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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5) 내 아버지 최세한 2탄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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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선생님, 아이들 아빠가 AB형이고, 제가 A형인데 어떻게 얘는 O형이 나옵니까?” 내 혈액검사 결과를 두고, 의사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의사가 나와 어머니 앞에서 말했다.

저기 어머님, 잘 생각해보세요. 어머니께서 아시겠죠?” 나는 여러 번 혈액검사를 받았다.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동생은 A, 아버지는 AB, 그런데 내가 O형이다. 결국에 아버지가 O형으로 정리됐다. 당시 자신의 친자를 의심하는 남편으로 인해, 아이와 투신자살한 아주머니 뉴스가 났다. 죽은 아이를 검사하니, 친자가 맞는 걸로 확인됐다. 우리 식구들은 내가 아버지를 쏙 빼닮아서, 이런 일이 우리 집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심했다. 나는 식구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외모보다는 특히 성격이다. 아버지 인물을 닮았다면, 내 인생이 바꿨겠지. 우리 삼남매는 못난이 인형처럼 생겼다. 부모님의 열등한 인자들만 어떻게 쏙 빼어 닮았다.

나는 아버지 마음의 흐름이 잘 보였다. 특히 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도발할 때, ‘, 어머니 그러면 안돼요.’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는 어머니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아버지 심리를 모르는 지, 이해가 안 됐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매일 6시 출근해서 6시 경 퇴근을 한다. 그리고 점심은 집에서 드신다. 아버진 가족 없이, 혼자서 식당에 돈 내고, 먹는 음식 값을 제일 아까워하셨다. 문제는 아버지가 집에 식사하러 오시는 시간을 못 맞추고,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화투를 치다가 싸우게 된다는 거다. 아버지가 운전을 해서, 어머니는 시간을 못 맞춘다고 했지만, 그건 핑계다. 아버진 정말 규칙적인 분이셨다. 동생까지 나서 남들이 엄마가 직장 다니는 줄 알겠다며, 아버지 식사만 좀 챙겨 드리라고 했다. 말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는 요리도 못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불쌍해서 반찬투정을 할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음식 귀한 줄 알라며 야단을 쳤다. 아버지는 찬밥과 오래된 국, 성의 없는 반찬을 맛나게 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또 어머니는 아버지 화를 많이 유발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이다. 문제는 도발을 하고 바로 꼬리 내리고 또 도발을 하고 그런 식이다. 어머니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말 한량으로 살았을 거다. 우리 집은 보통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성이 바꿨다. 어머니는 거칠고, 아버지는 여렸다.

내가 중학생 때다. 아버지는 내 생일에 나와 어머니를 데리고 구두점에 갔다. 그리고 어머니께 예쁜 구두를 사주시면서, 내게 말했다.

성희야, 중학생이면 이제 어른이다. 앞으로는 네 생일에 네가 축하받는 것이 아니라, 너를 낳아 준 어머니께 감사하는 날로 삼아라.” 나는 이 날의 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진 정말 멋있었고,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버지에게 여자는 내 어머니뿐이었다. 그러나 가족보다 이웃과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남들에게 빚보증 잘 서주는 아내가 항상 불안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나는 진심으로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는 일하시다 혼자 점심을 챙겨 드시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내 나이 26, 집 근처 독서실에서 대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삼계탕을 만들어 놓고, 다시 일하러 가셨다. 메모가 남겨져 있다.

성희야, 공부하느라 힘들지. 오늘 복날이네. 내가 삼계탕을 만들어 봤어. 먹고 힘내라.”

나는 눈물의 삼계탕을 먹고, 아버지의 메모를 책상 앞에 두고 공부했다. 우리 부모님의 성역할은 좀 남달랐다. 아버지가 더 어머니 같았고, 어머니는 모르겠다. 우리 남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믹싱해서 나오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가족 걱정과 불안이 많고, 어머니는 가족보다 친구들이 제일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너희 아버지가 나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좋겠어.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좋겠다.” 젊은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중학생이 된 내가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절대 바람을 피우지 못할 걸아니까 그렇게 말하시는 거잖아요? 만약에 진짜 아버지가 바람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내 질문에 어머니는 살짝 놀라셨다.

그러게, 나는 네 아버지가 바람을 필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구나.” 어머니는 그 후 그 말씀을 아꼈고, 하지 않았다.

내가 서른다섯, 여수에서 대학을 다닐 때다. 아버지가 대상포진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성희야, 네가 정말 너희 엄마랑 이혼을 해야겠다. 내가 아파서 얼마나 고생을 했니? 그런데 가톨릭 병원이 집에서 멀어 택시비가 많이 나온다고, 아픈 나를 데리고 버스를 2번 갈아타서 병원에 입원시켰어. 내가 버스에서 생각했어. 이 여편네랑 정말 같이 살면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러니 내가 그렇게 이혼해라고 했잖아요. 아버지, 지금 밖에 나가면, 혼자 사는 예쁜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더 늦기 전에 이혼해요.”

그래도 예쁘기는 너희 엄마가 제일 이쁘지? 그나저나 매끼 따뜻한 밥과 국, 바뀌는 반찬이 정말 맛있다. 누가 병원 밥이 맛이 없다고 했냐?” 아버지와 통화는 웃음으로 끝났다.

팔순의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만 바라보고 사랑하신다. 나는 아버지를 보면 한 번씩 아깝다. 그 인물에 어디에 내놔도 할머니들이 좋아하실 분인데. 지금이라도 엄마 말고 다른 사랑을 좀 찾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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