는 왜?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을 논했을까?’ 나는 아직까지 내가 꼽을 만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문재인 다음으로 이낙연을 생각했다가 급 실망을 한 날에 열차의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리고 한 때는 존경했던, 할배 이낙연을 이해해보기 위해 노력하다가 멈췄다.

정치인의 노년과 정치인의 정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빠를 것 같다. 이낙연은 1952년생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할배와 할매가 젊은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하는 걸 두고 봐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어떻게든 이들도 좀 쉬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박수칠 때 떠났으면 좋겠다. 정치인 할배와 할매 그냥 노년을 즐기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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