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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7) 내 동생 최성애 2탄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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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려서 어머니에게 100원 용돈을 받으면 50원 하드를 사먹고, 은행에 가서 50원을 저축을 했다. 우리는 은행 언니들과도 친했다. 새마을 금고 동생적금이 만기가 된 날, 우리 둘이 돈을 찾으러 갔다. 금고 언니는 우리에게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신분 확인을 해야 하는데, 확인 방법이 없네. 엄마를 모시고 오렴.”

아니, 얘는 제 동생 최성애예요. 제가 최성애 언니 최성희구요. 제가 확인해요.” 나는 정말 답답했다. 최성애가 최성애인데, 뭘 확인을 해야 한다는 건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확 달아오르지만, 난 그때 새마을금고에서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최성애 언니, 최성희구요. 얘는 제 동생 최성애가 맞아요!”

동생은 초등학교 때, 저축한 돈으로 중학교 입학기념 엄마와 자신의 옷을 샀다. 동생은 고등학생까지 정말 돈을 아껴 살았다. 초등학교 때, 나는 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핀셋으로 동생의 저금통에서 돈을 훔쳤다. 어린 동생 일기장에는 내 욕이 많이 적혀 있었다. 동생은 내가 엄마보고 찐빵을 더 사달라며 엄마를 힘들게 한다 던지, 자신의 빵을 뺏어 먹는 등 언니가 왜 이렇게 나쁜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선생님의 빨간 펜글씨.

성애가 생각하는 것만큼, 언니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동생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사람이었다. 알뜰한 동생 덕분에 나는 훔친 돈으로 과자를 사 먹었다.

우리 둘의 중학교는 바로 집 앞에 있었다. 나는 학교에 제일 먼저 등교를 해서, 잠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반면 내 동생은 맨날 지각이었다. 한 번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니, 동생이 울고 있다. 오늘도 지각을 해서 몰래 담장을 넘어 가다, 그만 새로 산 통치마가 담장 창살에 걸려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결국 치마가 길게 찢어지면서 떨어졌단다. 치마 때문에 엄마에게 혼날까봐 우는 거다. 동생은 고등학교 때도 지각을 밥 먹듯이 했고, 교실에서 담임의 장풍을 많이 맞았다. 나와 동생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게 아닐까 한다. 동생은 어른이 되어서도 기차를 놓치거나, 간발의 차이로 탄다. 나는 그런 일은 없다.

, 동생은 중학교 3년을, 같은 과학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났다. 3년 내내 동생은 반장을 했다. 나도 동생도 그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다. 우리 초등학교 때는, 어머니가 선생님을 찾아가 학급 임원을 할 수 없다고 미리 통보했다. 당시 학급 임원을 하면, 학교에 책장 등 사가지고 오라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중학교 동생의 담임 선생님은 한 번도 우리 집에 금전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고마웠다. 당시는 대놓고 돈을 받는 선생도 많았다.

나는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갔는데, 공부를 잘한 동생도 재수를 하게 됐다. 나는 그게 정말 속상했다. 내가 동생의 운을 나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재수하는 동생(동생도 학원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독학을 했다.)의 도시락을 사줬다. 동생은 다음해 수석으로 대학을 들어갔다. 동생이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따님의 대학 수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학교에 기부를 하시면 좋겠어요.” 학교 담당자의 말에 어머니는 단호하게 현수막 같은 거,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 후 학교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현수막을 자체 설치했다.

동생은 95학번이다. 나는 동생이 전쟁을 방불케 했던, 대학생 시위에 있어, 마지막 세대라고 본다. 김영삼 정권 마지막에 학생운동 탄압이 심했다. 동생은 그때 건국대 시위에도 참여를 했다. 불타는 건국대학교 옥상, 나는 뉴스를 접하며 얼마나 동생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동생은 잘 빠져나왔지만, 당시 심하게 다친 학생들이 많았다.

동생은 학생회 활동을 하며 만난 작은책을 내게 소개했다. 우리는 창간 독자가 되어, 지금까지 잘 보고 있다. 동생과 나는 고흐와 테오처럼 서로를 사랑했다. 동생이 먼저 교사가 되어 내가 뒤늦게 대학교를 다닐 때 많은 도움을 줬다. 우리 가족은 농담 반 진담으로 동생을 처녀가장이라고 불렀다. 처녀가장이었던 동생이 37살에 조카를 혼수로 해서 결혼을 했다. 지금 9살 아들과 7살 딸을 키우며 교사생활을 하는 동생을 보면 나는 정말 흐뭇하다. 

동생의 팔뚝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나왔다. 동생의 공무원 생활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자체검열을 해서 적지 않는다. 난 내 동생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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